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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st of all pages that have property "TextKor" with value "일천 실인지, 일만 점인지 누가 세어보았는냐?". Since there have been only a few results, also nearby values are displa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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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036  + (이 시를 통해 당시의 일이 어찌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늙은이의 마음은 크고 구애됨이 없어 범상하지 않다.)
  • C035  + (이 시인은 이 같은 시를 즐겨 썼다.)
  • E254  + (이 정승(李政丞) 용재(容齋 행(荇)의 호) 선생의 ‘제갈 무후를 읊다[詠諸이 정승(李政丞) 용재(容齋 행(荇)의 호) 선생의 ‘제갈 무후를 읊다[詠諸葛武侯]’라는 시에,</br>사생을 나라에 허하여 힘을 다했는데 / 死生許國無遺力</br>성패로 사람을 논하는 것은 어린애지 / 成敗論人是小兒</br>하였다. 의논이 공정하고 글도 또한 새롭다. 중국 사신[天使] 당고(唐皐)의 시에 차운(次韻)하기를,</br>아득한 삼산은 솥을 엎은 것으로 보이고 / 縹緲三山看覆鼎</br>굽이친 한 띠의 물은 투금강에 닿았어라 / 逶迤一帶接投金</br>하였다. 복정은 삼각산(三角山)의 별명이요, 양화(楊花) 나루를 투금강이라 하기도 한다. 대구가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이 일련(一聯)은 소퇴휴(蘇退休) 상공(相公)이 지은 것이다. 소퇴휴가 말하였다. 《황화집(皇華集)》을 얻어 본 것이 기억나는데, 대(帶) 자는 수(水) 자였다. 대(帶) 자는 아마 전하는 사람들이 잘못 전한 것일 게다. 용재(容齋)의 이름은 이행(李荇)이요, 퇴휴의 이름은 소세양(蘇世讓)이다. 용재(容齋)의 이름은 이행(李荇)이요, 퇴휴의 이름은 소세양(蘇世讓)이다.)
  • E599  + (이견간(李堅幹)의 시에 여관에는 호롱불 하나 남은 심지 돋우노니 / 旅館挑殘이견간(李堅幹)의 시에</br>여관에는 호롱불 하나 남은 심지 돋우노니 / 旅館挑殘一盞燈</br>사신(使臣)의 풍미가 중보다 담박하네 / 使華風味淡於僧</br>창 너머 두견 소리 밤새도록 듣노니 / 隔窓杜宇終宵聽</br>산꽃의 몇째 층에 울음소리 나는고 / 啼在山花第幾層</br>라 했는데, 이 시를 두고 당시에는 절창이라고 일렀다. 나는 관동(關東) 지방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 이른바 두견이란 곧 소쩍새의 무리였다. 절강(浙江) 사람 왕자작(王子爵), 사천(泗川) 사람 상방기(商邦奇)가 함께 강릉(江陵)에 왔으므로 그들에게 내가 물었더니, 모두 말하기를, 이는 두견이 아니라고 하였다. 대개 시인들은 흥을 붙여 말하는지라, 비록 그 물건이 아니더라도 시 가운데 그 말을 쓴 것이다. 이를테면</br>수풀 너머 흰 잔나비 울음 부질없이 듣노라 / 隔林空聽白猿啼</br>와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는 본시 잔나비가 없고,</br>집집마다 긴 대 숲에 비취새 울음 우네 / 脩竹家家翡翠啼</br>와 같은 경우는, 파랑새를 보고 염주취(炎洲翠)라 한 것이고,</br>자고새는 놀라서 해당화를 흔드네 / 鷓鴣驚簸海棠花</br>와 같은 경우는, 때까치가 깍깍 우는 것을 보고 행부득(行不得)이라 한 것이니, 모두 이와 같은 유이다.깍 우는 것을 보고 행부득(行不得)이라 한 것이니, 모두 이와 같은 유이다.)
  • M029  + (이곳과 중화 사이 큰 바다 막혔는데 / 此去中華隔大瀛 두 공은 거울처럼 맑은이곳과 중화 사이 큰 바다 막혔는데 / 此去中華隔大瀛</br>두 공은 거울처럼 맑은 마음 통했네 / 兩公相照鏡心淸</br>공공상인이 벌집만한 집을 막 지으니 / 空師方結蜂窠室</br>조파 선로(禪老)가 토각이란 이름 멀리서 전했네 / 播老遙傳兎角名</br>지팡이는 예스러워 반죽의 흔적 남았고 / 杖古尙餘斑竹暈</br>바리때는 신령스러워 벽련의 줄기가 빼어났네 / 鉢靈應秀碧蓮莖</br>하루에 이처럼 친절하게 사귀어서 / 誰敎一日親交錫</br>금모(金毛)가 땅을 진동하는 소리를 함께 짓게 하였는가 / 共作金毛震地聲錫 금모(金毛)가 땅을 진동하는 소리를 함께 짓게 하였는가 / 共作金毛震地聲)
  • E425  + (이공 수광(李公睟光)의 자는 윤경(潤卿)이요 호는 지봉(芝峯)인데 단아한 풍이공 수광(李公睟光)의 자는 윤경(潤卿)이요 호는 지봉(芝峯)인데 단아한 풍도가 진세(塵世)를 벗어나 세상의 변고를 차례로 다 맛보았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좌절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이와 함께 기미를 보고 일어나 함정에 떨어지는 화를 면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금옥군자(金玉君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밖으로 나가 순천부(順川府)를 맡고 있을 때 시권(詩卷)을 부쳐 보냈는데 그 가운데 칠언 근체시 2수가 들어 있었다. 그 시를 보건대,</br></br>늘그막에 남쪽 시골 수령으로 내려와서 / 暮年身世宰炎鄕</br>다스릴 능력 없어 탄식만 하고 앉아 있네 / 治郡無能坐嘯長</br>한가한 집 뜨락엔 봄 제비도 오지 않고 / 春燕不來閑院落</br>조그마한 연못가엔 맑은 물결 찰랑이네 / 晴波欲滿小池塘</br>붉은 매화 그림자 아래 문서 처리할 일도 없고 / 紅梅影下文書靜</br>귤나무 그늘 가에 자리가 향기롭네 / 綠橘陰邊几席香</br>퇴근하고 문 닫히자 인적도 끊어지고 / 衙罷閉門人跡少</br>창 너머 새 소리에 또 기우는 저녁 햇살 / 隔窓啼鳥又斜陽</br></br>이라 하였고, 또</br></br>난간 밖 연못의 빛 푸른 이끼 물들이고 / 檻外池光梁綠苔</br>주렴(珠簾)에 비낀 가랑비 노란 매실 익히누나 / 一簾微雨欲黃梅</br>출근해도 문 닫힌 채 적막하기 그지없고 / 衙居寂寞門長掩</br>퇴근해도 어제처럼 인 꺼낼 일 하나 없네 / 公退尋常印不開</br>밀감 향내 맡으면서 산 사슴 잠이 들고 / 盧橘香邊山鹿睡</br>석류 꽃 그늘 아래 새들 모여 앉아 있네 / 石榴花下怪禽來</br>창문 밖엔 하루 종일 찾아오는 인적 없어 / 軒窓盡日淸如水</br>오늘도 시상(詩想)에 젖다 낮잠에 빠져드네 / 輸與騷翁晝夢回</br></br>라고 하였는데, 격운(格韻)이 청려(淸麗)하여 스스로 미칠 수가 없다.回 라고 하였는데, 격운(格韻)이 청려(淸麗)하여 스스로 미칠 수가 없다.)
