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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st of all pages that have property "TextKor" with value "그 사람은 이 시를 보고 재삼 찬탄하며, “이 사람이 살아 있는가? 지금 무슨 벼슬을 하고 있는가? 혹시 만나 볼 수 있겠는가?”". Since there have been only a few results, also nearby values are displa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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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347  + (사인(士人) 이양국(李良國)은 자못 기풍이 있어 스스로 높은 체하고 법도를 사인(士人) 이양국(李良國)은 자못 기풍이 있어 스스로 높은 체하고 법도를 따르지 않았다. 일찍이 금강산으로 유람가는 사람을 전송하는데, 대개 그는 유람한 지 이미 10년이 되고 전송하는 사람은 3년이 된다. 그러므로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br>십년 된 사람이 삼년 된 손님을 전송하고 / 十年人送三年客</br>팔만 봉우리는 구만 장천에 솟았네 / 八萬峯高九萬天</br>휘파란 소리 부상에 떨어지는데 파도는 해를 흔들고 / 嘯落扶桑波撼日</br>읊조림은 울릉도에 울리는데 바다에는 안개가 일어나네 / 吟搖蔚島海生煙</br>또 신해년 겨울에 국가에서 두 종(宗)의 선과(禪科)를 다시 베풀게 되자, 유림들이 장차 소를 올리려고 회문(回文)하여 그의 집에 도착하였더니, 그는 자기의 이름 아래에,</br>불을 배척하여 상소한 것은 한유의 일이요 / 闢佛上疏韓愈事</br>학 타고 하늘에 간 것은 여동빈의 광기다 / 乘鶴橫空呂洞狂</br>라고 쓰고, 이어 말하기를,</br>“나는 내일 산으로 유람간다.”</br>하고 항소의 반열에 끼지 아니하였다.</br>또 일찍이 시를 가지고 그 애인을 이별하고자 부채에 시를 썼었는데, 그 애인에게 마음이 있었던 한 문관(文官)이 이를 보고 불살라 버렸다. 이 양국은 또 뒤에 타다 남은 끝에 다가,</br>지금까지 분서한 불이 꺼지지 않아 / 至今未盡焚書火</br>낭군의 석별시를 태우네 / 燒盡郞君惜別詩</br>라고 하여 문관은 그 기상을 가상하게 여겼었으니, 대개 소광(疎狂)하여서이다.고 하여 문관은 그 기상을 가상하게 여겼었으니, 대개 소광(疎狂)하여서이다.)
  • E326  + (상(尙) 정승은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의 〈화죽(畫竹)〉과 〈청우(晴雨상(尙) 정승은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의 〈화죽(畫竹)〉과 〈청우(晴雨)〉두 장자(障子)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기재(企齋)와 호음(湖陰)에게 나누어 시를 써 달라고 청하였는데, 각기 팔운 배율을 써서 보냈다. 기재 시의 한 구에는,</br>소자첨(송소식(蘇軾)의 자) 간 후에 진필이 없더니 / 子瞻去後無眞筆</br>여가(송 문동(文同)의 자) 죽은 이후 이 사람이 있다 / 與可亡來有此人</br>하였고, 호음의 시 한 구에는,</br>정신은 소동파의 삼생의 동안 익힌 솜씨를 옮겼고 / 神移蘇老三生習</br>기세는 문옹(문동을 지칭)의 만 척 길이를 압도하였네 / 勢倒文翁萬尺長</br>라고 하여, 다 칠운(七韻)이었다. 그 용사(用事)와 조의(措意)가 동일하였으되 시어를 쓰는 방법은 아주 달랐다. 평생 두 사람의 기상을 상상할 수 있는데 천연스럽고 독특한 것은 쉽게 우열을 논할 수 없다.기상을 상상할 수 있는데 천연스럽고 독특한 것은 쉽게 우열을 논할 수 없다.)
  • E188  + (상국(相國) 노소재(盧蘇齋)가 70세 되던 갑신년 원일(元日)에 시를 짓기를상국(相國) 노소재(盧蘇齋)가 70세 되던 갑신년 원일(元日)에 시를 짓기를,</br>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에 돌아오니 / 寄也歸而免</br>슬그머니 찾는 사람 드물구나 / 居然到者稀</br>누가 성인이 원하던 바대로 따르리오 / 誰從聖人欲</br>오래도록 대부(큰 벼슬)의 그른 것에 어두웠네 / 久昧大夫非</br>한 번 맺은 군신의 계분 / 一理君臣契</br>깊은 충심 노병으로 어긋났네 / 深衷老病違</br>다만 매화와 버들빛만이 / 只應梅柳色</br>예전처럼 들어와서 옷깃 적시누나 / 依舊入霑衣</br>하였다. 내가 70살 되던 을유년 원일에 노상국의 시에 차운하기를,</br>문득 새해 옴을 깨달으니 / 斗覺新年至</br>누가 70살이 드물다고 하였는고 / 誰言七十稀</br>영화와 쇠락함 실컷 겪었고 / 飽經榮與落</br>옳고 그른 일 많이도 견디었네 / 多耐是兼非</br>오래 살고 단명하는 것은 하늘이 응당 정한 것이고 / 修短天應定</br>행하고 쉬는 것 이치이니 어찌 어길쏘냐 / 行休理敢違</br>물러날 것 생각하였다가 / 思量乞身事</br>기필코 관복을 벗으리라 / 準擬解朝衣</br>하였으니, 이 시는 장차 벼슬에서 물러나고자 하면서 회포를 표현한 것이다. 80살이 되던 을미년 원일에 또 앞의 시에 차운하기를,</br>인생 70이 드물다면 / 人生稀七十</br>80이란 더욱 희귀하리 / 八十更應稀</br>위무공의 경계를 배우려 하였지만 / 欲學武公戒</br>전부터 거원의 지난날 잘못했다는 것도 알았노라 / 曾知蘧瑗非</br>은혜를 탐하다 몸이 묶여 있고 / 食恩身局束</br>물러나기 바랬지만 일이 어긋났네 / 乞退事乖違</br>원하는 일 언제나 될꼬 / 志願何時遂</br>슬프구나 먹고 입는 것 때문일세 / 嗟哉食與衣</br>하였다. 여러 번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여 이 시로써 송서교(西郊 송찬)에게 보이니, 송서교가 화답하였다. 그 한 연구에,</br>성안에 그대로 있는 것 옳은 일이요 / 城內仍留是</br>전원에 가려는 것 그른 일일세 / 林間欲去非</br>하였으니, 이는 병란이 아직 그치지 않았으므로, 물러나 향촌(鄕村)에 살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시에 쓴 것이다. 내가 다시 시를 지어 보내기를,</br>작록은 사람마다 누릴 수 있지만 / 爵祿人皆享</br>늙도록 사는 것은 세상에 드무네 / 期願世固稀</br>머무르라고 하는 것도 과연 옳지만 / 仍留果爲是</br>가려는 것도 그름은 아닐세 / 欲去未應非</br>늙었으니 마땅히 물러가야지 / 晩節尤宜退</br>처음 마음 어찌 변할쏘냐 / 初心詎肯違</br>요분(전쟁)은 언제나 평정되리 / 妖氛何日定</br>다만 갑옷을 입고 나가 싸우기를 바랄 뿐이네 / 唯望一戎衣</br>하였다. 병신년 늦겨울에서야 퇴휴(退休)의 은전을 받았다. 생각하면 여생은 많지 않고 휴일인들 얼마나 되리오마는, 소원을 얻었으니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겠다. 휴일인들 얼마나 되리오마는, 소원을 얻었으니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겠다.)
  • E404  + (서화담(徐花潭)은 이름은 경덕(敬德)이요 타고 난 자질이 상지(上知)에 가까서화담(徐花潭)은 이름은 경덕(敬德)이요 타고 난 자질이 상지(上知)에 가까운데 특히 소역(邵易 소강절(邵康節)의 역)에 조예가 깊어 그가 뽑아낸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의 수(數)를 보면 하나도 잘못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시에,</br></br>책 읽으며 당초에는 경륜에 뜻 뒀는데 / 讀書當日志經綸</br>늙어가며 다시금 안회(顔回)의 가난이 좋아졌네 / 歲暮還甘顔氏貧</br>다툼의 요소 부와 귀는 손을 대기 곤란하니 / 富貴有爭難下手</br>막는 이 없는 자연 속에서 몸을 편히 해야 하리 / 林泉無禁可安身</br>낚시하고 나물 캐면 그런 대로 배 채우고 / 採山釣水堪充腹</br>바람과 달 시 읊으면 정신도 명랑해진다오 / 咏月吟風足暢神</br>의심없이 깨우쳐야 이것이 진정 쾌활한 것 / 學到不疑眞快活</br>일백 년 헛되이 살다 가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 免敎虛作百年人</br></br>이라 하였는데, 이를 통해 그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다.이라 하였는데, 이를 통해 그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 E047  + (세조(世祖) 때에 한림(翰林) 진감(陳鑑)과 태상(太常) 고윤(高閏)이 우리세조(世祖) 때에 한림(翰林) 진감(陳鑑)과 태상(太常) 고윤(高閏)이 우리나라에 왔는데, 한림 진감이 연꽃 그림을 보고 시를 짓기를,</br>쌍쌍의 백로는 서로 친한 것 같고 / 雙雙屬玉似相親</br>물 위로 나온 연꽃은 더욱 핍진하다 / 出水紅蓮更逼眞</br>객이 있어 이름이 송성하는 글에까지 퍼지고 / 名播頌聲緣有客</br>연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염계 뒤엔들 어찌 없겠는가 / 愛從周後豈無人</br>멀리서 바라봐도 절로 더위를 물리치겠고 / 遠觀自可袪煩暑</br>나란히 선들 어찌 속진(俗塵)에 물들으리요 / 幷立何曾染俗塵</br>그림으로도 이런 뜻을 알겠으니 / 料得丹靑知此意</br>거위와 오리가 이웃을 괴롭히는 것보다 낫구나 / 絶勝鵝鴨惱比隣</br>하였다. 박연성(朴延城)이 관반사가 되어 차운(次韻)하기를,</br>수향의 화조는 멀리서 친하기 어려운데 / 水鄕花鳥邈難親</br>붓으로 옮겨옴이 교묘하게 참[眞]을 빼앗아 왔구나 / 筆下移來巧奪眞</br>갓 피어 오른 연꽃 봉오리가 말하고자 하고 / 菡蓞初開如欲語</br>한가롭게 서 있는 백로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네 / 鷺絲閑立不驚人</br>진흙 속에서 났으나 오히려 깨끗하여 물들지 않았으며 / 淤泥淨色還無染</br>빙설 같은 고상한 자태 멀리 속진을 벗어났구나 / 氷雪高標逈脫塵</br>옥서(玉署 홍문관(弘文館))에 노는 신선이 보기를 싫어하지 아니함은 / 玉署遊仙看不厭</br>맑은 몸매와 향기로운 덕이 닮았기 때문인가 / 淸儀馨德與相隣</br>하였는데, 그 그림은 종사(從事) 이윤보(李胤保)가 그린 것이다. 또 〈희청부(喜晴賦)〉를 지었는데, 김문량(金文良)이 곧 차운하여 시를 지으니 한림이 크게 칭찬하면서, “동방의 문사(文士)는 중국과 다름이 없다.” 하였다. 태상(太常)은 사람됨이 교만하여 알성하는 날에 고풍(古風 한시의 한 체)을 짓고서 유사(儒士)들로 하여금 차운하게 하였다. 짓지 못하여 붓을 놓은 사람이 있으면, “시를 짓지 못한 자가 5명이다. 뒷날 차운하여 짓고자 하는 자는 천백 편을 지어도 좋다.”고 크게 썼는데, 그의 거만함이 이와 같았다.자는 천백 편을 지어도 좋다.”고 크게 썼는데, 그의 거만함이 이와 같았다.)
