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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st of all pages that have property "TextKor" with value "이 시인은 이 같은 시를 즐겨 썼다.". Since there have been only a few results, also nearby values are displa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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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270  + (유촌(柳村)이 일찍이 나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난번에 서울에 들어와 신기재(申企齋)에게, ‘근래에 누구의 가작(佳作)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답하기를, ‘임공 형수(林公亨秀)가 탐라(耽羅)에 목사로 나가, 산은 왕자국에 서려 있고 / 山蟠王子國 물결은 노인성을 차도다 / 波蹴老人星 라는 글귀를 얻었는데, 이것이 가장 아름답다.’ 하였소.” 하였다. 내가 호음에게 질문하였더니, 곧 말하기를, “나는 그것이 좋은 줄 모르겠다.” 하였다.)
  • E672  + (유희경(劉希慶)이란 자는 천례(賤隷)이다. 사람됨이 청수하고 신중하며 충심으유희경(劉希慶)이란 자는 천례(賤隷)이다. 사람됨이 청수하고 신중하며 충심으로 주인을 섬기고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니 사대부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가 많았으며 시에 능해 매우 순숙(純熟)했다. 젊었을 때 갈천(葛川) 임훈(林薰)을 따라 광주(光州)에 있으면서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의 호)의 별장에 올라 그 누각에 전인(前人)이 써 놓은 성(星)자 운에 차하여</br>댓잎은 아침에 이슬 따르고 / 竹葉朝傾露</br>솔가지엔 새벽에 별이 걸렸네 / 松梢曉掛星</br>라 하니 양송천(梁松川 송천은 양응정(梁應鼎)의 호)이 이를 보고 극찬하였다. 하니 양송천(梁松川 송천은 양응정(梁應鼎)의 호)이 이를 보고 극찬하였다.)
  • E664  + (윤 사문 면(尹斯文勉)이 사명을 받들고 호남으로 떠나 어느 산을 지나가는데 윤 사문 면(尹斯文勉)이 사명을 받들고 호남으로 떠나 어느 산을 지나가는데 산 속에 초가집이 있었다. 거기서 한 늙은이가 나무 아래에서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고 책상 위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펴 보니 늙은이가 다가와서 빼앗으며,</br>“되지 않은 작품이라 남의 눈에 보여 줄 수가 없소.”</br>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겨우 첫머리에 쓴 빗을 읊은 시만을 보았는데 다음과 같았다.</br>얼레빗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 / 木梳梳了竹梳梳</br>빗질 천 번 쓸어 내려 이는 벌써 없어졌네 / 梳却千回蝨已除</br>어찌하면 만장 길이 큰 빗을 얻어다가 / 安得大梳長萬丈</br>백성들의 물것을 남기잖고 쓸어낼꼬 / 盡梳黔首蝨無餘</br>그 이름을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盡梳黔首蝨無餘 그 이름을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 E377  + (윤결 선생이 선군의 처소로 오셔서 종일 말씀하셨는데, 윤공이 오언절구 한 구윤결 선생이 선군의 처소로 오셔서 종일 말씀하셨는데, 윤공이 오언절구 한 구절을 부르시고, “이 시가 어떻습니까?” 하자, 선군이 말하기를, “이것은 귀신의 시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윤공이 대단히 놀라면서, “그대는 어떻게 귀신의 시인줄 아시오. 내가 어젯밤 꿈에 어떤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놀았는데, 흰 모래가 십여 리나 깔렸고, 달빛은 낮과 같았습니다. 어디서 꾀꼬리 소리가 들려 왔는데, 이 골짜기를 물어보니, 바로 ‘석문동(石門洞)’이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흥이 나서 오언시 한 수를 지었는데,</br>우연히 석문동(石門洞)에 들어와 / 偶入石門洞</br>시를 읊조리면서 홀로 밤길을 걷고 있구나 / 吟詩孤夜行</br>달은 대낮같이 밝고 시냇가 모래는 희기도 한데 / 月午澗沙白</br>텅빈 산골짜기 어디에선가 꾀꼬리 울음소리 한 차례 들리어 온다 / 空山啼一鶯</br>라고 지었습니다.” 하였다.리 울음소리 한 차례 들리어 온다 / 空山啼一鶯 라고 지었습니다.” 하였다.)