  • E084  + (이광성(李廣城)은 문장(文章)과 다스림의 재주가 모두 넉넉해서 항상 스스로 이광성(李廣城)은 문장(文章)과 다스림의 재주가 모두 넉넉해서 항상 스스로 국사(國士)라 하고, 인물을 평할 때는 좋게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특별히 백씨(伯氏)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이광성이 도승지이고 백씨가 우승지였는데, 이광성이 어느 기생을 사랑하여 자취를 감추자 백씨가 간 곳을 알아내고 시를 지어 말하기를,</br>관아가 파하여 돌아옴에 날이 저물려 하는데 / 衙罷歸來日欲低</br>명화와 국사가 둘이 서로 만났구나 / 名花國士兩相擕</br>뉘 집 골목 속에 수레를 숨겼는가 / 誰家巷裏藏車駕</br>사온서의 동쪽이요, 예부의 서쪽일세 / 司醞東邊禮部西</br>하고는, 몰래 시를 그 벽에 붙여두었는데, 이광성이 보고 찢어서 소매 속에 넣어버렸다. 이로부터 더욱 뜻이 서로 맞았다. 이광성이 체질될 적에 세조(世祖)가, “군(君)에 대신할 자가 누구냐?”고 물으니, 이광성이 아뢰기를, “성(成) 아무개보다 나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여, 백씨가 도승지에 등급을 뛰어넘어 제배(除拜)되었다.람이 없습니다.” 하여, 백씨가 도승지에 등급을 뛰어넘어 제배(除拜)되었다.)
  • C018  + (이는 초사(楚辭)의「저녁에는 떨어진 가을의 국화 꽃을 먹는다[夕餐秋菊之落英]」라는 말을 알지 못함이니, 구양수의 배우지 못한 과실이다.)
  • E609  + (이도은(李陶隱 도은은 이숭인(李崇仁)의 호)의 오호도시(嗚呼島詩)를 목은(牧이도은(李陶隱 도은은 이숭인(李崇仁)의 호)의 오호도시(嗚呼島詩)를 목은(牧隱)은 추장하여 성당(盛唐)에 비길 만하다고 하였는데 이로 인해 삼봉(三峯)과 서로 사이가 좋지 않게 되고 기구한 화마저 당하게 되었다. 지난날 주 태사(朱太史)가 이 작품을 보고 또한 매우 감탄하였다. 그</br>산북과 산남으로 세로는 갈라지고 / 山北山南細路分</br>송화는 비 머금어 어지러이 떨어지네 / 松花含雨落紛紛</br>도인이 물을 길어 초가로 돌아오니 / 道人汲井歸茅舍</br>한 가닥 푸른 연기 흰 구름을 물들이네 / 一帶靑煙染白雲</br>라고 한 시는 유수주(劉隨州 당 나라 유장경(劉長卿))에게 무엇이 모자란다 하겠는가?시는 유수주(劉隨州 당 나라 유장경(劉長卿))에게 무엇이 모자란다 하겠는가?)
  • M074  + (이른 새벽 말을 달려 외로운 성에 들어가니, 울타리가엔 사람 없고 살구만 익었구나. 뻐꾸기는 나라일 급한 줄도 모르고서, 수풀가에서 밭 갈라고 하루 종일 권하고 있네.)
  • E621  + (이망헌(李忘軒 망헌은 이주(李冑)의 호)의 시는 가장 침착하여 성당(盛唐)의이망헌(李忘軒 망헌은 이주(李冑)의 호)의 시는 가장 침착하여 성당(盛唐)의 풍격이 있다.</br>아침해는 붉게 뿜어 발해에 솟구치고 / 朝日噴紅跳渤澥</br>갠 구름 희게 펴져 무려산(巫閭山)을 나오네 / 晴雲挹白出巫閭</br>와 같은 시구는 매우 힘이 있으며</br>언 비는 천 산 마루 눈으로 비껴 닿고 / 凍雨斜連千嶂雪</br>주린 까마귀 한 수풀 바람에 놀라 우네 / 飢烏驚叫一林風</br>라 한 시구는 노창(老蒼)하고 기걸(奇杰)하다. 통주(通州)에서 지은 시는</br>통주는 천하의 승경(勝景)인지라 / 通州天下勝</br>누각들이 구름 하늘에 솟았구려 / 樓觀出雲霄</br>저자에는 금릉의 물화(物貨) 쌓이고 / 市積金陵貨</br>강 줄기는 양자의 물결로 가네 / 江通揚子潮</br>가을이라 찬 연기 물가에 내리고 / 寒煙秋落渚</br>저녁 되니 외론 학은 요동으로 돌아가네 / 獨鶴暮歸遼</br>말에 탄 신세는 천리 나그네 / 鞍馬身千里</br>정자에 오르니 고국은 멀고멀어라 / 登臨故國遙</br>라 했는데, 이 역시 기막히게도 왕유(王維)ㆍ맹호연(孟浩然)의 수준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역시 기막히게도 왕유(王維)ㆍ맹호연(孟浩然)의 수준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 E060  + (이맹균(李孟畇) 공은 목은(牧隱)의 장손으로서 벼슬이 이상(貳相)에 이르러 이맹균(李孟畇) 공은 목은(牧隱)의 장손으로서 벼슬이 이상(貳相)에 이르러 세업을 계승하였으며 문명(文名)이 있고, 더욱이 시에 능하였다. 일찍이 〈비송도(悲松都)〉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br>5백년 내려온 왕기가 끊어지니 / 五百年來王氣終</br>닭을 잡고 오리를 잡았으나 마침내 무슨 공을 이루었냐 / 操鷄摶鴨竟何功</br>영웅은 이미 가고 산하만 의구한데 / 英雄已逝山河在</br>인물은 남쪽으로 옮겨갔으니 시정은 비었구나 / 人物南遷市井空</br>비원의 앵화는 이슬비 뒤에 피었고 / 上苑鶯花微雨後</br>여러 능의 풀과 나무가 저녁 놀에 비치는구나 / 諸陵草樹夕陽中</br>내가 이날 와서 보고 자못 느낌이 많으니 / 我來此日偏多感</br>지난 일은 유유한데 물은 스스로 동쪽으로 흘러가누나 / 往事悠悠水自東</br>하였다. 또 자식 없음을 근심하여 시를 지었는데,</br>인도가 인에서 일어남으로부터 / 自從人道起於寅</br>아비와 자식이 서로 이어져 이 몸에 이르렀도다 / 父子相傳到此身</br>내 죄 어떠하기에 하늘이 불쌍이 여기지 않아 / 我罪伊何天不弔</br>아직도 남의 아비가 되지 못하고 살쩍만 새롭도다 / 未爲人父鬢絲新</br>하였다. 그 뒤에 질투심이 많고 독살스러운 부인 때문에 집 안에 우환이 있었는데 공도 이 일로 인하여 죄를 얻어 마침내 귀양살이를 하다가 죽었다. 있었는데 공도 이 일로 인하여 죄를 얻어 마침내 귀양살이를 하다가 죽었다.)