  • E073  + (세조가 내경청(內經廳)을 설치하여 조정 선비를 모아 경서를 쓰게 하여, 나의 백형(伯兄)과 홍익성(洪益城)ㆍ강인제(姜仁齊)ㆍ정동래(鄭東萊)ㆍ조치규(趙稚圭)ㆍ이기수(李期叟)의 무리가, 항상 궁에 갇혀 밖에 나와 놀지 못하였다. 백형이 장난 삼아 시를 짓기를, 손에 붓을 들고 / 手執毛錐子 따분하게 한 봄을 보내었도다 / 辛勤過一春 자욱한 꽃 그림자 속에서 / 濛濛花影裡 술 취한 사람은 그 누구인고 / 爛醉是何人 하였다.)
  • E036  + (소식의 제한간십사마도라는 시는 이렇다. <div class="poetr소식의 제한간십사마도라는 시는 이렇다.</br><div class="poetry-text">[[M067|<span class="fa fa-plus-circle poetry-link-btn"></span>]]한간이 그린 말이 참말이고,<br>소식이 지은 시는 그림을 보는 것 같네.<br>세상에는 백락도 없고 또 한간도 없으니,<br>이 시와 이 그림을 누가 볼 수 있겠는가.<br></div></br>문순공 이규보의 제노자도라는 시는 이렇다.</br><div class="poetry-text">[[M068|<span class="fa fa-plus-circle poetry-link-btn"></span>]]그림은 사람마다 간직하기 어렵지마는,</br>시는 곳곳마다 펼 수 있어라.</br>시 보는 것을 그림 보듯 하면,</br>그림 또한 만고에 전할 수 있으련만.</div></br><div class="critique-text">[[C042|<span class="fa fa-plus-circle critique-link-btn"></span>]]이 시들은 말은 같지 않으나, 거기에 쓰인 뜻은 서로 같다.</div>)
  • E381  + (손순효가 찬성(贊成)가이되었는데, 성종이 그 재주를 아껴 매우 중히 여겼다.손순효가 찬성(贊成)가이되었는데, 성종이 그 재주를 아껴 매우 중히 여겼다. 일찍이 인접하여 술을 내리니, 마침내 대취하였다. 임금이 묻기를, “경은 시를 지을 줄 아오.” 하자, “명하기만 하십시오.” 하였다. 임금이 장량(張良)으로써 글제를 삼고 마침내 가운데 중(中) 자로 첫 운자를 불러 지으라고 명했다. 대답하기를,</br>기모를 수랑사 가운데서 팔지 못하고 / 奇謀不售浪沙中</br>하니, 또 공(公) 자로 불렀다.</br>검을 짚고 돌아와 패공을 도왔네 / 杖劒歸來相沛公</br>하자, 그 대(對)를 봉(封) 자로 하니</br>계획은 이미 한 나라 왕업을 이루고 / 借箸已能成漢業</br>분모(모토를 분봉함 또는 제후로 봉하는 것)는 도리어 스스로 제 나라 봉해 줌을 사양했네 / 分茅却自讓齊封</br>했다. 그 다음 대(對)는 송(松) 자로 하니,</br>평생의 지략은 황석에게 전해 얻고, / 平生智略傳黃石</br>늘그막의 공명은 적송에게 붙였네 / 末路功名付赤松</br>하였고, 다음 대는 웅(雄) 자로 하니,</br>한신과 팽월이 끝내 젓갈 담겨진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노니 / 堪恨韓彭竟葅醞</br>공을 이루고 몸은 물러가는 것이 바로 영웅이라네 / 功成身退是英雄</br>하여, 응하기를 메아리치듯 하였다. 임금이 크게 기뻐하여, “경은 늙을수록 더욱 장성해지는 자라고 할 만하오.” 하고, 술이 취하자 임금이 늙은 궁인 하나를 나오라 하여, 비파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게 하고, 또 순효에게 일어나 춤을 추라 하니, 순효는 취했기 때문에 거꾸러져 일어나지 못하므로 임금이 남금단첩리(藍錦段貼裡 임금이 걸치듯 입는 옷 이름)를 벗어 덮어 주고 들어갔다. 임금과 신하 사이가 이와 같았으므로 지금까지도 듣는 사람이 감격하여 눈물짓는다.과 신하 사이가 이와 같았으므로 지금까지도 듣는 사람이 감격하여 눈물짓는다.)
  • E677  + (수호(垂胡) 임기(林芑)는 많은 서적을 읽었고 겸하여 남보다 뛰어난 총명함을수호(垂胡) 임기(林芑)는 많은 서적을 읽었고 겸하여 남보다 뛰어난 총명함을 지녔다. 그래서 무릇 구류백가(九流百家) 및 기서고문(奇書古文)을 눈으로 섭렵하고 입으로 외우지 않는 것이 없었다.</br>일찍이 서울에서 문인재자(文人才子)들이 모두 그의 집에 모여 각자의 견문(見聞)을 수호에게 문난(問難 질문)하였다. 수호가 좌우를 보면서 묻는 대로 즉답하는데 의혹스러운 곳이 없어서, 마치 쏟아지는 강물이나 흐르는 수은 같아 그침이 없었다. 호음(湖陰)은 늘 그를 가리키며 ‘걸어 다니는 비서〔行秘書〕’라고 말하였다.</br>호음은 술자리에서 많은 시를 지었는데 때때로 그 용사(用事)가 이해할 수 없는 곳이 있었으니, 대개 거짓으로 지어낸 것이나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수호가 일찍이 사적인 자리에서 호음을 모시고 있다가 물어 보기를,</br>“상공(相公)의 시는 자주 위어(僞語)로 사람을 속이는데 후세에는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십니까?”</br>하였다. 호음이 대답하기를,</br>“세간에 당신같이 안목을 기른 자가 몇이겠는가. 희작(戱作)은 사고(私稿)에는 등재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 후인의 눈에 띄겠는가.”</br>하였다. 마침내 서로 한바탕 웃었다.</br>호음은 병이 위독하자 수호에게 부탁하기를,</br>“그대가 꼭 내 시에 주를 달아 주게.”</br>하였다. 수호는 이를 허락하였다. 십여 년 후에 호음의 시고가 세상에 간행되었는데 주가 없었다. 가군(家君 아버님)이 수호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br>“제가 일찍이 그의 시를 수습하여 이미 한 권에 주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 용사와 문자가 대체로 거듭나오는지라 취하여 두루 열람해 본 즉 거듭나오는 곳이 갈수록 더욱 많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만두게 되었습니다…….”</br>하였다. 수호는 비록 이같이 박학했지만, 다만 시를 익히지도 않았고, 또한 즐겨 짓지도 않았다.</br>임신년(1572, 선조5)에 조사(詔使 중국 사신)를 맞이할 때 임기는 일기관(日記官)으로 임당(林塘)을 따라 용만(龍灣)에 갔다. 학사 습재(習齋) 권벽(權擘)이 조사의 시를 차운하여</br></br>중선루 위에서 북쪽으로 옷깃을 열고 / 仲宣樓上開襟北</br>자미 시 가운데 서쪽으로 길머리 했네 / 子美詩中首路西</br></br>라는 구절을 지었다. 수호가 말하기를,</br>“‘누상(樓上)’을 고쳐 ‘부리(賦裏)’로 하는 것이 어떠하실는지요?”</br>하였다. 임당이 가군을 보며 말하기를,</br>“저 부리를 치는 것이 좋겠소.”</br>하기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포복절도하였다. 우리 동방의 말에 부리〔喙〕와 ‘부리(賦裏)’의 음이 같은 까닭이었다.</br>그러나 증다산(曾茶山)의 시 〈송증굉수천태(茶山送曾宏守天台)〉의 함련(頷聯)에서,</br></br>흥공의 부 가운데 운하가 붉고 / 興公賦裏雲霞赤</br>자미의 시 중에 도서가 푸르네 / 子美詩中島嶼靑</br></br>하였으니, 수호가 어찌 근거 없이 이 말을 하였겠는가. / 子美詩中島嶼靑 하였으니, 수호가 어찌 근거 없이 이 말을 하였겠는가.)