  • E380  + (윤결(尹結) 공이 젊었을 때 어느날 작은 마루에 나와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윤결(尹結) 공이 젊었을 때 어느날 작은 마루에 나와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고운 옷을 입은 종 하나가 나타나, 명함을 내어 놓기에 문으로 가서 맞이하니, 한 관인(官人)이 따라 들어오는데, 의관과 용모가 매우 바르고 깨끗하였다. 장원이 말하기를, “ 반드시 잘못 찾아오신 겁니다. 어찌 우리 집에 올 관인이 있겠습니까. 그만두시고 다른 데 가서 찾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하자, 그 관인은 말하기를, “꼭 윤 진사님을 뵙고자 합니다.” 하였다. 장원은 바로 갓과 옷을 가져오라 명하고 손님을 들어오시도록 하니, 그 관인은 자리를 옮겨 꿇어 앉아 말하기를, “제가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 어른을 번거롭게 하니, 말이 나오지 아니하여 감히 여쭙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명하신 어른께서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였다. 장원이 말하기를, “공의 모습을 뵈옵건대 현달한 관원 같으신데,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이렇게 오시어 이름도 없는 저를 찾으셨습니까.” 하였다. 그 관인은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말하기를, “장옥견(張玉見) 선생이 남양부백(南陽府伯)이 되었는데, 거문고 잘 타는 사람이 차례가 되어 서울에 왔었는데, 제가 우연히 그와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되어 그것을 계기로 정이 함빡 들어 떨어지려 하여도 차마 떨어질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장공에게 관대하게 용납하기를 청해 보았지만 허락해 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이름난 어른들의 글을 가져다가 청을 넣어 보았지만 그래도 허락하지 못하겠다 하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만일 윤 진사의 시를 얻게 된다면, 내가 1년 동안 빌려 주겠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감히 두려움을 무릅쓰고 와서 청하는게 올시다.” 하고, 이어서 술과 돈과 홍화전(紅花牋 글 쓰는 종이)한 폭을 꺼내서 무릎을 꺼내서 무릎을 꿇고 바치면서, “원하옵건대 명공(明公)께서 한 번 글 지으시는 노고를 아끼지 마시고 베푸시어 이 목마르고 주린 사람의 소망을 풀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장원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왜 다른 시를 구해다가 내가 지은 양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아니합니까.” 하니, 그는 또 말하기를, “고명한 선생의 시명(詩名)이 당대에 제일인 까닭으로 장공께서 꼭 얻고자 하옵니다. 다른 분의 시야 어디 이를 나위가 있습니까.” 하였다. 장원이 마침내 율시(律詩) 한 수를 내리쓰니,</br>보압좋은 향로(옛날의 향로는 오리 모양이었다)에 향불 잦아지고 / 寶鴨香銷罷</br>난당(아름다운 방 또는 여자가 쓰는 그윽한 방)에는 연기 흩어지네 / 蘭堂烟散初</br>등잔불 식어가니 작은 병풍은 어슴푸레하고 / 燈寒小屛暗</br>달 떠오르니 반쯤 드린 발에 빛 새어 들어 오누나 / 月上半簾疎</br>혀를 내밀면 모두 시샘을 이루고 / 吐舌皆成妬</br>맹약을 삼으면 또 헛될까 두렵구나 / 申盟更怕虛</br>낭군(郞君)의 정이 나와 같을 양이면 / 郞君情似妾</br>어찌 백년 된 옥이라도 아낄 것인가 / 何惜百年磲</br>하였다. 다 써서 주니, 그 관인이 고맙다 인사하고 돌아갔다. 얼마 후에 그 관인이 와서 사례하여 말하기를, “장 사또께서 선생의 시를 얻고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거문고 타는 아가씨를 돌려보내라고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관인은 옥천군수(沃川郡守) 왕손명(王孫名)이었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관인은 옥천군수(沃川郡守) 왕손명(王孫名)이었다.)