  • E200  + (이문순공(李文順公)이 여러 마리 닭이 벌레를 쪼는 것을 보고, 싫어서 쫓고는이문순공(李文順公)이 여러 마리 닭이 벌레를 쪼는 것을 보고, 싫어서 쫓고는 시를 짓기를,</br>주주공(닭)이 / 朱朱公</br>벌레 쪼기를 좋아하나 / 好啄虫</br>내가 차마 볼 수 없어 / 予不忍視</br>가까이 오지 못하게 쫓으니 / 斥勿使邇</br>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라 / 汝莫怨我爲</br>살기 위해서는 본래 스스로 지키는 법 / 好生本自期</br>나도 이제 늙어서 물러가니 / 我今退老疎散</br>아침 하늘이 일찍 밝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 不卜朝天早晏</br>어찌 네 소리 새벽 알림을 들을 필요가 있으랴 / 豈要聞渠聲報曙</br>잠을 탐하여 오히려 창이 밝기를 피하련다 / 貪眠尙欲避窓明</br>하고는, 스스로 주석을 내기를, “3언(言)에서 7언까지 된 시로, 이는 이태백(李太白)의 3ㆍ5ㆍ7언을 본뜬 시이다.” 하였다. 문정공 어세겸의 국화를 읊은 시에,</br>국화야, 국화야 / 菊菊</br>형은 솔이고 아우는 대나무로 / 兄松弟竹</br>저녁 이슬을 마시고 / 挹夕露</br>아침 햇빛을 받아 / 承朝旭</br>그 빛깔 눈부시고 / 粲粲英英</br>그 향기 아름답구나 / 芬芬郁郁</br>서리 맞은 봉오리는 저녁 금빛인양 빛나고 / 霜葩耀晩金</br>비에 젖은 잎사귀는 새벽 구슬 같구나 / 雨葉滋晨玉</br>삼경을 열고 남산을 바라보며 / 開三徑望南山</br>한 못을 거슬러 감곡을 따라가니 / 溯一潭追甘谷</br>달고 꽃다움은 스스로 늙어가는 나이를 막을 만하고 / 甜芳自可制頽齡</br>은일함은 도리어 경박한 풍속을 고칠 만하도다 / 隱逸還堪醫薄俗</br>향혼이 죽지 않아 옛 정신 완연하고 / 香魂不滅宛舊精神</br>색상은 여전히 본래의 면목을 지녔도다 / 色相猶存本來面目</br>오모가 떨어질 때 한 가지 다시 꽂으니 / 烏帽落時更看揷一枝</br>백의 오는 곳에 어찌 몇 말의 술인들 꺼리리오 / 白衣來處何嫌酌數斛</br>이 국화가 이미 그 지조를 깨끗이 함에 합당하니 저절로 참되고 / 物旣合潔其操自然而眞</br>사람이 다투어 시로 읊으니 누구의 사랑이 더욱 지극할까 / 人爭播咏於詩愛之誰酷</br>하고는, 스스로 주석을 내기를, “첫 자에서 열 자까지는 또 문순공(文順公)의 시를 본뜨고 그 체격(體格)을 첨가하였다.” 하였다. 또 문순공(文順公)의 시를 본뜨고 그 체격(體格)을 첨가하였다.” 하였다.)
  • M081  + (이야기 무르녹을 때 이지러진 달이 깊은 사립문에 들어오고, 늦도록 앉았노라니 산들바람이 높은 잣나무에서 읊조린다.)
  • E210  + (이용재(李容齋)가 주운(朱雲)을 읊은 시(詩)에, 허리 사이에 칼이 있으니 이용재(李容齋)가 주운(朱雲)을 읊은 시(詩)에,</br>허리 사이에 칼이 있으니 어찌 청할 필요가 있으랴 / 腰間有釰何須請</br>지하에 사람이 없더라도 또한 족히 놀 만하리라 / 地下無人亦足遊</br>애석하다. 한 나라 조정의 괴리령은 / 可惜漢庭槐里令</br>평생에 오직 아첨하는 신하의 머리만 알았도다 / 一生唯識佞臣頭</br>하였는데, 고금(古今)에 주운을 읊은 자가 이런 생각이 없었으니, 비록 당(唐)ㆍ송(宋)의 문집 속에 넣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정덕 신사년에 용재(容齋)가 멀리 당태사(唐太史) 고(皐)를 의주(義州)에서 영접하는데, 태사가 법도가 있어서 말도 경솔히 하지 않았다. 정주(定州)에 이르러 용재가 같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속필(速筆)로, 태사가 지은 음락(飮酪)에 대한 절구(絶句) 네 수(首)에 차운(次韻)하니, 태사가 이를 보고 “참으로 노련한 솜씨다.”라 하였다.에 차운(次韻)하니, 태사가 이를 보고 “참으로 노련한 솜씨다.”라 하였다.)
  • E629  + (이익지(李益之)는 어릴 적에 두시(杜詩)를 호음(湖陰)에게 배웠는데 하루는 이익지(李益之)는 어릴 적에 두시(杜詩)를 호음(湖陰)에게 배웠는데 하루는 익지더러 서가 위의 여러 책을 가져오도록 명했다. 그리하여 호음이 그것을 보다가 《춘정집(春亭集)》이 나오니 땅에 던져버렸고, 《매계집(梅溪集)》은 펴보고 웃으며 덮었는데 대개 가볍게 여긴 것이었다. 오직 《점필재집(佔畢齋集)》만은 집어들고 익히 보기를 마지않았다. 익지가 엿보니 모두 뽑아서 줄을 그으니 대개 그들을 좋아하여 소재로 취해 시의 자료로 하려는 것이었다. 언젠가 평생에 가장 마음에 만족하게 여기는 시구를 물었더니</br>산 나무 함께 우니 바람 언뜻 일어나고 / 山木俱鳴風乍起</br>강물 소리 문득 높자 달이 홀로 걸렸네 / 江聲忽厲月孤懸</br>라는 구절을 사람들이 깎은 듯 아름답다고들 하고,</br>산꼭대기에 깜빡이는 별은 조각달과 빛 다투고 / 峯頂星搖爭缺月</br>나무 위에 움직이는 새는 깊은 떨기 숨는고야 / 樹顚禽動竄深蕞</br>라는 시구 역시 시상(詩想)은 교묘하지만 마침내</br>빗기운 노을 눌러 산은 문득 어두워지고 / 雨氣壓霞山忽暝</br>냇빛은 달을 받아 밤에도 밝구나 / 川華受月夜猶明</br>라 한 구절보다는 못하니, 이는 마치 신이 도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明 라 한 구절보다는 못하니, 이는 마치 신이 도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 E618  + (이전 사람들은 점필재가 여강(驪江)에서 읊은, 십년간의 세상사는 홀로 읊는 이전 사람들은 점필재가 여강(驪江)에서 읊은,</br>십년간의 세상사는 홀로 읊는 시 속에 / 十年世事孤吟裏</br>팔월의 가을빛은 어지러운 숲 사이에 / 八月秋容亂樹間</br>라는 구절을 칭송해 왔다. 그러나 신륵사(神勒寺)에서 지은,</br>상방에서 종 울리니 여룡은 춤을 추고 / 上方鍾動驪龍舞</br>만 구멍에 바람 우니 철봉이 나래 치네 / 萬竅風生鐵鳳翔</br>라 한 구절의 홍량(洪亮)ㆍ엄중(嚴重)함만 같지 못하니 이는 참으로 우주를 버팀직한 시구이다. 그 보천탄즉사(寶泉灘卽事)에서는</br>복사꽃 띄운 물결이 몇 자나 높았는고 / 桃花浪高幾尺許</br>은석은 목까지 잠겨서 어딘지 모르겠네 / 銀石沒頂不知處</br>쌍쌍의 가마우지 여울돌을 잃고 / 兩兩鸕鶿失舊磯</br>물고기 물면 갈대숲으로 들어가네 / 銜魚却入菰蒲去</br>라 했는데 이는 가장 항고(伉高)하며, 《동경악부(東京樂府)》는 편편마다 모두 예스럽다.는 가장 항고(伉高)하며, 《동경악부(東京樂府)》는 편편마다 모두 예스럽다.)