  • E007  + (시중(侍中) 김부식(金富軾)과 학사 정지상은 문장으로 함께 한때 이름이 났는시중(侍中) 김부식(金富軾)과 학사 정지상은 문장으로 함께 한때 이름이 났는데, 두 사람은 알력이 생겨서 서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세속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상이, 임궁(琳宮)에서 범어를 파하니 / 琳宮梵語罷 하늘 빛이 유리처럼 깨끗하이 / 天色凈琉璃 라는 시구를 지은 적이 있었는데, 부식(富軾)이 그 시를 좋아한 끝에 그를 구하여 자기 시로 삼으려 하자, 지상은 끝내 들어 주지 않았다. 뒤에 지상은 부식에게 피살되어 음귀(陰鬼)가 되었다. 부식이 어느 날 봄을 두고 시를 짓기를, 버들 빛은 일천 실이 푸르고 / 柳色千絲綠 복사꽃은 일만 점이 붉구나 / 桃花萬點紅 하였더니,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상 귀신이 부식의 뺨을 치면서, “일천 실인지, 일만 점인지 누가 세어보았는냐? 왜, 버들 빛은 실실이 푸르고 / 柳色絲絲綠 복사꽃은 점점이 붉구나 / 桃花點點紅 라고 하지 않는가?” 하매, 부식은 마음속으로 매우 그를 미워하였다. 뒤에 부식이 어느 절에 가서 측간에 올라 앉았더니, 정지상의 귀신이 뒤쫓아 와서 음낭을 쥐고 묻기를,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왜 낯이 붉은가?” 하자, 부식은 서서히 대답하기를, “언덕에 있는 단풍이 낯에 비쳐 붉다.” 하니, 정지상의 귀신은 음낭을 더욱 죄며, “이놈의 가죽주머니는 왜 이리 무르냐?” 하자, 부식은, “네 아비 음낭은 무쇠였더냐?” 하고 얼굴빛을 변하지 않았다. 정지상의 귀신이 더욱 힘차게 음낭을 죄므로 부식은 결국 측간에서 죽었다 한다.지상의 귀신이 더욱 힘차게 음낭을 죄므로 부식은 결국 측간에서 죽었다 한다.)
  • E075  + (양양(襄陽)에서 남쪽으로 몇 리 떨어진 곳 길가에 입석(立石)이 있는데 항간에 전하는 말로는, “옛날에 한 안렴사(按廉使) 주기(州妓)를 몹시 사랑하다가 체직(遞職)이 되어 이별하게 되자 시를 지어 돌에 쓰기를, 너는 어느 때 돌이냐 / 汝石何時石 나는 금세의 사람이로다 / 吾人今世人 이별의 괴로움도 모르는 채 / 不知難別苦 홀로 서서 몇 번이나 봄을 지내었던고 / 獨立幾經春 하였다.”하는데, 어떤 사람은 함부림(咸傅霖)이 지은 것이라고도 말한다.)
  • E020  + (어느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푸른 옥으로 된 조그마한 연적(硯滴)을 나에게 어느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푸른 옥으로 된 조그마한 연적(硯滴)을 나에게 주기에, 두드려보니 소리가 나고 밑은 둥글고 위는 뾰족하였으며, 매우 작은 두 구멍이 있었는데, 다시 보니 구멍이 없어졌다. 꿈에서 깨어 그를 이상히 여겨 시로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꿈속에 옥병을 얻었는데 / 夢中得玉甁 푸른 옥 빛이 땅을 환히 비치네 / 綠瑩光鑑地 두드리니 쟁그랑 소리 나고 / 扣之鏗有聲 단단하고 윤택하니 물 담기 알맞다 / 緻潤宜貯水 여유있게 벼루에 물을 부어서 / 剩將添硯波 시 천 장을 쾌히 지으리라 / 快作詩千紙 조물주는 변화하는 걸 기뻐하고 / 神物喜幻化 천신은 아이의 장난 같은 일을 좋아하는구려 / 天工好兒戲 갑자기 구멍이 틈없이 닫혀져서 / 脗然飜閉口 한 방울 물도 받지 않는군 / 不受一滴沘 신선 돌에 틈이 열려서 / 有如仙石開 그 틈에서 석종유(石鐘乳)가 흐르는 것과 같으니 / 罅縫流靑髓 잠시 뒤엔 다시 굳게 닫혀져서 / 須臾復堅合 사람의 쏜가락도 용납하지 않는다 / 不許人容指 혼돈이 일곱 구멍을 얻더니 / 混沌得七竅 이레 만에 바로 죽었노라 / 七日乃見死 폭풍이 뭇구멍에서 일어서 / 怒風號衆穴 온갖 요란이 이로 좇아 일어났다 / 萬擾從此起 박을 쪼개는 일은 굴곡(屈轂)에게 걱정을 끼쳤고 / 鑽瓠憂屈轂 구슬을 꿰는 일은 부자를 괴롭혔다 / 穿珠厄夫子 모든 물건은 그 온전한 것이 귀하니 / 凡物貴其全 박을 쪼개는 일은 도리어 누가 된다 / 瓠鑿反爲累 형체가 온전함과 정신이 온전함에 관해서는 / 形全與神全 칠원리(漆園吏)에게 물어보라 / 要問漆園吏 온전함에 관해서는 / 形全與神全 칠원리(漆園吏)에게 물어보라 / 要問漆園吏)
  • E299  + (여자로서 시를 잘 짓는 사람은 예로부터 드문데, 하물며 재인(才人)을 얻기 여자로서 시를 잘 짓는 사람은 예로부터 드문데, 하물며 재인(才人)을 얻기 어려운 지금에랴? 옥봉 여도사(玉峯女道士)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의 낭군이 지방의 수령이 되어 공사로 서울에 갔다. 그때 북쪽 오랑캐가 침입하였다. 여자가 시를 지어 낭군에게 부쳤다.</br>싸우는 것은 비록 서생의 길과 다르지만 / 干戈縱異書生道</br>나라 근심으로 응당 머리 셀 것이네 / 憂國唯應鬢髮蒼</br>적을 칠 이때 곽거병을 생각하고 / 制敵此時思去病</br>오늘날 산가지 놀리는 것 장량을 생각하네 / 運籌今日憶張良</br>원성의 싸움 피는 산하를 붉게 물들이고 / 源城戰血山河赤</br>아보의 요망한 기운 일월도 누르스름 / 阿堡迷氛日月黃</br>서울 소식은 아직 오질 않으니 / 京洛音徽尙不達</br>창호의 봄빛 처량하네 / 滄湖春色亦悽涼</br>창호란 사는 곳의 물 이름이다. 그 낭군이 집에 돌아오자 또 한 절구를 적었다.</br>버드나무 강 언덕에 오마의 울음 소리 듣고 / 柳外江頭五馬嘶</br>반을 깨고 수심에 취하여 누각을 내릴 때라 / 半醒愁醉下樓時</br>봄꽃 붉은 빛이 야위어져 거울 보기 부끄러우나 / 春紅欲瘐羞看鏡</br>시험 삼아 매창 향해 반달 눈썹 그려보네 / 試畫梅窓却月眉</br>두 시는 청신 원활하고 장하고 고와서, 부인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닌 듯하여 매우 가상하다. 그는 사문 조원(趙瑗)이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아닌 듯하여 매우 가상하다. 그는 사문 조원(趙瑗)이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 E288  + (옛날 책사종(翟嗣宗)이 회남위(淮南尉)로 있었는데, 그때 감사(監司)에게 매옛날 책사종(翟嗣宗)이 회남위(淮南尉)로 있었는데, 그때 감사(監司)에게 매우 곤욕을 당하였다. 역관(驛館)에서 거미를 제목으로 시 한 수를 지었다.</br>실을 짜며 왕래하니 북같이 빠른데 / 織絲來往疾如梭</br>늘 공중에 올라 그물 만들기 좋아하네 / 長愛騰空作網羅</br>남을 해칠 몸과 마음 매우 적지마는 / 害物身心雖甚少</br>하늘에 늘어진 그물도 또한 많지 않구나 / 漫天網紀亦無多</br>숲 사이 자는 새들 너를 미워하지마는 / 林間宿鳥應嫌汝</br>발 아래 나는 벌레 그가 가장 너를 두려워한다 / 簾下飛虫最懼汝</br>사마귀가 매미 잡는 것 배우지 말지어다 / 莫學螳螂捕蟬□</br>모름지기 알아야지. 참새가 너를 잡을 줄을 / 須知黃雀奈君何</br>임자중(林子中)이 그를 불러 경박한 시를 짓지 말라고 꾸짖었다. 우리 동방(東方)에도 역시 무사(武士) 이장길(李長吉)이 있었는데, 그가 의흥 현감(義興縣監)으로 있을 때 백성들이 몹시 그를 미워하여 시를 지어 조롱하였다.</br>자하 자하 또 자하야 / 子賀子賀復子賀</br>관탕 민재 모두 비우고 / 官帑民財一倂空</br>오직 강산은 옮기지 못하여 / 惟有江山移不得</br>화공을 명하여 병풍 위에 그렸네 / 命工圖畫上屛風</br>자하(子賀)는 장길의 자(字)다. 근년에 어떤 사람이 장편을 지어 종루(鐘樓) 기둥에 걸어서 낱낱이 조정 사대부(士大夫)를 헐뜯었으니, 진실로 조정에 뜻을 얻지 못한 사람이 아니면 바로 천박하고 경솔한 사람일 것이다. 시는 비록 볼 만하였으나, 실로 책사종(翟嗣宗)의 죄인인 것이다. 것이다. 시는 비록 볼 만하였으나, 실로 책사종(翟嗣宗)의 죄인인 것이다.)
  • E397  + (우리 나라에 대단한 문장가들이 많이 배출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 식대로우리 나라에 대단한 문장가들이 많이 배출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 식대로 하려고만 힘썼을 뿐 당(唐) 나라 때의 작품에서 모범을 취해보려고 노력한 작품조차 극히 드문 실정이다. 그런데 충암(沖菴 김정(金淨))과 망헌(忘軒 이주(李冑)) 이후로는 최경창(崔慶昌)ㆍ백광훈(白光勳)ㆍ이달(李達) 등 몇 사람이 가장 저명하다. 충암의 시 가운데 사람들의 입으로 전송(傳誦)되어 오는 것이 원래 많은데, 가령</br></br>강남 땅 못다 꾼 꿈 고요한 대낮인데 / 江南殘夢晝厭厭</br>꽃다운 해 날마다 시름만 더해가네 / 愁逐年芳日日添</br>꾀꼬리 제비 오지 않고 봄날 또 저무는데 / 鶯燕不來春又暮</br>살구꽃에 이슬비 발을 도로 내려놓네 / 杏花微雨下重簾</br></br>이라고 한 것이나, 또</br></br>가을 바람 낙엽지는 금강의 가을인데 / 西風木落錦江秋</br>연무 덮인 모래섬 바라보면 시름겨워 / 煙霧蘋洲一望愁</br>해 저물녘 술은 깨고 사람은 멀리 떠나는데 / 日暮酒醒人去遠</br>감당 못할 이별 생각 강 누각에 가득하네 / 不堪離思滿江樓</br></br>라고 한 시 등은 당 나라 사람들의 시집 속에 놔두어도 쉽게 분간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망헌의 시 가운데</br></br>통주는 천하의 절경이라 / 通州天下勝</br>누각들 하늘에 솟았구나 / 樓觀出雲霄</br>저자엔 금릉의 물화(物貨) 가득하고 / 市積金陵貨</br>물줄기 양자강에 합류하네 / 江通楊子潮</br>가을이라 까마귀떼 물가에 내려 앉고 / 飢鴉秋落渚</br>저녁이라 외로운 새 요동으로 돌아간다 / 獨鳥暮歸遼</br>말 탄 이 내 몸 천리 길 나그네라 / 鞍馬身千里</br>정자 올라 바라보는 멀고 먼 고국땅 / 登臨故國遙</br></br>라고 한 것 역시 충암에 버금가는 시라고 하겠다. 최(崔)의 시에,</br></br>지난 해 절 언덕에 배를 갖다 대놓고는 / 去歲維舟蕭寺岸</br>꽃 꺾어 물가에서 전송을 하였었지 / 折花臨水送行人</br>이별 슬픔 저 산승은 아는지 모르는지 / 山僧不管傷離別</br>문을 닫고 무단히 또 봄 한 철을 보내누나 / 閉戶無端又一春</br></br>이라고 한 것이나, 백(白)의 시에,</br></br>못 속엔 붉은 연꽃 바람이 집에 가득터니 / 紅藕一池風滿院</br>나무마다 매미 소리 비가 마을로 몰려가네 / 亂蟬千樹雨歸村</br></br>이라고 한 것이나, 이(李)의 시에,</br></br>병객의 외로운 배 달빛만 밝게 비춰주고 / 病客孤舟明月在</br>노승의 적막한 절 꽃잎만 많이 져 있구나 / 老僧深院落花多</br></br>라고 한 표현들은 한 번 음미하면 그 맛을 알 수가 있다. 老僧深院落花多 라고 한 표현들은 한 번 음미하면 그 맛을 알 수가 있다.)