  • E378  + (윤결(尹結) 공이 젊었을 때 지은 명구 하나가 있다. 벼슬아치 백년에 좋은 솜씨가 없고 / 簪笏百年無好手 강호 천리에 기재(奇才)가 있구나 / 江湖千里有奇才 라고 했다. 내 선군(先君)께서 서화담(徐花潭) 선생에게 이 시를 읊어 주시자, 선생께서 말하기를, “이 시는 재주가 있는 듯하지만, 뜻이 원대하지 못하다.” 하였다.)
  • E079  + (윤무송(尹茂松)은 곧 신고령(申高靈)의 처형이니 한때 재상을 제수받은 일이 있다. 동년(同年) 모임에서 신고령이 한 구를 지었는데, 청안의 옛 친구들이 모두 백발이로다 / 靑眼故人俱白髮 하니, 윤무송이 급히 대구하기를, 검은 머리의 현상이 다만 단심이로다 / 黑頭賢相只丹心 하였다. 신고령이 탄복하여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나는 형만큼 정밀하지 못하다.” 하였다. 신고령이 고부(古阜) 기생 지단심(只丹心)을 사랑한 까닭에 이렇에 말한 것이다.)
  • E337  + (윤장원(尹長源)은 아이 때에 그 아버지가 관등(觀燈)하는 날 저녁에 관장하다가 인하여 연구(聯句)를 지어보라고 하였더니, 장성과 화성이 번쩍번쩍이고 / 長星火星爛爛然 한 층 두 층 서네 층이러라 / 一層二層三四層 하므로, 그가 시재가 있는 것을 알고 학업을 독려하기를 더욱 급하게 하였었다.)
  • E675  + (을미년(1595, 선조28)과 병신년(1596, 선조29) 사이에 명나라의 을미년(1595, 선조28)과 병신년(1596, 선조29) 사이에 명나라의 장군 제독(提督) 유정(劉綎)이 병사를 이끌고 호남과 영남 사이를 왕래하였는데, 막하에 한 서생을 데리고 다녔다. 가끔씩 시를 지었고, 사람들은 간혹 그의 가구(佳句)를 전하여 읊었으나, 그 얼굴은 본적도 없고 이름도 알지 못하였다. 그때 우리나라와 왜적은 서로 대치하여 승패를 결정하지 못했는데, 그 서생이 방휼(蚌鷸)의 비유를 써서 장률을 지어 이르기를,</br></br>늙은 조개 추위 피해 햇볕을 쬐는데 / 老蚌當陽爲怕寒</br>들새는 무슨 일로 애써 구하였는가 / 野禽何事苦相干</br>몸은 굴혈 떠나 진주 태는 손상되고 / 身離窟穴珠胎損</br>여울에서 힘 다해 푸른 깃은 쇠잔타 / 力盡沙灘翠羽殘</br>입 닫을 때에 열 때의 화를 어찌 알며 / 閉口豈知開口禍</br>머리 넣을 때에 빼기 어려움 누가 알았으랴 / 入頭誰料出頭難</br>어부 손에 함께 떨어질 줄 일찍 알았던들 / 早知俱落漁人手</br>구름과 물속 맘껏 날고 잠겨있을 텐데 / 雲水飛潛各自安</br></br>하였다. 서생은 대개 당시의 어지러운 사세(事勢)를 보고 어부지리(漁父之利)의 설을 그릇되게 거론한 것이다. 마침내 국가가 다시 회복되어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상국(上國 명나라)이 한결같이 우리나라를 구휼하고 선조(宣祖)께서 발리(跋履 여러 곳을 다니며 애씀)하시며 난을 극복한 노력이 아님이 없으니, 서생이 어찌 말을 할 줄 아는 자이겠는가.을 극복한 노력이 아님이 없으니, 서생이 어찌 말을 할 줄 아는 자이겠는가.)