  • E278  + (이증영(李增榮)이 합천 군수(陜川郡守)로 있으면서 가장 잘 다스렸다. 합천사람 사문 주이(周怡)가 그에게 송별시를 지어주기를, 만 사람의 입이 바로 비니 하필이면 돌을 쓸까 / 萬口是碑安用石 한 마디 말로 노자 쌈지 돈을 줄 것 무어랴 / 一言爲贐不須金 하였다. 옛 사람의 말에, “소인은 사람에게 돈을 준다.” 하였으니, 이 글과 뜻이 아울러 묘한 것이다.)
  • E269  + (이회재(李晦齋) 선생의 경산현(慶山縣) 동헌(東軒) 시에, 우는 뻐꾹새는 가지 위에 일곱이요 / 鳴鳩枝上七 나는 제비 비 속에 쌍쌍이라 / 飛燕雨中雙 하였는데, 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외에도 볼 만한 것이 매우 많다. 공은 시학(詩學)을 오로지 하지 않았으나 성정(性情)에서 자연히 우러나오는 것이 이러하였으니, 품성(稟性)이 고명하면 애쓰지 않아도 이런 시구를 얻을 수 있음을 알겠다.)
  • E389  + (이후백(李後白) 공이 영북(嶺北 함경도)의 안절사로 가서 그 전부터 내려오던이후백(李後白) 공이 영북(嶺北 함경도)의 안절사로 가서 그 전부터 내려오던 폐단을 모두 없애버렸다. 따라서, 군현의 부세 수입을 거의 삭제해 버렸기 때문에 웅부(雄富)한 고을이 드디어 쇠해지고 말았다. 그 뒤 수령들이 혹 허위로 조작하여 다른 세를 징수하니 백성들이 비로소 이것을 괴롭게 여겼다. 임제(林悌)가 시로써 이것을 풍자하고 슬피 여겨 말하기를,</br>혜초는 서릿바람에 지고 옥은 티끌에 버려졌는데 / 蕙折霜風玉委塵</br>한때 맑은 덕이 벼슬아치들을 고무시켰네 / 一時淸德動簪紳</br>가련하도다 맥도는 결국 이어가기가 어려워 / 可矜貊道終難繼</br>상국이 백성의 병을 고쳐 준 것이 바로 백성의 병이 되었도다 / 相國醫民是病民</br>하였다.의 병을 고쳐 준 것이 바로 백성의 병이 되었도다 / 相國醫民是病民 하였다.)
  • E602  + (익재의 장인은 곧 국재공(菊齋公 국재는 권보(權溥)의 호)인데 부부가 함께 익재의 장인은 곧 국재공(菊齋公 국재는 권보(權溥)의 호)인데 부부가 함께 94세까지 살았으나 부인이 공보다 먼저 죽었다. 익재공이 장인을 애도한 만시(挽詩) 한 연(聯)에</br>항아는 광한전에 님 오시길 기다리나 / 姮娥相待廣寒殿</br>거사는 다만 홀로 도솔천에 돌아가네 / 居士獨歸兜率天</br>라고 했다. 권공(權公)이 부처를 좋아했기에 낙천도솔(樂天兜率)에 비유한 것은 무방하겠으나, 항아가 약을 훔친 것은 자고로 시인들이 속세로부터 선계(仙界)로 올라간 것을 비유함이 상례였는데, 이를 장모에게 쓴 것은 온당치 못할 듯하다.라간 것을 비유함이 상례였는데, 이를 장모에게 쓴 것은 온당치 못할 듯하다.)
  • M048  + (인간의 일들은 고르지 못하여 / 人間細事亦參差 걸핏하면 마음과 틀린다 / 動인간의 일들은 고르지 못하여 / 人間細事亦參差</br>걸핏하면 마음과 틀린다 / 動輒違心莫適宜</br>젊을 땐 집이 가난하여 아내도 업신여기더니 / 盛歲家貧妻尙侮</br>늘그막엔 녹봉이 두둑하니 기생이 항시 따른다 / 殘年祿厚妓常隨</br>비 올 때 나가 노는 날이 많고 / 雨霪多是出遊日</br>갠 날은 모두 내가 한가히 앉아 있을 때라 / 天霽皆吾閑坐時</br>배 불러 숟가락 놓으니 아름다운 고기를 만나고 / 腹飽輟飡逢美肉</br>목구멍 아파 술 금하니 좋은 술을 만난다 / 喉瘡忌飮遇深巵</br>저장된 보배를 헐하게 팔고 나니 값이 오르고 / 儲珍賤售市高價</br>묵은 병이 막 낫고 나니 이웃에 의원이 있네 / 宿疾方痊隣有醫</br>세쇄한 일이 잘 아니됨도 이와 같은데 / 碎山不諧猶類此</br>양주에서 학 타는 일은 더구나 기대하겠나 / 揚州駕鶴況堪期/ 碎山不諧猶類此 양주에서 학 타는 일은 더구나 기대하겠나 / 揚州駕鶴況堪期)
  • E098  +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이 젊어서 재예(才藝)가 있었다. 만년에 양주(楊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이 젊어서 재예(才藝)가 있었다. 만년에 양주(楊州)의 누원(樓院)에 올라 짧은 시 3편을 남겼다. 그 첫 편에,</br>산이 있으면 어디나 여산이 아닐까 / 有山何處不爲廬</br>앉아 청산을 대하고 한번 탄식하노라 / 坐對靑山試一噓</br>벼슬살이 십 년에 늙은이 되었으니 / 簪笏十年成老大</br>노경에 〈귀거래사〉를 읊게 하지 말라 / 莫敎霜鬢賦歸歟</br>하였다. 영천군(永川君) 이정(李定)은 자가 안지(安之)인데, 이 시를 보고 절하고, 또 비평하기를 “이 시는 매우 핍진하니, 서(徐)의 시가 아니면 이(李)의 시일 것이다.” 하였다. 그 당시 서거정(徐居正)과 이승소(李承召)가 시명을 독차지하여 이정이 감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이정이 다시 누각 아래를 지나가다가 전날 썼던 비평을 다시 읽어 보니, 그 아래에 글이 쓰여 있기를 “이 시에는 강산의 아취(雅趣)가 있어 한 점의 티끌도 없으니, 이는 반드시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선비가 지은 것이 아니다. 또 천지가 크고 강산이 깊은데 어찌 인재가 없어서 반드시 서(徐)와 이(李)라고 추측하는가. 인재를 저버리고 사람을 멸시함이 어찌 이리도 심하단 말인가.” 하였다. 이정이 이 글을 보고 크게 뉘우쳐서 전날 비평했던 글을 지워 버렸다. 지금의 《진산세고》에는 3편이 모두 실려 있지 않으니, 경순(景醇)의 편집이 넓지 못함이 이와 같다.편이 모두 실려 있지 않으니, 경순(景醇)의 편집이 넓지 못함이 이와 같다.)
  • E191  + (일본 사신 붕중(弸中)이 우리 나라에 올 때 모재(暮齋) 김안국(金安國)이 선위사로 있었는데, 때마침 여름이라 붕중이 식탁에 얼음이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읊기를, 얼음이 한 점 녹아 도로 물이 되네 / 氷消一點還成水 하고, 모재에게 다음 구절을 청하니, 모재는 반나절을 끙끙거렸으나 결국 짓지 못하였다. 나무가 두 그루 짝지어 서니 곧 수풀이 되네 / 木立雙株便作林 라고 한 대구가 있는데, 누가 지은 것인지는 모른다.)
  • M091  + (일찍이 봄바람과 같이 춤자리를 휩쓸면서 개인 정원에서 즐겨 놀며 애를 태울 때 어찌 즐겨하랴! 가을이 되어 사양이 되었는데 매미까지 우는 것은.)
  • C011  + (일천 실인지, 일만 점인지 누가 세어보았는냐?)