  • E380  + (윤결(尹結) 공이 젊었을 때 어느날 작은 마루에 나와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윤결(尹結) 공이 젊었을 때 어느날 작은 마루에 나와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고운 옷을 입은 종 하나가 나타나, 명함을 내어 놓기에 문으로 가서 맞이하니, 한 관인(官人)이 따라 들어오는데, 의관과 용모가 매우 바르고 깨끗하였다. 장원이 말하기를, “ 반드시 잘못 찾아오신 겁니다. 어찌 우리 집에 올 관인이 있겠습니까. 그만두시고 다른 데 가서 찾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하자, 그 관인은 말하기를, “꼭 윤 진사님을 뵙고자 합니다.” 하였다. 장원은 바로 갓과 옷을 가져오라 명하고 손님을 들어오시도록 하니, 그 관인은 자리를 옮겨 꿇어 앉아 말하기를, “제가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 어른을 번거롭게 하니, 말이 나오지 아니하여 감히 여쭙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명하신 어른께서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였다. 장원이 말하기를, “공의 모습을 뵈옵건대 현달한 관원 같으신데,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이렇게 오시어 이름도 없는 저를 찾으셨습니까.” 하였다. 그 관인은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말하기를, “장옥견(張玉見) 선생이 남양부백(南陽府伯)이 되었는데, 거문고 잘 타는 사람이 차례가 되어 서울에 왔었는데, 제가 우연히 그와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되어 그것을 계기로 정이 함빡 들어 떨어지려 하여도 차마 떨어질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장공에게 관대하게 용납하기를 청해 보았지만 허락해 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이름난 어른들의 글을 가져다가 청을 넣어 보았지만 그래도 허락하지 못하겠다 하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만일 윤 진사의 시를 얻게 된다면, 내가 1년 동안 빌려 주겠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감히 두려움을 무릅쓰고 와서 청하는게 올시다.” 하고, 이어서 술과 돈과 홍화전(紅花牋 글 쓰는 종이)한 폭을 꺼내서 무릎을 꺼내서 무릎을 꿇고 바치면서, “원하옵건대 명공(明公)께서 한 번 글 지으시는 노고를 아끼지 마시고 베푸시어 이 목마르고 주린 사람의 소망을 풀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장원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왜 다른 시를 구해다가 내가 지은 양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아니합니까.” 하니, 그는 또 말하기를, “고명한 선생의 시명(詩名)이 당대에 제일인 까닭으로 장공께서 꼭 얻고자 하옵니다. 다른 분의 시야 어디 이를 나위가 있습니까.” 하였다. 장원이 마침내 율시(律詩) 한 수를 내리쓰니,</br>보압좋은 향로(옛날의 향로는 오리 모양이었다)에 향불 잦아지고 / 寶鴨香銷罷</br>난당(아름다운 방 또는 여자가 쓰는 그윽한 방)에는 연기 흩어지네 / 蘭堂烟散初</br>등잔불 식어가니 작은 병풍은 어슴푸레하고 / 燈寒小屛暗</br>달 떠오르니 반쯤 드린 발에 빛 새어 들어 오누나 / 月上半簾疎</br>혀를 내밀면 모두 시샘을 이루고 / 吐舌皆成妬</br>맹약을 삼으면 또 헛될까 두렵구나 / 申盟更怕虛</br>낭군(郞君)의 정이 나와 같을 양이면 / 郞君情似妾</br>어찌 백년 된 옥이라도 아낄 것인가 / 何惜百年磲</br>하였다. 다 써서 주니, 그 관인이 고맙다 인사하고 돌아갔다. 얼마 후에 그 관인이 와서 사례하여 말하기를, “장 사또께서 선생의 시를 얻고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거문고 타는 아가씨를 돌려보내라고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관인은 옥천군수(沃川郡守) 왕손명(王孫名)이었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관인은 옥천군수(沃川郡守) 왕손명(王孫名)이었다.)
  • E210  + (이용재(李容齋)가 주운(朱雲)을 읊은 시(詩)에, 허리 사이에 칼이 있으니 이용재(李容齋)가 주운(朱雲)을 읊은 시(詩)에,</br>허리 사이에 칼이 있으니 어찌 청할 필요가 있으랴 / 腰間有釰何須請</br>지하에 사람이 없더라도 또한 족히 놀 만하리라 / 地下無人亦足遊</br>애석하다. 한 나라 조정의 괴리령은 / 可惜漢庭槐里令</br>평생에 오직 아첨하는 신하의 머리만 알았도다 / 一生唯識佞臣頭</br>하였는데, 고금(古今)에 주운을 읊은 자가 이런 생각이 없었으니, 비록 당(唐)ㆍ송(宋)의 문집 속에 넣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정덕 신사년에 용재(容齋)가 멀리 당태사(唐太史) 고(皐)를 의주(義州)에서 영접하는데, 태사가 법도가 있어서 말도 경솔히 하지 않았다. 정주(定州)에 이르러 용재가 같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속필(速筆)로, 태사가 지은 음락(飮酪)에 대한 절구(絶句) 네 수(首)에 차운(次韻)하니, 태사가 이를 보고 “참으로 노련한 솜씨다.”라 하였다.에 차운(次韻)하니, 태사가 이를 보고 “참으로 노련한 솜씨다.”라 하였다.)
  • E302  + (임 사문(林斯文 임형수(林亨秀)를 말함)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천하에임 사문(林斯文 임형수(林亨秀)를 말함)이 말하기를,</br>“내가 일찍이,</br>천하에 어찌 천리마가 없으리오 / 天下豈無千里馬</br>인간에 구방 고를 얻기 어렵도다 / 人間難得九方皐</br>하는 한 연구(聯句)를 얻었는데, 그뒤에 황산곡(黃山谷)의 시집을 보니 거기에,</br>세상에 어찌 천리마가 없겠는가 / 世上豈無千里馬</br>사람 가운데 구방 고를 얻기 어렵도다 / 人中難得九方皐</br>라는 글귀가 있었다. ‘세상’이라 한 것은 나의 ‘천하’보다 못하고, 그의 ‘사람 가운데[人中]’라 한 것은 나의 ‘인간(人間)’보다 낫다.”</br>하였다. 생각으로는 황산곡의 이 말은 고금에 뛰어났으며, 그후로 어찌 여기에 겨룰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고 우연히 합치되었다면 그는 천 년 뒤에 황산곡과 겨룬다 할 수 있다.지 않고 우연히 합치되었다면 그는 천 년 뒤에 황산곡과 겨룬다 할 수 있다.)
  • E071  + (중 둔우(屯雨)는 환암(幻庵 혼수(混修))의 고제(高弟)이다. 어려서부터 학중 둔우(屯雨)는 환암(幻庵 혼수(混修))의 고제(高弟)이다. 어려서부터 학업에 힘써 경전(經傳)을 탐독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뜻을 정밀하게 연구하였다. 또 시에도 능하여 시사(詩思)가 청절하여 목은(牧隱)ㆍ도은(陶隱) 등 선생과 더불어 서로 시를 주고 받았다. 아조(我朝)에서는 불교를 숭상하지 않아 명가의 자제는 머리를 깎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승려로서 글을 아는 자가 없어 사(師)의 이름이 더욱 나타났으며 사방의 학자가 구름과 같이 모여들고, 집현전의 선비들도 모두 탑하(榻下)에 나아가 글을 물으니, 성대하게 유석 사림(儒釋士林)의 사표가 되어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였다. 나의 백형과 중형이 일찍 회암사(檜巖寺)에서 글을 읽을 때, 사의 나이가 90여 세였는데 용모가 맑고 파리하며, 기체가 여전히 강하여 혹은 이틀쯤 밥을 먹지 않아도 그다지 배고파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밥을 올리면 혹은 몇 그릇을 다 먹되, 또한 배부른 빛이 없고 며칠이 지나도록 변소에 가지 아니하며, 항상 빈 방에 우뚝 앉아서 옥등을 달고 깨끗한 책상을 놓고, 밤새도록 책을 보아 작은 글자까지 하나하나 연구하며 졸거나 드러눕는 일이 없으며, 사람을 물리쳐 옆에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부를 일이 있으면 손으로 소쟁(小錚)을 쳐서 제자들이 수응하도록 하였으며, 큰소리를 지르지 아니하였다. 일본 국사인 중 문계(文溪)가 시를 구하여 진신(縉紳) 중에서 시를 지은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되었는데, 사도 또한 명을 받들어 시를 지었다. 그 시에,</br>수국고정 / 水國古精</br>상쾌한 무위의 사람이로다 / 灑然無位人</br>빨리 달리는 것도 응당 스스로 그칠 것이요 / 火馳應自息</br>고목처럼 섰으니 다시 누구와 친하리오 / 柴立更誰親</br>풍악에는 구름이 발 아래에서 일고 / 楓岳雲生屨</br>분성에는 달빛이 성문에 가득하도다 / 盆城月滿闉</br>바람 맞은 돛은 해천이 넓고 / 風帆海天闊</br>매류는 고원의 봄이로구나 / 梅柳故園春</br>하였다. 당시에 춘정(春亭)이 문형(文衡)을 주관(主管)하였는데, 쇄연무위(灑然無位)의 글귀를 고쳐서 “소연절세인(蕭然絶世人 쓸쓸히 세상과 인연을 끊은 사람)이라 하니, 스승이 말하기를, “변공(卞公)은 참으로 시를 모르는 사람이로다. 소연(蕭然)이 어찌 쇄연(灑然)만 하며, 절세(絶世)가 어찌 무위(無位)만 하겠는가. 이것은 자연무위(自然無爲)의 뜻을 깎아 없앨 뿐이로다.”하고, 항상 문사를 보면 섭섭해 마지않았다. 지금 천봉집(千峯集)이 세상에 전해진다.상 문사를 보면 섭섭해 마지않았다. 지금 천봉집(千峯集)이 세상에 전해진다.)