  • E388  + (을유년에 사암(思菴) 박순(朴淳)은 영의정이 되고, 소재(蘇齋) 노수신(盧守을유년에 사암(思菴) 박순(朴淳)은 영의정이 되고,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과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은 좌의정과 우의정이 되고, 송강(松江) 정철(鄭澈)과 청천(聽天) 심수경(沈守慶)은 좌찬성과 좌참찬이 되었는데, 다섯 공은 모두 장원 급제를 한 분들이었다. 그때에 다섯 분이 장원 계(契) 축(軸)을 만들었는데, 이름을 ‘정부용두회축(政府龍頭會軸)’이라 했다. 심 상국(沈上國)이 시 짓기를,</br>깊고 넓은 상부(相府)의 용두회는 / 潭潭相府會龍頭</br>성하여 오늘날 비할 만한 짝이 없구나 / 盛事如今罕比侔</br>-제 3구는 기억하지 못한다. -</br>도리어 보통 물건이 명류에 섞인 것을 부끄러워하노라 / 却慙庸品厠名流</br>하였다. 정송강은 이에 화답하여,</br>다섯 학사가 다섯 장원이 되고 보니 / 五學士爲五狀頭</br>성명(聲名)이 내게 이르러 서로 짝이 못 되노라 / 聲名到我不相侔</br>다만 좋은 일에 분별이 없어서 / 祗應好事無分別</br>모두 당시에 제일류라 하는구나 / 等謂當時第一流</br>하였다. / 祗應好事無分別 모두 당시에 제일류라 하는구나 / 等謂當時第一流 하였다.)
  • E396  + (의주(義州) 통군정(統軍亭)은 세 나라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경치가 장관이니 의주(義州) 통군정(統軍亭)은 세 나라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경치가 장관이니 온 세상에서 다 찾아보아도 그 짝을 구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시인들이 이곳을 주제로 읊은 시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그 형세와 기상을 제대로 표현한 경우는 있지 않았다. 그런데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연소한 나이에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절구 한 수를 짓기를,</br>내가 강을 건너가서는 / 我欲過江去</br>곧바로 송골산에 오르고 싶네 / 直登松鶻山</br>서쪽에서 화표주(華表柱)의 학 불러 내다가 / 西招華表鶴</br>구름 속에서 서로 한 번 놀아보려네 / 相與戲雲間</br>이라 하였는데, 이 시가 대작(大作)은 아니라 하더라도 스스로 기발하여 뒤에 전할 만하다 하겠다. 그 뒤에 시인 묵객들이 와서 읊은 것 가운데 이런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는 시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와서 읊은 것 가운데 이런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는 시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 C052  + (이 구절들은 모두 좋은 것이다. 다만 전편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 C008  + (이 글귀는 바로 하나의 여지지(輿地志)다.)
  • E595  + (이 대간이 승정원(承政院)에서 숙직하며 지은 시에 공작 병풍 깊은 곳에 촛불이 대간이 승정원(承政院)에서 숙직하며 지은 시에</br>공작 병풍 깊은 곳에 촛불 그림자 희미한데 / 孔雀屛深燭影微</br>원앙새는 쌍쌍 자니 어찌 각각 날아가리 / 鴛鴦雙宿豈分飛</br>애닯구나 초췌한 청루 속의 여인이여 / 自憐憔悴靑樓女</br>길이 남을 위하여 시집갈 옷 짓다니 / 長爲他人作嫁衣</br>라 했으니, 대개 대간이 오래도록 하관(下官)으로 있어 상기 등용되지 못했는데 동료들은 모두 재상 길에 올랐으므로 재상의 사령장(辭令狀)을 초(草) 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이 시를 지은 것이었다. 사령장(辭令狀)을 초(草) 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이 시를 지은 것이었다.)
  • E596  + (이 문순(李文順 이규보(李奎報)의 시호)의 시는 부려하고 방일하다. 그 칠석이 문순(李文順 이규보(李奎報)의 시호)의 시는 부려하고 방일하다. 그 칠석우(七夕雨)란 시는 참으로 절창이다. 그 시에</br>얇은 적삼 삽자리로 바람 난간에 누웠다가 / 輕衫小簞臥風欞</br>꾀꼬리 울음 소리 두세 번에 꿈을 깼네 / 夢覺啼鸎三兩聲</br>짙은 잎에 가린 꽃은 봄 뒤까지 남아 있고 / 密葉翳花春後在</br>엷은 구름 헤친 햇살 빗속에 밝도다 / 薄雲漏日雨中明</br>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읽기만 해도 시원해진다. 또,</br>관인이 한가로이 젓대를 골라 부니 / 官人閑捻笛橫吹</br>부들자리 바람 타고 날아갈 듯하구나 / 蒲席凌風去似飛</br>천상에 걸린 달은 천하가 함께 누릴 텐데 / 天上月輪天下共</br>내 배에 혼자 싣고 돌아오나 여기네 / 自疑私載一船歸</br>라고 한 시 또한 지극히 고일(高逸)하다.돌아오나 여기네 / 自疑私載一船歸 라고 한 시 또한 지극히 고일(高逸)하다.)