  • E302  + (임 사문(林斯文 임형수(林亨秀)를 말함)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천하에임 사문(林斯文 임형수(林亨秀)를 말함)이 말하기를,</br>“내가 일찍이,</br>천하에 어찌 천리마가 없으리오 / 天下豈無千里馬</br>인간에 구방 고를 얻기 어렵도다 / 人間難得九方皐</br>하는 한 연구(聯句)를 얻었는데, 그뒤에 황산곡(黃山谷)의 시집을 보니 거기에,</br>세상에 어찌 천리마가 없겠는가 / 世上豈無千里馬</br>사람 가운데 구방 고를 얻기 어렵도다 / 人中難得九方皐</br>라는 글귀가 있었다. ‘세상’이라 한 것은 나의 ‘천하’보다 못하고, 그의 ‘사람 가운데[人中]’라 한 것은 나의 ‘인간(人間)’보다 낫다.”</br>하였다. 생각으로는 황산곡의 이 말은 고금에 뛰어났으며, 그후로 어찌 여기에 겨룰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고 우연히 합치되었다면 그는 천 년 뒤에 황산곡과 겨룬다 할 수 있다.지 않고 우연히 합치되었다면 그는 천 년 뒤에 황산곡과 겨룬다 할 수 있다.)
  • M011  + (임궁(琳宮)에서 범어를 파하니 / 琳宮梵語罷 하늘 빛이 유리처럼 깨끗하이 / 天色凈琉璃)
  • M058  + (임금의 수레 아래서 풍운이 일어나, 사람 죽인 것이 흩어져 있는 삼 베듯했네. 그러나 좋은 때를 저버릴 수 없어, 흰 술에 국화를 띄우네.)
  • E219  + (임서하(林西河)가 도망간 기생을 읊은 시에, 붉게 단장하고 새벽을 기다려서 임서하(林西河)가 도망간 기생을 읊은 시에,</br>붉게 단장하고 새벽을 기다려서 금비녀를 꽂으니 / 紅粧待曉帖金鈿</br>재촉하는 부름을 받아 비단 자리에 오르기 위함이다 / 爲被催呼上綺筳</br>장관의 엄한 호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 不怕長官嚴號令</br>공연히 행객이 인연이 나쁘다고 꾸짖는다 / 漫嗔行客惡因緣</br>다락에 올라가서 퉁소 부는 짝이 되지 못하고 / 乘樓未作吹簫伴</br>달로 달아나서 도리어 약을 훔치는 신선이 되었도다 / 奔月還爲竊藥仙</br>벼슬길에 있는 어진 학사들에게 말을 부치노니 / 寄語靑雲賢學士</br>어진 마음으로 부들 채찍을 보일 필요가 없다 / 仁心不用示蒲鞭</br>하였는데, 시는 참으로 아름다우나, 부들 채찍이라는 한 마디가 크게 규방의 풍미(風味)와 운치(韻致)가 없다. 만일 북[梭]을 던지는 여자를 만난다면 아마도 유여(幼輿)처럼 이가 부러져도 마음 달갑게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면 아마도 유여(幼輿)처럼 이가 부러져도 마음 달갑게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 E637  + (임석천(林石川 석천은 임억령(林億齡)의 호)은 사람됨이 고매하고 시 역시 사람됨과 같았다. 낙산사영(洛山寺詠)은 마치 용이 오르고 비가 내리는 형세로 문세(文勢)가 날아 꿈틀거려 그 기이한 경치와 자못 장려함을 다툴 만하였다. 그 시에 마음은 유수와 함께 세상으로 나오고 / 心同流水世間出 꿈에는 백구 되어 강 위를 나네 / 夢作白鷗江上飛 라 한 구절은 기상이 높아 신룡이 바다를 희롱하는 뜻이 있다.)
  • E665  + (임자순(林子順 자순은 임제(林悌)의 자)은 시명이 있었는데, 우리 두 형은 임자순(林子順 자순은 임제(林悌)의 자)은 시명이 있었는데, 우리 두 형은 늘 그를 추켜 받들고 인정해 주면서, 그의 삭설은 변방 길에 휘몰아치네[朔雪龍荒道]라는 시 한 편은 성당(盛唐)의 시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고 했다. 일찍이 그의 말을 들으면 어느 절에 가니 승축(僧軸)에</br>동화에서 밥을 빌던 옛날의 학관이라 / 竊食東華舊學官</br>분산이 좋아 노닐 만하다지만 / 盆山雖好可盤桓</br>십 년이나 그리던 꿈 비로봉(飛盧峯)을 감도니 / 十年夢繞毗盧頂</br>베갯머리 솔바람 밤마다 서늘하네 / 一枕松風夜夜寒</br>라 했는데, 어사(語詞)가 심히 탈쇄(脫洒)하나 그 이름이 빠져서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세상에 참으로 버려진 인재가 있어도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br>중형(仲兄)이 사명을 받들고 북방에 나가 압호정(壓胡亭)에 올라서</br>백옥에는 해 지난 병든 백성들 / 白屋經年病</br>푸른 벼를 망쳐 버린 하루 밤 서리 / 靑苗一夜霜</br>라 읊었는데, 임자순은 이를 극찬하고,</br>백옥 청묘는 열 글자의 시사(詩史)로다 / 白屋靑苗十字史</br>라는 시를 지어주었다. 중형도 임자순의</br>오랑캐 일찍이 이십 주를 엿볼 적엔 / 胡虜曾窺二十州</br>장군은 말 솟구쳐 봉후를 취했는데 / 將軍躍馬取封侯</br>지금은 절새에 정벌 싸움 없으니 / 如今絶塞無征戰</br>장사는 옛 역루에 한가로이 잠을 자네 / 壯士閑眠古驛樓</br>라는 시를 칭찬하여 협기(俠氣)가 펄펄 뛴다고 하였다.네 / 壯士閑眠古驛樓 라는 시를 칭찬하여 협기(俠氣)가 펄펄 뛴다고 하였다.)
  • E667  + (임진년(1592, 선조25) 6월 28일은 명종(明宗)의 기일(忌日)이라 신제이(申濟而 제이는 신노(申櫓)의 자) 가 곡구역(谷口驛)에서 시를 쓰기를 선왕께서 이 날에 군신을 버리실 적 / 先王此日棄群臣 유언은 은근히 성인에게 부탁했네 / 末命慇懃托聖人 스물이라 여섯 해에 향불이 끊어지니 / 二十六年香火絶 소리쳐 우는 사람 늙은 유민(遺民)뿐이로세 / 白頭號哭只民遺 라 하니, 보는 자가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E410  + (자순(子順) 임제(林悌)는 성격이 호방하고 시도 잘했는데 일찍이 지은 패강곡자순(子順) 임제(林悌)는 성격이 호방하고 시도 잘했는데 일찍이 지은 패강곡(浿江曲) 10 수 가운데 하나를 보면,</br></br>대동강 가 소녀들 봄볕 밟고 거니는데 / 浿江兒女踏春陽</br>어느 곳 봄볕인들 애간장이 안 끊기랴 / 何處春陽不斷腸</br>끝없이 내리는 저 햇살로 베를 짤 수만 있다면 / 無限煙絲若可織</br>님을 위해 재단해서 춤옷을 만들어 주련마는 / 爲君裁作舞衣裳</br></br>이라 하였다. 시어가 매우 염려(艶麗)한데 이는 대체로 번천(樊川 두목(杜牧))을 본받아 지은 작품이라 하겠다.)한데 이는 대체로 번천(樊川 두목(杜牧))을 본받아 지은 작품이라 하겠다.)
  • C054  + (작가의 표현 수단은 본래 각자 같지 않은 것이다.)