  • E298  + (중국에 나만호(羅萬湖)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시(詩)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중국에 나만호(羅萬湖)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시(詩)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 만력(萬曆 명 신종(明神宗)의 연호) 임오년(1582, 선조 15)에 황태자가 탄생하였을 때에 조서를 받들고 우리 나라에 오게 되었다가, 나이 늙었기 때문에 황홍헌(黃洪憲) 공과 바꾸게 되었다. 나(羅)의 ‘계문에서 사냥을 보다[薊門見獵]’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br>눈에 띄는 언덕들은 백 번 전쟁한 땅 / 滿目邱墟百戰餘</br>나그네 심정은 시든 풀처럼 처절하다 / 旅情衰草共悽如</br>차운 산 옛 토성에 가을 사냥 만났으며 / 寒山古堠逢秋獵</br>먼 물 외로운 등불에 밤 고기잡이 보이더라 / 遠水孤燈見夜漁</br>집은 소상강에 저녁 비도 많은 곳 / 家在瀟湘多暮雨</br>기러기 분포에서 날아오나 고향 편지 없더라 / 雁來湓浦少鄕書</br>친구는 한 번 이별에 삼천 리 / 故人一別三千里</br>슬프다 동과 서에 정처 없구나 / 惆悵東西未定居</br>구법(句法)이 원활하여 이른바 판자 위에 탄환(彈丸) 구르는 것같다. 이것은 전해 들은 것이고, 그의 작품을 많이 얻어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이것은 전해 들은 것이고, 그의 작품을 많이 얻어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 E289  + (중묘조(中廟朝)에 중추(中樞) 이사증(李思曾)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시에 탐중묘조(中廟朝)에 중추(中樞) 이사증(李思曾)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시에 탐닉하는 버릇이 있었다. 함경 일도의 시판(詩板) 중에 상정(橡亭)이라 한 것이 그 사람이다. 그 시는 혹 볼 만한 것이 있었다.</br>근세에 함양군(咸陽郡)에 한 무사가 있는데, 성은 정(鄭)이요, 이름은 척(陟)이며, 스스로 호를 죽계(竹溪)라 한다. 그의 시에,</br>죽계의 늙은이는 벼슬을 마다 하고 / 竹溪窮老謝籫纓</br>이 누각에 누웠으니 병든 몸 가벼워라 / 臥着玆樓病骨輕</br>물새 한 울음에 산비도 멎을시고 / 水鳥一聲山雨歇</br>구름에 새어나온 저녁 놀 반쯤 밝았더라 / 漏雲殘照半邊明</br>하였다. 무인이라고해서 가벼이 볼 수 없다.반쯤 밝았더라 / 漏雲殘照半邊明 하였다. 무인이라고해서 가벼이 볼 수 없다.)
  • E300  + (지금의 시학(詩學)은 오로지 만당(晩唐)을 숭상하고 소동파(蘇東坡) 시를 버지금의 시학(詩學)은 오로지 만당(晩唐)을 숭상하고 소동파(蘇東坡) 시를 버려두고 있다. 호음(湖陰)이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br>“소동파의 시가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배우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br>하고, 퇴계(退溪) 역시 말하기를,</br>“소동파의 시가 과연 만당에 미치지 못하는가?”</br>하였다. 나 역시 생각하기를, 소동파의 시에 이른바,</br>어찌 청주 육종사가 / 豈意靑州六從事</br>오유 선생이 될 줄 알았으랴 / 化爲烏有一先生</br>한 것이라든지,</br>옥루가 얼어 추워서 소름이 돋고 / 凍合玉樓寒起粟</br>빛은 은해를 흔들어 안화가 피는구나 / 光搖銀海眩生花</br>라고 한것,</br>풍화가 잘못 장춘원에 날아들고 / 風花誤入長春苑</br>구름 달은 길이길이 불야성에 다달았네 / 雲月長臨不夜城</br>한 것들이, 만당시 가운데 이 시처럼 빼어난 것과 겨룰 만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고려 시대에 과거의 방(榜)이 붙을 때마다 ‘33인의 소동파가 나왔다.’ 하였다. 고려의 문장은 본조(本朝)보다 우수한데, 그때 온 세상이 소동파를 사종(師宗)으로 삼았으니, 소동파의 시를 수준이 낮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됨을 가볍게 보아서라면, 만당대(晩唐代)의 시인으로 소동파보다 나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오직 퇴계 상공은 소동파 시를 즐겨 읽어, 언제나,</br>구름 흩어 달 밝으니 그 누가 점철하였는가 / 雲散月明誰點綴</br>하늘색 바닷빛은 본디 맑은 것 / 天容海色本澄淸</br>이라는 구를 외웠다. 자신이 지은 시에도 소동파의 시를 끌어 쓴 것이 많다.이라는 구를 외웠다. 자신이 지은 시에도 소동파의 시를 끌어 쓴 것이 많다.)
  • E387  + (진란 때에는 왜놈들이 득실거렸다. 선조(宣祖)는 서쪽으로 피란 길을 떠났는데진란 때에는 왜놈들이 득실거렸다. 선조(宣祖)는 서쪽으로 피란 길을 떠났는데, 상국(相國) 정철(鄭澈)을 귀양살이에서 풀어 도체찰사(都體察使)의 직에 임명하였다. 정철이 명을 받고 남으로 내려갈 때, 황해도 장연(長淵)의 금사사(金沙寺)에 이르러 10일 동안을 묵게 되었는데, 때는 - 4자 빠짐 - □해 7월 가을이었다. 정철이 감개하여 드디어 율시 한 수를 지었는데, 그 시에,</br>금사사에 열흘 머무른 것이 / 十日金沙寺</br>고국을 생각하는 마음 삼년과 같이 길게 하누나 / 三秋故國心</br>밤 밀물은 새벽 바람을 흩뜨리는데 / 夜潮分爽氣</br>돌아오는 기러기 떼는 슬픈 소리를 보내오네 / 歸雁送哀音</br>오랑캐가 나타나니 자주 칼을 보게 되고 / 虜在頻看劍</br>훌륭한 사람이 죽었으니 거문고를 끊고자 하노라 / 人亡欲斷琴</br>평소에 읽던 출사표를 / 平生出師表</br>난리를 당하여 다시 한 번 길게 읊어 보노라 / 臨難更長吟</br>하였다.生出師表 난리를 당하여 다시 한 번 길게 읊어 보노라 / 臨難更長吟 하였다.)
  • E058  + (충선왕(忠宣王)은 오랫동안 원 나라에 머물고 있어서 정든 사람이 있었더니, 충선왕(忠宣王)은 오랫동안 원 나라에 머물고 있어서 정든 사람이 있었더니, 귀국하게 되자 정인(情人)이 쫓아오므로 임금이 연꽃 한 송이를 꺾어주고 이별의 정표로 하였다. 밤낮으로 임금이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여 익재(益齋)를 시켜 다시 가서 보게 하였다. 이익재가 가보니 여자는 다락 속에 있었는데, 며칠 동안 먹지를 않아 말도 잘 하지 못하였으나 억지로 붓을 들어 절구 한 수를 쓰는데,</br>보내주신 연꽃 한 송이 / 贈送蓮花片</br>처음엔 분명하게도 붉더니 / 初來的的紅</br>가지 떠난 지 이제 며칠 / 辭枝今幾日</br>사람과 함께 시들었네 / 憔悴與人同</br>하였다. 익재가 돌아와서, “여자는 술집으로 들어가 젊은 사람들과 술을 마신다는데 찾아도 없습니다.”고 아뢰니, 임금이 크게 뉘우치며 땅에 침을 뱉었다. 다음해의 경수절(慶壽節 왕의 생일)에 이익재가 술잔을 올리고는 뜰아래로 물러나와 엎드리며,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그 연유를 물으므로 이익재는 그 시를 올리고 그때 일을 말했다. 임금은 눈물을 흘리며, “만약 그날 이 시를 보았더라면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돌아갔을 것인데, 경이 나를 사랑하여 일부러 다른 말을 하였으니, 참으로 충성스러운 일이다.” 하였다. 사랑하여 일부러 다른 말을 하였으니, 참으로 충성스러운 일이다.” 하였다.)
  • E328  + (현감 이희안(李希顔)과 남명 조식은 다 유일(遺逸)로 등용되었는데, 조식은 현감 이희안(李希顔)과 남명 조식은 다 유일(遺逸)로 등용되었는데, 조식은 누차 불러도 응하지 않았고, 이희안은 전후 세 번이나 임명되었다. 조식은 시를 주었는데, 대개 조롱한 말이었다.</br>산해정 속에서 꿈이 몇 번이던고 / 山海亭中夢幾回</br>황강에 늙은 사람은 눈이 뺨에 가득하네 / 黃江老漢雪盈腮</br>반평생 세 번이나 조회하러 갔으나 / 半生三度朝天去</br>군왕의 얼굴도 못 보고 왔네 / 不見君王面目來</br>이상의 시에 산해(山海)는 조식의 정자 이름이요, 황강(黃江)은 대개 이희안을 가리킨 것이리라.海)는 조식의 정자 이름이요, 황강(黃江)은 대개 이희안을 가리킨 것이리라.)
  • C013  + (그 사람은 이 시를 보고 재삼 찬탄하며, “이 사람이 살아 있는가? 지금 무슨 벼슬을 하고 있는가? 혹시 만나 볼 수 있겠는가?”)