  • E603  + (이 문정(李文靖 문정은 이색(李穡)의 시호)의 ‘어제 영명사에 들르다[昨過永이 문정(李文靖 문정은 이색(李穡)의 시호)의 ‘어제 영명사에 들르다[昨過永明寺]’라는 작품은 별로 수식하거나 탐색한 흔적 없이 저절로 음률에 맞아서 읊으면 신일(神逸)하다. 허영양(許穎陽)은 이를 보고 ‘당신네 나라에도 이와 같은 작품이 있소.’라고 했다. 그의 부벽루(浮碧樓) 시는 대편(大篇)인데 거기에</br>문 머리엔 고려 시가 상기도 걸렸으니 / 門端尙懸高麗詩</br>당시에도 하마 중화 문자 깨쳤다네 / 當時已解中華字</br>라고 했으니, 비록 우리나라 사람을 깔보기는 했으나 또한 문정공의 시에는 감복하고 있었던 것이다.리나라 사람을 깔보기는 했으나 또한 문정공의 시에는 감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 C039  + (이 시가 가장 전려한 것으로 뽑혔다.)
  • C043  + (이 시가 오래도록 읊어졌다고 해서 어찌 더 남은 맛이 없겠는가.)
  • C040  + (이 시는 왕기공의 시와 나란히 앞을 다툴 만하다.)
  • C044  + (이 시는 정습명의 시에 비해 그다지 못할 것이 없다.)
  • C056  + (이 시는 정치가 유렿다.)
  • C042  + (이 시들은 말은 같지 않으나, 거기에 쓰인 뜻은 서로 같다.)
  • C045  + (이 시들은 사람들이 즐겨 일컫는 것이다.)
  • C049  + (이 시를 보면 양비경이 늙은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C036  + (이 시를 통해 당시의 일이 어찌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늙은이의 마음은 크고 구애됨이 없어 범상하지 않다.)
  • C035  + (이 시인은 이 같은 시를 즐겨 썼다.)
  • E254  + (이 정승(李政丞) 용재(容齋 행(荇)의 호) 선생의 ‘제갈 무후를 읊다[詠諸이 정승(李政丞) 용재(容齋 행(荇)의 호) 선생의 ‘제갈 무후를 읊다[詠諸葛武侯]’라는 시에,</br>사생을 나라에 허하여 힘을 다했는데 / 死生許國無遺力</br>성패로 사람을 논하는 것은 어린애지 / 成敗論人是小兒</br>하였다. 의논이 공정하고 글도 또한 새롭다. 중국 사신[天使] 당고(唐皐)의 시에 차운(次韻)하기를,</br>아득한 삼산은 솥을 엎은 것으로 보이고 / 縹緲三山看覆鼎</br>굽이친 한 띠의 물은 투금강에 닿았어라 / 逶迤一帶接投金</br>하였다. 복정은 삼각산(三角山)의 별명이요, 양화(楊花) 나루를 투금강이라 하기도 한다. 대구가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이 일련(一聯)은 소퇴휴(蘇退休) 상공(相公)이 지은 것이다. 소퇴휴가 말하였다. 《황화집(皇華集)》을 얻어 본 것이 기억나는데, 대(帶) 자는 수(水) 자였다. 대(帶) 자는 아마 전하는 사람들이 잘못 전한 것일 게다. 용재(容齋)의 이름은 이행(李荇)이요, 퇴휴의 이름은 소세양(蘇世讓)이다. 용재(容齋)의 이름은 이행(李荇)이요, 퇴휴의 이름은 소세양(蘇世讓)이다.)