  • E038  + (장간공 장일의 승평연자루시는 이렇다. <blockquote class=장간공 장일의 승평연자루시는 이렇다.</br><blockquote class="font-weight-light my-2" style="padding-left: 2em; padding-right: 2em; line-height:110%">바람과 달 처량한 영자루,</br>낭관이 한번 간 뒤 꿈조차 아득하다.</br>당시 좌중의 손들 늙음을 어찌 싫어하는가,</br>누대 위의 미인도 또한 흰 머리가 되었는데.</blockquote> </br>밀직 곽예의 수강궁일요시는 이렇다.</br><blockquote class="font-weight-light my-2" style="padding-left: 2em; padding-right: 2em; line-height:110%">여름엔 서늘하게 겨울엔 따듯하게 깨끗하고 살찌게 길렀는데,</br>무슨 일로 구름을 뚫고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가.</br>바다제비는 일찍이 낟알 한톨 주지 않았는데,</br>해마다 곁에 돌아와서 대들보 위를 날아다닌다.</blockquote> </br>이승휴의 영운시는 이렇다.</br><blockquote class="font-weight-light my-2" style="padding-left: 2em; padding-right: 2em; line-height:110%">한조각 홀연히 바다 속에서 생겨,</br>동서남북 가로세로 멋대로 다니네.</br>장마되어 마른 곡식 살린다 하면서,</br>공연히 중천의 햇빛과 달빛만 가리네.</blockquote> </br>밀직 정윤의의 증렴사라는 시는 이렇다.</br><blockquote class="font-weight-light my-2" style="padding-left: 2em; padding-right: 2em; line-height:110%">이른 새벽 말을 달려 외로운 성에 들어가니,</br>울타리가엔 사람 없고 살구만 익었구나.</br>뻐꾸기는 나라일 급한 줄도 모르고서,</br>수풀가에서 밭 갈라고 하루 종일 권하고 있네.</blockquote> </br><p class="my-2 text-info">이 시들은 사람들이 즐겨 일컫는 것이다.</p></br><p class="my-2 text-info">그러나 장일의 시는 옛일이 느꺼워 지은 것이니 다른 뜻이 없다.</p></br><p class="my-2 text-info">그 나머지 세 편은 모두 풍유를 간직하고 있는데</p></br><p class="my-2 text-info">정윤의, 곽예의 시는 풍유가 드러나지 않고 완곡하다.</p>t;p class="my-2 text-info">그 나머지 세 편은 모두 풍유를 간직하고 있는데</p> <p class="my-2 text-info">정윤의, 곽예의 시는 풍유가 드러나지 않고 완곡하다.</p>)
  • M037  + (장안의 서신이 성기다 마소 / 莫道長安鯉信疏 세속의 소리가 어떻게 그윽한 수장안의 서신이 성기다 마소 / 莫道長安鯉信疏</br>세속의 소리가 어떻게 그윽한 수운에 이르겠소 / 俗音那到水雲幽</br>그대는 암당의 연월에서 편안히 은거하시는데 / 巖堂煙月棲身穩</br>나는 경연의 풍진에서 녹봉 그리워 머문다오 / 京輦風塵戀祿留</br>생각건대 그대는 도의 풍치가 골수에 스몄을 터인데 / 道韻想君風入骨</br>가련하도다 나는 벼슬길에서 머리가 희었다오 / 宦遊憐我雪蒙頭</br>어느날에나 벼슬 버리고 고상한 그대를 따라 / 掛冠何日攀高躅</br>육척의 쇠잔한 몸 고이 늙을꼬 / 六尺殘骸老可收대를 따라 / 掛冠何日攀高躅 육척의 쇠잔한 몸 고이 늙을꼬 / 六尺殘骸老可收)
  • E634  + (장음정(長吟亭) 나식(羅湜)의 시는 시취(詩趣)가 있어 이따금 성당시(盛唐詩장음정(長吟亭) 나식(羅湜)의 시는 시취(詩趣)가 있어 이따금 성당시(盛唐詩)에 접근하고 있다. 신광한과 정사룡 등 노대가들이 어느 집에 모여 바야흐로 포도(蒲桃) 그림 족자를 놓고 시를 읊으려 하는데 생각에 잠겨 미처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장음이 술에 취해 와서는 붓을 빼앗아 들고 족자 위에 쓰려 했다. 주인이 말리려 하자 호음이 그냥 두라고 하니, 장음은 절구 두 수를 지었는데 그 하나에</br>늙은 원숭이 무리를 잃고 / 老猿失其群</br>지는 해는 마른 등걸 위에 비치네 / 落日枯楂上</br>우뚝 앉아 고개도 아니 돌리니 / 兀坐首不回</br>아마도 천산의 메아리 듣는 거지 / 想聽千峯響</br>라 하였다. 호음이 크게 칭찬하고는 붓을 놓아버리고 짓지 않았다.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호)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br>“이는 성당 이주가(伊州歌)의 법이니 이른바 한 구절이라도 끊어 놓으면 시편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법이니 이른바 한 구절이라도 끊어 놓으면 시편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 E301  + (재상 최연(崔演)의 문장은 호건(豪健)하여 필한(筆翰)이 물 흐르는 것같다.재상 최연(崔演)의 문장은 호건(豪健)하여 필한(筆翰)이 물 흐르는 것같다. 인종(仁宗)의 만시(挽詩)는 이러하다.</br>삼년상을 짧게 한 한 나라를 마음으로 낮추보고 / 三年短制心嫌漢</br>오월을 여막에 거처함은 예법이 등 나라보다 낫네 / 五月居廬禮過滕</br>전고(典故)를 쓴 것이 매우 적당하다. 임 사문 형수(林斯文亨秀)가 인종의 만장을 짓기를,</br>오늘의 눈물을 차마 가지고서 / 忍將今日淚</br>작년 옷을 거듭 적시랴 / 重濕去年衣</br>하였다. 중종(中宗)이 승하하고 1년이 되지 않아 인종(仁宗)이 승하하였으니, 말은 간략하나 뜻은 극진하였다.년이 되지 않아 인종(仁宗)이 승하하였으니, 말은 간략하나 뜻은 극진하였다.)
  • E212  + (적암(適庵) 조신(曹伸)이 젊어서 재주 있기로 이름났는데, 성화(成化) 기해적암(適庵) 조신(曹伸)이 젊어서 재주 있기로 이름났는데, 성화(成化) 기해년에 통신사(通信使) 문충공(文忠公) 신숙주(申叔舟)를 따라 일본(日本)에 갔으니, 이는 함허(㴠虛) 홍귀달(洪貴達)과 나재(懶齋) 채수(蔡壽)가 번갈아 천거한 때문이었다. 성종이 어필(御筆)로 다섯 개의 제목을 내어 지어 바치게 하고, 또 여섯 승지(承旨)에게 명하여 어려운 운(韻)을 내어 시험하게 하였다. 떠나려 할 때에 함허가 적암부(適庵賦)를 지어 주었다. 뒤에 물러와 영남(嶺南) 금산(金山)에 살았는데, 시고(詩稿) 다섯 권과 《소문쇄록(謏聞瑣錄)》 한 권이 있다. 그 우음(偶吟)이라는 시에 말하기를,</br>아침 술 석 잔을 마시고 나이 70이 된 것을 자랑삼아 / 三杯卯酒詫年稀</br>손으로 남쪽 창문을 열어젖히고 한 번 시를 읊는다 / 手拓南窓一詠詩</br>샘 구멍에서 솟는 물이 못에 넘치매 고기가 뛰놀고 / 泉眼溢池魚潑剌</br>나무 숲이 집을 둘렀으니 새가 모여든다 / 樹林遶屋鳥來歸</br>꽃은 비갠 뒤에 안색이 나고 / 花生顔色雨晴後</br>바람이 불 때 버들은 허리를 흔드는구나 / 柳弄腰肢風過時</br>누가 적암이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던가 / 誰道適庵無箇事</br>매양 절물(節物)로 인하여 기심을 잊지 못한다 / 每因節物未忘機</br>하였는데, 스스로 주(註)를 내기를, “진퇴격(進退格)을 써서 시주(詩酒)ㆍ임천(林泉)ㆍ어조(魚鳥)ㆍ화류(花柳) 등 열 글자에 들였다.” 하였다.酒)ㆍ임천(林泉)ㆍ어조(魚鳥)ㆍ화류(花柳) 등 열 글자에 들였다.” 하였다.)