  • E743  + ("" 시는 누가 지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참으로 광대의 말이니 비루하고 가소롭다. 흰 갈매기가 어찌 사람과 수답하는 이치가 있겠는가. 세상에는 시를 아는 이가 드물어서 모두 칭송하여 명작이라 하고 혹은 내가 지은 것이라 여기니 배를 잡고 웃을 일이다.)
  • E742  + ("" 이는 곧 광대의 농담으로 실로 침을 뱉고 버릴 만하다. 혹 전해지기를 봉래 양사언의 시라 하는데 결코 그가 지은 것이 아님을 안다. 그의 시집 중에 과연 이러한 시가 있는가.)
  • E180  + (가정 경신년 겨울에 호남 지방 감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신유년 봄에 병으로 전가정 경신년 겨울에 호남 지방 감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신유년 봄에 병으로 전주에 머물며 조리하던 중에 기생 금개(今介)와 함께 산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금개의 나이 겨우 20살인데, 성질이 약삭빠르고 영리하였다. 전주에서 돌아올 때 정오가 되어 우정(郵亭)에서 쉬고 있는데, 기생 또한 따라와 송별하기에 내가 시를 지어 주기를,</br>봄 내내 병중에서 보내다가 / 一春都向病中過</br>이별하기 어려운 것 넌들 어찌 하리 / 難思無端奈爾何</br>침상에서 몇 번이나 눈썹을 찡그렸고 / 枕上幾回眉蹙黛</br>술자리에서는 그저 애교의 눈웃음이었네 / 酒邊空復眼橫波</br>객사에 늘어진 버들 애타게 보며 / 愁看客舍千絲柳</br>참고 양관의 한 곡조 들어 주소 / 忍聽陽關一曲歌</br>문밖에 해가 져도 떠나지 못하겠으니 / 門外日斜猶未發</br>좌중에 누가 고민이 많음을 알아주랴 / 座間誰是暗然多</br>하였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서 내가 첩(妾)을 잃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전주 기생 금개가 일찍이 사람을 따라 상경했다가 그 사람이 죽어 과부로 지내는데, 마침 공의 첩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옛정을 사귀고자 한다.” 하기에, 내가 허락하고자 하였으나 마침 사고가 있어서 이루지 못하였으니, 헤어졌다가 다시 합치는 것도 운수가 있는가 보다.있어서 이루지 못하였으니, 헤어졌다가 다시 합치는 것도 운수가 있는가 보다.)
  • E218  + (가정 신축년에 내가 하절사(賀節使)를 따라 연경에 갔을 때, 때마침 무종(武가정 신축년에 내가 하절사(賀節使)를 따라 연경에 갔을 때, 때마침 무종(武宗)의 황후가 돌아갔으므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반열(班列)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나아가 곡(哭)하였다. 어느 날 일찍 사문(社門) 밖에 임시로 앉아 있는데, 중국 관원들이 많이 와서 극우(隟宇)에 앉아 있었다. 한 벼슬아치가 역사(譯士) 홍겸(洪謙)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시를 지을 수 있는가.” 하니 홍겸이, “어젯밤에 비가 조금 내려 나그네의 회포가 쓸쓸하여 우연히 절구 한 수를 지었다.”고 하였더니, 그 벼슬아치가 매우 간곡히 보여 달라고 하였다. 홍겸이 최고운(崔孤雲)의 시를 써서 보여 주었는데,</br>가을 바람에 비록 애써 읊었으나 / 秋風雖苦吟</br>세상에 알아 주는 사람이 적구나 / 世俗少知音</br>창밖은 비내리는 한밤중인데 / 窓外三更雨</br>등잔 앞에서 먼 고향 생각에 잠겨 있네 / 燈前萬里心</br>하였다. 벼슬아치가 가지고 가서 그 상관에게 보였더니, 다투어 벼슬아치를 보내 적어 갔다. 한참 손님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심지어 과일과 차를 가지고 와서 위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 한 사람이 붓을 들어 홍겸에게 주면서, “그대, 다시 한 수 지어 달라.” 하니, 홍겸이 나를 가리키며, “저 분도 시를 잘 지으니 가서 청하여 보라.” 하니, 드디어 나에게 구하였다. 내가 종이에 쓰기를, “조충전각(雕虫篆刻 자질구레하게 문장의 문구를 수식함)은 본래 장부의 할 일이 아니다. 하물며 국상(國喪)을 당하였는데, 어찌 풍월을 읊을 때냐. 그래도 원한다면 길에서 지은 것이 있으니, 그 중의 절구 하나를 보여 주리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매우 다행이라.”고 하였다. 이에, “탕참(湯站)에 이르러 사람을 동쪽으로 돌려보내다.”라는 시를 썼는데, 그 시는,</br>송골산 앞 길에서 / 松鶻山前路</br>그대는 동으로 나는 서쪽으로 헤어지네 / 君東我馬西</br>집에 편지 써 보내려고 / 欲題家信去</br>종이를 대하니 생각이 도리어 아득하구나 / 臨紙意還迷</br>하였다. 서로 돌아보며 베껴 쓰기를 처음과 같이 하였다. “어찌 풍월을 읊을 때이냐.”의 말을 가리켜 탄복하기를, “참으로 예의를 아는 나라로다.” 하였다.냐.”의 말을 가리켜 탄복하기를, “참으로 예의를 아는 나라로다.” 하였다.)
  • E240  + (가정 을축년(1505)에 서울 사람들이 서로 전하기를, 제천정의 들보에 근체가정 을축년(1505)에 서울 사람들이 서로 전하기를, 제천정의 들보에 근체 율시가 적혀 있다고 하였다 "" 보고 들은 자들이 정자의 들보가 극히 높아서 시인이 시를 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반드시 귀신이 쓴 시라고 여겼다. 도성 아래가 소란스러우며, 모두 괴이하게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말하기를, 들보의 시가 이제 없고 글씨는 원의 벽에 있다고 하니, 더욱 괴이하게 여겼다. 내가 분변하여 말하기를, "이른바 들보에 제시했다는 것은 본래 그런 일이 없었고, 다만 원의 벽에 쓰여 있었는데 전하는 자가 잘못한 것이다. 어찌 일찍이 들보에 있었다가 지금은 벽에 있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내가 이 시를 호음 정사룡 선생에게 보였더니, "시가 심히 졸렬하고 속되며, 또한 장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반드시 불자의 무리가 이것을 지어서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의 무리가 이것을 지어서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E173  + (갑신년 여름에 내가 좌참찬이 되었을 때, 영의정에는 박순, 좌의정에는 노수신갑신년 여름에 내가 좌참찬이 되었을 때, 영의정에는 박순, 좌의정에는 노수신, 우의정에는 정유길이며, 우찬성에는 정철과 나였는데, 모두 장원 급제를 하였다. 3공(三公 박순ㆍ노수신ㆍ정유길)은 모두 대제학을 지냈고, 찬성(정철)은 이때 제학을 겸하고 있었으며, 나도 일찍이 제학을 지냈으니, 이 다섯 사람은 한때 동료로서 성대한 일이라고 하겠다. 내가 시를 짓기를,</br>담담한 정승청에 장원들만 모였으니 / 潭潭相府會龍頭</br>인간 성사로 비교하기 드무네 / 盛事人間罕比侔</br>한때 규와 벽처럼 빛난다고들 말하는데 / 爭道一時奎璧煥</br>나 같은 용렬한 사람이 명류에 끼임이 부끄럽네 / 只慙庸品厠名流</br>하니, 찬성이 화답하기를,</br>5학사에 5장원이 있고 보니 / 五學士爲五壯頭</br>내 이름 비교도 안 되네 / 聲名到我不相侔</br>다만 좋은 일에는 분별이 없는 듯하니 / 只應好事無分別</br>당시 제일류라 하리로다 / 等謂當時第一流</br>하였다. 듯하니 / 只應好事無分別 당시 제일류라 하리로다 / 等謂當時第一流 하였다.)
  • E096  + (경진년(1460, 세조6)에 북방을 정벌할 때에 문충공(文忠公) 신숙주(申叔경진년(1460, 세조6)에 북방을 정벌할 때에 문충공(文忠公) 신숙주(申叔舟)가 상장(上將)이 되었다. 하루는 막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문충공이 군중(軍中)에 명령하기를 “많은 사람 중에 시를 지어 오늘의 뜻을 묘사하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를 뽑아 상객(上客)으로 삼겠노라.” 하였다. 별시위(別侍衛) 박휘겸(朴撝謙)이란 사람이 즉석에서 읊기를,</br>십만의 용맹한 군사 수루를 에워쌌는데 / 十萬貔貅擁戍樓</br>밤 깊은 변방 달빛 여우 갖옷에 싸늘하네 / 夜深邊月冷狐裘</br>한 줄기 긴 피리 소리 어디서 들려오는가 / 一聲長笛來何處</br>정부의 만리 시름을 불어서 다 없애주네 / 吹盡征夫萬里愁</br>하니, 문충공이 기뻐하여 그를 뽑아 상객으로 삼았다. 박휘겸이 이로 인해 시명(詩名)을 얻게 되었다.그를 뽑아 상객으로 삼았다. 박휘겸이 이로 인해 시명(詩名)을 얻게 되었다.)
  • E522  + (계랑은 부안의 기생인데 스스로 매창이라 호를 지었다. 일찍이 한 나그네가 그녀의 이름을 듣고 시를 지어 희롱하였다. 계랑이 즉시 차운하기를, ""라 하였다. 그 사람이 기뻐하지 않으며 떠나갔다. 계랑은 평소 거문고와 시를 좋아하였으며, 죽을 적에 거문고를 같이 묻었다 한다.)
  • E750  + (고금의 학문에 힘쓰는 선비들은 모두 부지런함으로써 이루지 않은 이가 없다. 고금의 학문에 힘쓰는 선비들은 모두 부지런함으로써 이루지 않은 이가 없다. 우리나라의 문장이 뛰어난 사람들 가운데 독서를 많이 한 사람 또한 역력히 헤아릴 수가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괴애 김수온은 문을 닫아걸고 독서하면서 밖을 내다보지도 않아서 마루를 내려와 낙엽을 보고는 비로소 가을임을 알았다 한다. 허백당 성현은 낮에는 책을 읽고 밤에는 암송하면서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아 변소에 가서 돌아오기를 잊기도 하였다. 김일손은 한유의 글을 천 번 읽었고 윤결은 맹자를 천 번 읽었으며 소재 노수신은 논어와 두시를 이천 번 읽었고 백호 임제는 중용을 팔백 번 읽었으며 간이 최립은 한서를 오천 번을 읽었으며 특히 항적전을 일만 번 읽었다. 창주 차운로는 주역을 오백 번 읽었고 동악 이안눌은 두시를 수천 번 읽었으며 어우 유몽인은 장자와 유종원의 문장을 천 번 읽었고 동명 군평 정두경은 사마천의 사기를 수천 번 읽었다. 나는 성질이 노둔하여 읽는 바 공부를 다른 사람의 배로 하였다. 사기, 한서, 한유, 유종원과 같은 것을 모두 베껴서 읽기를 만여 번에 이르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백이전으로 일억일만삼천 번에 이르도록 읽었다. 마침내 나의 작은 집을 억만재라 하고 절구 한 수를 지었다. "" 지난 경술년(1670)에 시절이 가뭄을 만나 팔도에 흉년이 들었고 다음해에는 크게 기근과 역병이 돌아서 도읍과 시골에 시체가 쌓였는데 그 수를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금년에 죽은 사람과 그대의 책을 읽은 숫자 중에 어느 것이 많은가?" 대개 나의 독서를 희롱한 것이다.책을 읽은 숫자 중에 어느 것이 많은가?" 대개 나의 독서를 희롱한 것이다.)
  • E435  + (고려 때 최충의 시에, ""라 하였다. 이 시를 세상에서 아름답다 하였는데, 다만 '未傳人' 석 자가 마땅치 않다. 어떤 사람은 최충이 아니라 최항의 시라 한다.)
  • E360  + (고려(高麗) 의종(毅宗) 때에 청교역(靑郊驛)에서 검정 소를 바쳤는데, 의종고려(高麗) 의종(毅宗) 때에 청교역(靑郊驛)에서 검정 소를 바쳤는데, 의종은 시신(侍臣)들에게 이것을 글제로 하여 시짓기를 명했다. 방(房) 자와 당(堂) 자를 운으로 짓게 하였는데, 시 한 구절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 중에서,</br>흑 모란꽃이 설당에 이르렀다 / 黑牧丹花到雪堂</br>라는 구절이 그 가운데서 약간 좋았다. 어떤 시 잘 짓는 선비 한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시를 지었는데, 그 경구(警句)에,</br>함곡에서 새벽에 돌아오니 붉은 기운을 탔고 / 函谷曉歸乘紫氣</br>도림에 봄이 되니 홍방을 밟더라 / 桃林春放踏紅房</br>하였다. 이것을 왕이 보고 탄미(歎美)한 나머지, 마침내 그 사람에게 벼슬을 주었다.이것을 왕이 보고 탄미(歎美)한 나머지, 마침내 그 사람에게 벼슬을 주었다.)
  • E512  + (고려의 중 신탄은 곡성 사람이다. 그의 '조춘'시에, ""라 하였다. 또 '영동으로 놀러 가며'시에, ""라 하였다. 관동으로 놀러 가려던 사람이 있었는데 신탄의 이 구를 듣고는 이미 다녀온 듯하다 말하며 드디어 여행가기를 그만두었다.)
  • E359  +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이 말하기를,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시의 격조는 매우 높다. 그의 시재를 열 사람이 갈라서 하나만 가지더라도 충분히 대제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으니, 진심으로 인정하였던 것이다.)
  • E369  + (고성군(高城郡) 객사(客舍)에 제영(題詠)이 대단히 많다. 나의 아버지께서 고성군(高城郡) 객사(客舍)에 제영(題詠)이 대단히 많다. 나의 아버지께서 지은 시에,</br>봉래산 바람과 햇빛이 속세를 떠나 / 蓬萊風日隔塵寰</br>기화와 요초가 눈 속에 피었구나 / 瑤草琪花耐雪寒</br>모래 쌓이니 삼천리가 은세계요 / 沙積三千銀世界</br>다락 높았으니 열두 옥난간이네 / 樓高十二玉欄干</br>햇빛이 푸른 바다에 비추어 드니 금거울을 연 듯하고 / 照人碧海開金鏡</br>손님을 공경하여 신선산도 돌관을 썼구나 / 敬客仙山戴石冠</br>아득한 연하는 수은 반죽과 같은데 / 縹渺煙霞多煉汞</br>곤륜에 어찌 홀로 참란이 있는가 / 崑崙何獨有驂鸞</br>하였다. 양창해가 이에 차운하여 짓기를,</br>참을 찾다 잘못하여 신선 지경에 들어오니 / 尋眞誤入羽人寰</br>백옥 같은 높은 누가 은하수에 닿았네 / 白玉高樓倚廣寒</br>창을 여니 안개 낀 하늘이 거울 속에 있고, / 窓拓烟千生鏡裏</br>뜰 앞 흐름에는 반짝이는 별이 강가에 떨어지네 / 砌流星漠落江干</br>주인은 예부터 요력(堯曆)을 나누어 줄줄 아는데 / 主人舊識頒堯曆</br>손님은 새로이 변한 초나라 관(冠)을 전하더라 / 客子新傳變楚冠</br>이태백의 하목(霞鶩) 자(字)를 달만한데 / 可戀謫仙霞鶩字</br>은 갈고리와 철 노끈에 난조 새가 춤추네 / 銀鉤鐵索舞廻鸞</br>하였다.仙霞鶩字 은 갈고리와 철 노끈에 난조 새가 춤추네 / 銀鉤鐵索舞廻鸞 하였다.)
  • E698  + (교관(敎官) 권필(權韠)의 호는 석주(石洲)이다. 시벽(詩癖)이 있어 과업(교관(敎官) 권필(權韠)의 호는 석주(石洲)이다. 시벽(詩癖)이 있어 과업(科業)을 일삼지 않았다. 그의 시는 노두(老杜)를 조종(祖宗)으로 삼고 간재(簡齋)를 답습하여 어의(語意)가 지극하고 구법이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당시 시에 능한 사람들이 모두 추숭하여 미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근세에 성명(盛名)을 얻은 시인들 중 석주가 으뜸이 되었다. 들으니, 중국인이 동국(東國)의 시를 간행할 때 석주의 장률 몇 수가 들어갔다고 한다. 그중 한 수에 이르기를,</br></br>강가에 뚜우- 호각 소리 들리는데 / 江上嗚嗚聞角聲</br>북두성 자루는 강에 꽂혀 강물이 맑네 / 斗柄揷江江水明</br>아침조수 언덕을 침노하니 오리들 요란하고 / 早潮侵岸鴨鵝亂</br>먼 집엔 등불 켜져 다듬이 소리 울리네 / 遙舍點燈砧杵鳴</br>나그네 문을 나서니 달 지려 하고 / 客子出門月初落</br>뱃사람 돛을 거니 바람 일려 하네 / 舟人挂席風欲生</br>서주의 천리 길 여기서부터 가노니 / 西州千里自此往</br>긴 여정 험난한 길 어느 때나 평탄해질까 / 長路險艱何日平</br></br>하였는데, 파산(坡山 파주)에서 강도(江都 강화도)로 가려고 할 때 지은 것이다. 이 한 편만을 보아도 그의 재능이 뛰어남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폐조(廢朝 광해군)때에 유씨(柳氏)의 여러 사람이 내세(內勢 광해비 유씨)를 빙자하여 멋대로 하고 거리낌이 없었으니, 당시의 조정 신하들이 모두 아첨하고 애걸하였다. 지평(持平) 임숙영(任叔英)이 그때 거자(擧子 과거 보는 선비)로 대책문(對策文)을 지었는데, 촉휘(觸諱 꺼리는 것을 범함)하는 말이 많아 삭과(削科)를 당하려다가 다행히 중지하였다. 이에 석주가 시를 지어 이르기를,</br></br>청청한 궁류에 꾀꼬리 어지러이 나는데 / 宮柳靑靑鶯亂飛</br>성 가득 벼슬아치 봄빛에 아첨하네 / 滿城冠蓋媚春輝</br>조정에선 모두 태평성대 축하하지만 / 朝家共賀昇平樂</br>누가 직언을 포의에서 나오게 했는고 / 誰遣危言出布衣</br></br>하였다. 그 후에 별시(別試)가 있어 박자흥(朴自興)이 등제(登第)하였는데, 박자흥의 부친 박승종(朴承宗)과 박자흥의 장인 이이첨(李爾瞻)이 고관(考官)을 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순사(循私 사사로움에 따름)를 감히 거론하지 못하였다. 그때에 허균(許筠) 또한 시관(試官)으로서 자신의 조카 허아무개(허요(許窑))가 지은 글을 취하여 방(榜) 안에 넣었다가 죄를 입어 멀리 귀양을 갔다. 석주가 또 시를 지어 이르기를,</br></br>과거급제 사사로운 정 있었다 한들 / 設令科第有私情</br>아들 사위 동생 중 조카가 제일 가벼운데 / 子壻弟中姪最輕</br>허균에게만 이 죄를 감당케 하니 / 獨使許筠當此罪</br>세간에 공도 행하긴 과연 어렵구나 / 世間公道果難行</br></br>하였다. 폐조에 이르러 역옥(逆獄 역적에 관련된 옥사)을 친국(親鞠)할 때 이 두 편의 시가 죄인의 서찰 가운데서 나오니, 석주는 시안(詩案) 때문에 형벌을 받고, 끝내는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석주를 들쳐 메고 동성(東城) 밖의 인가로 나왔는데, 나와 조현부(趙玄夫)가 함께 따라가 행구(行具)를 꾸려 주었다. 주인집 판영(板櫺) 위에 초서(屮書)로 이장길(李長吉 이하(李賀, 790~816))의 시〈장진주(將進酒)〉끝 4구를 보았는데 ‘권(勸)’ 자가 ‘권(權)’ 자로 되어 있었으니, 사실 잘못 쓴 데서 나온 것이었다.</br>때는 정히 늦봄이라, 도화(桃花)가 뜰에 가득하였다. 석주는 죽음에 임하여 석잔 술을 연거푸 마시더니 해가 질 무렵에 눈을 감았다. 한 글자 잘못 쓰인 것이 우연히 참언(讖言)이 되었으니, 참으로 기이하지 아니한가. 잘못 쓰인 것이 우연히 참언(讖言)이 되었으니, 참으로 기이하지 아니한가.)