  • E253  + (적암(適菴) 조신(曺伸)이 황폐한 절에 들어가 율시 한 수를 지었다. 그 경련(頸聯)에, 길에는 올 가을 낙엽 덮였고 / 逕覆今秋葉 부엌에는 전일 불 때던 나무 남았네 / 厨餘去日樵 하였는데, 구법(句法)이 기기 절묘하여 사람들이 서로 전하며 읊었다. 그러나 적암이 스스로 자기 작품을 뽑은 것에는 이 시를 기록하지 않았으니, 젊어서 지어 만족스럽지 않아서 버린 것이나 아니겠는가?)
  • E069  + (전목(全穆)이 충주 기생 금란(金蘭)을 사랑하였는데, 그가 서울로 떠나려 할전목(全穆)이 충주 기생 금란(金蘭)을 사랑하였는데, 그가 서울로 떠나려 할 때 금란을 불러 타이르기를, “경솔히 남에게 몸을 허락하지 말라.” 하니, 금란의 말이, “월악산(月嶽山)은 무너질지라도 내 마음은 변치 않으리라.” 하였으나, 뒤에 단월역(斷月驛)의 승(丞)을 사랑하게 되었다. 전목이 이 소문을 듣고 시를 지어 보내기를,</br>듣자니 네가 문득 단월역 승을 사랑하여 / 聞汝便憐斷月丞</br>깊은 밤 항상 역을 향해 달려간다 하니 / 夜深常向驛奔騰</br>언제나 삼릉장(세모진 형장)을 잡고 / 何時手執三稜杖</br>돌아가 월악산 무너져도 마음은 변치 않는다던 맹세를 물어볼고 / 歸問心期月嶽崩</br>하니, 금란이 대답하여 말하기를,</br>북쪽에 전군이 있고 남쪽에는 승이 있으니 / 北有全君南有丞</br>첩의 마음 정할 수 없어 뜬구름 같도다 / 妾心無定似雲騰</br>만약 맹세한 바와 같이 산이 변할진대 / 若將盟誓山如變</br>월악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무너졌는고 / 月嶽于今幾度崩</br>하였다. 이것은 모두 사문(斯文) 양여공(梁汝恭)이 지은 것이었다.今幾度崩 하였다. 이것은 모두 사문(斯文) 양여공(梁汝恭)이 지은 것이었다.)
  • E105  + (전한 기준이 어느 날 당직을 서다가 꿈을 꾸었다. 교외를 떠돌며 객지에서 험전한 기준이 어느 날 당직을 서다가 꿈을 꾸었다. 교외를 떠돌며 객지에서 험한 길을 걷다가 근체시 한 수를 읊어내었다. ""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 시를 관아의 벽에 써두었다. 오래지 않아, 을묘년에 당쟁에 연루되어 호서로 귀양을 가고 다시 북도의 온성으로 이배되었는데 길에 보이는 것이 모두 그 시의 풍광이라, 말을 멈추고 시를 읊으면서 애통해하며 흐느꼈고 따르는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온성에 도착하고 곧 사사되니, 인사에 모두 정해진 것이 있음을 알겠다. 사림에 이야기가 전하자, 찬탄하고 애석해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을 알겠다. 사림에 이야기가 전하자, 찬탄하고 애석해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E681  + (전한(典翰) 하곡(荷谷) 허봉(許篈)은 시를 잘 지어 크게 이름을 떨쳤는데,전한(典翰) 하곡(荷谷) 허봉(許篈)은 시를 잘 지어 크게 이름을 떨쳤는데, 불행히도 요절하여 그의 시가 사람의 입에 전파되어 있는 것은 매우 적다. 나도 그의 시를 여러 편은 보지 못하였는데, 근래에 학사 기와(畸窩) 정홍명(鄭弘溟)이 나에게 말하기를,</br>“일찍이 들으니 내한(內翰) 장유(張維)가 우리나라 사람의 시를 논하기를 ‘근래의 문인재자 중에 하곡의 시가 으뜸이다’ 하였습니다.”</br>하였다. 나는 장 내한(張內翰)이야말로 틀림없이 본 것이 있었으리라 여기고, 《하곡유고(荷谷遺稿)》 한 권을 구하여 얻고서 늘 손에 들고 탐독하였는데 진실로 절세의 시재(詩才)였다. 격조가 높기는 경번당(景樊堂)과 같았지만 허탄한 병통은 없었다. 그 아우 허균은 재주가 넉넉하여 다함이 없지만 격률(格律)은 몹시 비루하니 같이 말할 수 없다.가 넉넉하여 다함이 없지만 격률(格律)은 몹시 비루하니 같이 말할 수 없다.)
  • E670  + (젊었을 적에 정백련(鄭百鍊)을 만나 본 일이 있었다. 그때 그가 병이 들어 젊었을 적에 정백련(鄭百鍊)을 만나 본 일이 있었다. 그때 그가 병이 들어 귀신을 만났는데 절구를 지을 줄 알더라고 했다. 그의 시 중 가장 좋은 것으로</br>봄 잠을 자고 나서 술을 따르니 / 酒滴春眠後</br>발 걷은 앞에서 꽃은 날리네 / 花飛簾捲前</br>인생이 얼마나 된단 말가 / 人生能幾許</br>비 내리는 하늘 슬피 바라보노라 / 悵望雨中天</br>와 또</br>만리라 거센 파도에 바다 해는 저무는데 / 萬里鯨波海日昏</br>벽도꽃[碧桃花] 그림자는 하늘 문에 비치네 / 碧桃花影照天門</br>난새 수레 한 번 가서 천년이나 고요터니 / 鸞驂一息空千載</br>후령의 영소 소리 한밤중에 들리네 / 緱嶺靈簫半夜聞</br>는 그 음운이 맑고 그윽하여 인간 소리가 아니었다.들리네 / 緱嶺靈簫半夜聞 는 그 음운이 맑고 그윽하여 인간 소리가 아니었다.)
  • E108  + (점쟁이 김륜이 젊었을 때 평안도의 향산(香山) 등지를 두루 유람하다가 한 방점쟁이 김륜이 젊었을 때 평안도의 향산(香山) 등지를 두루 유람하다가 한 방외인을 만났는데 이름이 이천년(李千年)이라 하였다. 그를 따라 여러 산을 함께 거의 6~7년을 유람하고 그에게서 술수를 배웠다. 헤어질 무렵에 이천년이 시 한 수를 주었다. ""그를 모시던 하인의 나이가 겨우 열서너 살이었는데 또한 손수 시를 지어 주었다. "" 또 한 수를 지어 주었다. ""시의 품격이 높고 옛스러우며, 필적은 기이하고도 굳세었다. 심지어 그 어린 하인조차 시재와 필법이 보통이 아니었으니 평범한 도사가 아니었음이 분명한데, 혹자는 이천년이 즉 정희량(鄭希良)이라 하였다.도사가 아니었음이 분명한데, 혹자는 이천년이 즉 정희량(鄭希良)이라 하였다.)