  • E155  + (궁녀로 지내다가 밖으로 나온 사람이 상자에 보통이 아닌 편지를 가지고 있었는궁녀로 지내다가 밖으로 나온 사람이 상자에 보통이 아닌 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로 "", 또 "", 또 "", 또 "", 또 "" 등등이 있었다. 이를 본 사람은 성종이 평소에 희롱삼아 붓을 들었다가 버린 것들임을 알았다. 절구 두 수는 틀림없이 그림에 제한 시일 것인데 누구의 것인지는 모른다. 나머지는 모두 월산대군에게 준 편지의 초고이다. 성종이 늘 원산대군을 안으로 불러들여 만나고 나갈 적에 편지를 주어 시를 주고받지 않는 날이 없었으니 대개 형제의 우애가 이처럼 돈독하였다.어 시를 주고받지 않는 날이 없었으니 대개 형제의 우애가 이처럼 돈독하였다.)
  • M019  + (귀는 귀머거리되려 하고 입은 벙어리되려 하니 / 耳欲爲聾口欲瘖 곤궁한 처지에 더욱 세정을 안다 / 窮途益復世情諳 뜻과 같지 않은 일은 십에 팔구나 되고 / 不如意事有八九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열에 한둘도 없다 / 可與語人無二三 사업은 고기처럼 하기를 기약하고 / 事業皐夔期自比 문장은 반마처럼 하려 하였는데 / 文章班馬擬同參 연래에 신명을 점검하니 / 年來點檢身名上 전현에 미치지 못한 게 바로 나의 부끄러움이네 / 不及前賢是我慙)
  • E171  + (그 뒤 시강(侍講) 동월(董越)이 왔을 때 행차가 평양까지 와서 풍월루(風月그 뒤 시강(侍講) 동월(董越)이 왔을 때 행차가 평양까지 와서 풍월루(風月樓)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안찰사로 있던 성허백당(成虛白堂)은 모습이 훌륭하지 못하였다. 동월이 안찰사를 주(州)의 관리인 줄 알고 그렇게 대수롭게 보지 않았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여 시를 짓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 시에 화답하였다. 성허백이 지은 시에,</br>붉은 비 뜰에 가득한데 복사꽃 이미 떨어졌고 / 紅雨滿庭桃已謝</br>파란 연잎 물결에 점 일으키며 연꽃이 처음 떠오르더라 / 靑錢點水藕初浮</br>하였다. 동월이 이것을 보고 정색하고는, “이런 사람이 어째서 주(州)의 관리밖에 못하고 있는가.” 하니, 반접사(伴接使)인 충정공(忠貞公) 허종(許琮)이, “우리 나라에서는 풍화(風化) 관찰하는 것을 중요시하여 조정에서 으뜸가는 사람들을 뽑아서 주관(州官)으로 삼습니다.” 하였다. 동월의 풍월루기(風月樓記)에, “관찰사가 속으로 빼어나고 문아(文雅)하다.” 한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가 돌아갈 무렵 압록강에서 전별 잔치를 할 때에 쌍방이 모두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빛이 있었다. 충정공이 절구(絶句) 한 수를 지었는데,</br>푸른 연기는 고요하게 떠 있고 풀은 무성한데 / 靑煙漠漠草離離</br>바로 강두에서 석별할 때라 / 正是江頭惜別時</br>말없이 서로 보는 정 한 없으니 / 黙黙相看無限意</br>이생에 어디에서 다시 만나 즐길고 / 此生何處更追隨</br>하였다. 두 중국 사신이 서로 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떨어뜨렸으니, 정말 정과 뜻이 한가지로 통하는 것은 풍속과 지역의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정말 정과 뜻이 한가지로 통하는 것은 풍속과 지역의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 E048  + (그 뒤에 급사중 진가유(陳嘉猷)가 우리나라에 와서 기자묘(箕子廟)를 보고 지은 시에, 포락(炮烙)하는 연기가 날아 왕기가 쇠하니 / 炮烙煙飛王氣衰 미친 체하는 마음을 거문고나 알아줄까 / 佯狂心事有琴知 그의 말씀은 천년을 전하여 〈홍범〉에 남아 있고 / 言垂千載存洪範 이제 사람이 삼한에 와서 구사(舊祠)를 뵙는다 / 人到三韓謁舊祠 하였다. 사람됨이 용모가 아름답고 수염이 그림과 같아서 진실로 인물과 재주가 모두 아름다웠다.)
  • C013  +
  • E205  + (근대(近代) 무신(武臣) 중에 시에 능한 사람이 몇 사람에 지나지 않고 또 근대(近代) 무신(武臣) 중에 시에 능한 사람이 몇 사람에 지나지 않고 또 볼만한 것도 못 된다. 오직 박위겸(朴撝謙)이 젊어서 신 문충공(申文忠公 신숙주)의 막하에 있을 때에 시를 지었는데,</br>10만 정병이 수루를 호위하고 / 十萬貔貅擁戍樓</br>변방의 깊은 달밤에 여우 갖옷 싸늘한데 / 夜深邊月冷狐裘</br>한 가닥 긴 피리 소리 어디메서 들려오는고 / 一聲長笛來何處</br>정부의 만리의 시름을 불어서 다하는구나 / 吹盡征夫萬里愁</br>하였다. 뒤에 흥덕현(興德縣) 배풍헌(培風軒)에서 시를 지었는데,</br>우뚝 솟은 높은 봉우리 정정한데 / 屹立亭亭萬仞峯</br>봉우리에 선 높은 누각 멀리 바람 속에 있도다 / 峯頭高閣逈臨風</br>땅은 봉래섬과 삼청의 경계에 이어 있고 / 地連蓬島三淸界</br>사람은 소상팔경 중에 있도다 / 人在瀟湘八景中</br>구름은 산허리에 아득하고 / 雲帶山腰橫縹緲</br>물은 하늘가에 닿아 뿌옇도다 / 水㴠天影接空濛</br>문득 먼 포구에 돌아오는 배를 보니 / 忽看遠浦歸帆疾</br>물길이 멀리 한수(한강)와 통하는구나 / 水道遙連漢水通</br>하였으니, 무인(武人)의 시 가운데 이런 작품은 쉽사리 얻지 못할 일이다. 하였으니, 무인(武人)의 시 가운데 이런 작품은 쉽사리 얻지 못할 일이다.)
  • E655  + (근대의 관각시(館閣詩)에서는 이아계(李鵝溪 아계는 이산해(李山海)의 호)가 근대의 관각시(館閣詩)에서는 이아계(李鵝溪 아계는 이산해(李山海)의 호)가 으뜸이다. 그의 시가 초년부터 당을 법받았으며 늘그막에 평해(平海)에 귀양 가서 비로소 심오한 경지에 이르렀다. 고제봉(高霽峰 제봉은 고경명(高敬命)의 호)의 시 또한 벼슬을 내놓고 한거하는 가운데 크게 진보된 것을 볼 수 있었으니, 이에 문장이란 부귀 영화에 달린 것이 아니라 험난과 고초를 겪고 강산의 도움을 얻은 후에라야 묘경에 들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 이공(二公)뿐만 그러하랴. 고인이 모두 이러하니 유주(柳州)로 좌천됐던 유자후(柳子厚)나 영외(嶺外)로 귀양 갔던 소동파(蘇東坡)에서도 이를 볼 수 있는 것이다.나 영외(嶺外)로 귀양 갔던 소동파(蘇東坡)에서도 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 E175  + (근래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공은 시에 능하여 이름이 난 자이다. 어떤근래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공은 시에 능하여 이름이 난 자이다. 어떤 사람이 술을 노래하는 시를 짓기를 청하며 감(甘) 자 운을 부르니, 임억령이 즉시 응하기를,</br>늙어서야 비로소 이 맛 단 줄 알았네 / 老去方知此味甘</br>라고 하거늘 또 삼(三) 자 운을 부르니, 응하기를,</br>한 잔 술에도 도통하니 석 잔을 마시랴 / 一杯通道不須三</br>하였다. 또 남(男) 자 운을 부르니, 곧 응하기를,</br>그대는 혜강(동진 때 죽림 7현의 한 사람)과 완적(죽림 7현의 한 사람)이 유계(한고조)를 조롱한 것을 아는가 / 君看嵇阮陶劉季</br>공후백자남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 不羨公侯伯子男</br>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기이(奇異)한 작품이다. 내가 감탄하고 나서 그 시에 차운하여 자손들을 경계하기를,</br>일찍 들으니, 대우는 마셔보고 달게 여겼다지만 / 曾聞大禹飮而甘</br>술 좋아하고 몸 온전한 이는 열에 두셋뿐이다 / 嗜酒全身十二三</br>한 잔 술도 잡지 말고 마땅히 삼가 경계할 것이요 / 勿把一杯宜戒愼</br>모름지기 여색을 멀리할 줄 아는 자가 정남이다 / 須知遠色是貞男</br>하였다. 임석천의 뜻을 뒤집은 것이나 시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知遠色是貞男 하였다. 임석천의 뜻을 뒤집은 것이나 시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 E714  + (근래에 여러 유생들이 박연폭포 아래에서 모여 이야기하며 함께 시를 지었다. 근래에 여러 유생들이 박연폭포 아래에서 모여 이야기하며 함께 시를 지었다. 어떤 객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으나 지팡이를 짚고 왔으며 의관이 남루하였다. 여러 유생들이 그 사람을 업신여기며 말했다. "그대는 시를 지을 수 있는가?" "그렇다" 이에 먼저 ""의 구를 썼다. 여러 유생들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대의 시가 어찌 이리 공력을 아끼는가?" 대개 그가 온전히 고인의 구를 쓴 것을 조롱한 것이다. 객이 말했다. "여러분들은 웃지 마시고, 다만 결구를 보라." 즉시 끝을 이어 말했다. "" 온 자리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박연의 형세를 이 시에서 다하였으니 우리들은 더 지을 것이 없다." 마침내 붓을 놓았다. 혹은 그 객이 바로 사인 정민수라 한다. 송도 박연 폭포의 기이하고 장대함이 나라 안에 이름났다. 내가 일찍이 친히 박연을 보고서야 이백의 "" 구가 잘 형용된 것임을 말했다. 정순붕의 시에, ""라 하였고, 오산 차천로의 시에, ""라 하였다. 비록 은하(銀河) 두 글자를 쓰지 않았으나 청홍(晴虹)과 백련(白練) 또한 고어이다. 대개 위의 시는 의미가 좋으나 구절이 졸렬하고, 아래의 시는 구가 호장하나 의미가 적다.는 의미가 좋으나 구절이 졸렬하고, 아래의 시는 구가 호장하나 의미가 적다.)
  • E238  + (금남 최부의 문사는 간고하나 시는 그의 장처가 아니다. 그럼에도 일찍이 송감을 읽고 절구시를 지었다. "" 이 시를 읽는 사람은 그 강개하고 분려한 기상에 감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