  • E426  +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시를 으뜸으로 친다 해도 이는 실로 과장된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시를 으뜸으로 친다 해도 이는 실로 과장된 것이 아니다. 가령 그의 시 가운데,</br></br>가랑비 오는데 승려는 옷을 깁고 / 細雨僧縫納</br>차가운 강물 위에 나그네 배 젓는구나 / 寒江客棹舟</br></br>라는 구절을 읊노라면 미상불 그 정세(精細)함에 탄복을 하게 되고, 또</br></br>십 년 세월 이 세상 일 홀로 읊으며 / 十年世事孤吟裏</br>중추 가절 나그네 되어 숲 사이를 서성이네 / 八月秋客亂樹間</br></br>이라는 구절을 감상하노라면 미상불 그 상랑(爽朗)함에 탄복을 하게 되며, 또</br></br>신라 시대 당간(幢竿)깃발 바람에 펄럭이고 / 風飄羅代蓋</br>부처 나라 꽃잎 위에 빗방울이 내리치네 / 雨蹴佛天花</br></br>라는 구절을 대하노라면 미상불 그 방원(放遠)함에 탄복을 하게 된다.天花 라는 구절을 대하노라면 미상불 그 방원(放遠)함에 탄복을 하게 된다.)
  • E617  +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호)의 글은 요체는 깨달았으나 높은 경지에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호)의 글은 요체는 깨달았으나 높은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으니 최동고(崔東皐 동고는 최립(崔岦)의 호)가 그를 가장 업신여겼다. 그의 시는 오로지 소식(蘇軾)ㆍ황정견(黃庭堅)에게서 나왔으니 전고자(銓古者 고전을 비평하는 사람)가 작게 보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다. 우리 중형은 일찍이 그의 시를 말씀하기를</br>학 울자 맑은 이슬 내려 맺히고 / 鶴鳴淸露下</br>달 뜨자 큰 고기 뛰어오르네 / 月出大魚跳</br>라 한 구절은 결코 성당(盛唐)의 시에 뒤지지 않으며,</br>가랑비 오는데 중이 장삼을 꿰매고 / 細雨僧縫衲</br>찬 가람에 나그네는 배 저어 가네 / 寒江客棹舟</br>와 같은 구절은 심히 한담(閑淡)한 맛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대체로 맞는 말씀이다.절은 심히 한담(閑淡)한 맛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대체로 맞는 말씀이다.)
  • E592  + (정 대간(鄭大諫 고려의 시인 정지상(鄭知常))의 시는 고려 전성기에 있어 가정 대간(鄭大諫 고려의 시인 정지상(鄭知常))의 시는 고려 전성기에 있어 가장 아름답다. 유전된 것은 극히 적지만 편편이 모두 절창이다. 이를테면</br>바람 부는 객선에 구름은 조각조각 / 風送客帆雲片片</br>이슬 엉긴 궁 기와엔 옥빛이 번쩍번쩍 / 露凝宮瓦玉粼粼</br>이라 한 것은 조금 가볍다 하겠고</br>버들 숲에 지게 닫은 엳아홉 집이라면 / 綠楊閉戶八九屋</br>밝은 달에 발 걷은 서너너덧 사람일레 / 明月捲簾三四人</br>라는 구절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신기하고 뛰어나다. 그,</br>바위 머리 소나무는 조각달에 늙었고 / 石頭松老一片月</br>하늘 끝의 구름은 천 점 산에 나직하네 / 天末雲低千點山</br>라는 구절은 딱딱하고 어렵지만 역시 청초(淸楚)한 맛을 지니고 있다.千點山 라는 구절은 딱딱하고 어렵지만 역시 청초(淸楚)한 맛을 지니고 있다.)
  • E593  + (정 대간의 서경시에 비 갠 긴 뚝에 풀빛은 더욱 짙고 / 雨歇長堤草色多 님 정 대간의 서경시에</br>비 갠 긴 뚝에 풀빛은 더욱 짙고 / 雨歇長堤草色多</br>님 보내는 남포에 구슬픈 노래 / 送君南浦動悲歌</br>대동강 물 언제나 다할 날이 있으리 / 大洞江水何時盡</br>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하네 / 別淚年年添綠波</br>라는 것은 지금까지 절창이라고 일컫는다. 부벽루 현판에 새겨진 시들은 중국 사신이 오게 되자 모두 철거한 일이 있었는데 이 시만은 남겨 두었었다. 그 뒤에 최고죽(崔孤竹 최경창(崔慶昌)의 호)이 이 시에 화운(和韻)하기를,</br>강 언덕 길고 긴데 휘늘어진 능수버들 / 水岸悠悠楊柳多</br>연 따는 노랫가락 조각배에 요란터니 / 小船爭唱采菱歌</br>붉은 꽃도 다 져서 서풍은 차가웁고 / 紅衣落盡西風冷</br>해 저문 물가엔 흰 물결만 일어나네 / 日暮芳洲生白波</br>라 했고, 이익지(李益之 이달(李達)의 자)는,</br>연잎은 들쭉날쭉 연밥은 주렁주렁 / 蓮葉參差蓮子多</br>연꽃 서로 사이해서 아가씨가 노래하네 / 蓮花相間女郞歌</br>돌아 올 땐 물목에서 벗 만나자 기약했기에 / 歸時約伴橫塘口</br>고되이 배 저어 거슬러 올라가네 / 辛苦移船逆上波</br>라 했다. 두 시가 매우 훌륭하여 왕소백(王少伯 소백은 당 나라 왕창령(王昌齡)의 자)ㆍ이군우(李君虞)의 여운이 있으나 이는 채련곡(採蓮曲)이라 서경 송별시의 본뜻과는 다르다.)의 여운이 있으나 이는 채련곡(採蓮曲)이라 서경 송별시의 본뜻과는 다르다.)
  • E324  + (정(正) 김홍도 중원(金弘度重遠 중원은 자)은 진사ㆍ급제에서 모두 장원, 영정(正) 김홍도 중원(金弘度重遠 중원은 자)은 진사ㆍ급제에서 모두 장원, 영남에 감군어사(監軍御史)가 되었다. 서당(書堂)에 있을 때 대책(對策)하는 것이 대단히 좋았고, 세 번 장가들어 두 아들을 두었었다. 그의 벗 집의 강극성(姜克誠)ㆍ부사 정질(鄭礩) 등은, 중원이 청수(淸粹)하므로 쉬 죽을 것 같다고 하여, 다음과 같은 만시를 지어 희롱하였다.</br>나이 젊어 진사 급제에 장원한 사나이가 / 靑年蓮桂壯元郞</br>미원과 옥당을 출입하네 / 出入薇垣與玉堂</br>영남에 감군되어 이름이 알려지고 / 南嶺監軍知姓字</br>동호에서 대책으로 문장을 독차지하였다 / 東湖對策擅文章</br>한 사람이 세 아내로 두 아들 두었고 / 一人三室遺雙果</br>네 무덤이 천추에 한 상을 같이하리 / 四塚千秋共一床</br>검푸른 머리 세상 친구가 슬퍼하고 / 綠髮世間悲故舊</br>흰 머리 홀어머니가 당상에서 우네 / 白頭堂上泣親孀</br>오래되지 않아서 중원이 귀양가서 죽어 벼슬이 이에서 그치고 어머니가 아직 생존하였으니 어찌 시의 예언이 아니겠는가? 친구들의 장난 또한 지나친 것이 아니랴?으니 어찌 시의 예언이 아니겠는가? 친구들의 장난 또한 지나친 것이 아니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