  • E599  + (이견간(李堅幹)의 시에 여관에는 호롱불 하나 남은 심지 돋우노니 / 旅館挑殘이견간(李堅幹)의 시에</br>여관에는 호롱불 하나 남은 심지 돋우노니 / 旅館挑殘一盞燈</br>사신(使臣)의 풍미가 중보다 담박하네 / 使華風味淡於僧</br>창 너머 두견 소리 밤새도록 듣노니 / 隔窓杜宇終宵聽</br>산꽃의 몇째 층에 울음소리 나는고 / 啼在山花第幾層</br>라 했는데, 이 시를 두고 당시에는 절창이라고 일렀다. 나는 관동(關東) 지방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 이른바 두견이란 곧 소쩍새의 무리였다. 절강(浙江) 사람 왕자작(王子爵), 사천(泗川) 사람 상방기(商邦奇)가 함께 강릉(江陵)에 왔으므로 그들에게 내가 물었더니, 모두 말하기를, 이는 두견이 아니라고 하였다. 대개 시인들은 흥을 붙여 말하는지라, 비록 그 물건이 아니더라도 시 가운데 그 말을 쓴 것이다. 이를테면</br>수풀 너머 흰 잔나비 울음 부질없이 듣노라 / 隔林空聽白猿啼</br>와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는 본시 잔나비가 없고,</br>집집마다 긴 대 숲에 비취새 울음 우네 / 脩竹家家翡翠啼</br>와 같은 경우는, 파랑새를 보고 염주취(炎洲翠)라 한 것이고,</br>자고새는 놀라서 해당화를 흔드네 / 鷓鴣驚簸海棠花</br>와 같은 경우는, 때까치가 깍깍 우는 것을 보고 행부득(行不得)이라 한 것이니, 모두 이와 같은 유이다.깍 우는 것을 보고 행부득(行不得)이라 한 것이니, 모두 이와 같은 유이다.)
  • M029  + (이곳과 중화 사이 큰 바다 막혔는데 / 此去中華隔大瀛 두 공은 거울처럼 맑은이곳과 중화 사이 큰 바다 막혔는데 / 此去中華隔大瀛</br>두 공은 거울처럼 맑은 마음 통했네 / 兩公相照鏡心淸</br>공공상인이 벌집만한 집을 막 지으니 / 空師方結蜂窠室</br>조파 선로(禪老)가 토각이란 이름 멀리서 전했네 / 播老遙傳兎角名</br>지팡이는 예스러워 반죽의 흔적 남았고 / 杖古尙餘斑竹暈</br>바리때는 신령스러워 벽련의 줄기가 빼어났네 / 鉢靈應秀碧蓮莖</br>하루에 이처럼 친절하게 사귀어서 / 誰敎一日親交錫</br>금모(金毛)가 땅을 진동하는 소리를 함께 짓게 하였는가 / 共作金毛震地聲錫 금모(金毛)가 땅을 진동하는 소리를 함께 짓게 하였는가 / 共作金毛震地聲)
  • E425  + (이공 수광(李公睟光)의 자는 윤경(潤卿)이요 호는 지봉(芝峯)인데 단아한 풍이공 수광(李公睟光)의 자는 윤경(潤卿)이요 호는 지봉(芝峯)인데 단아한 풍도가 진세(塵世)를 벗어나 세상의 변고를 차례로 다 맛보았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좌절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이와 함께 기미를 보고 일어나 함정에 떨어지는 화를 면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금옥군자(金玉君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밖으로 나가 순천부(順川府)를 맡고 있을 때 시권(詩卷)을 부쳐 보냈는데 그 가운데 칠언 근체시 2수가 들어 있었다. 그 시를 보건대,</br></br>늘그막에 남쪽 시골 수령으로 내려와서 / 暮年身世宰炎鄕</br>다스릴 능력 없어 탄식만 하고 앉아 있네 / 治郡無能坐嘯長</br>한가한 집 뜨락엔 봄 제비도 오지 않고 / 春燕不來閑院落</br>조그마한 연못가엔 맑은 물결 찰랑이네 / 晴波欲滿小池塘</br>붉은 매화 그림자 아래 문서 처리할 일도 없고 / 紅梅影下文書靜</br>귤나무 그늘 가에 자리가 향기롭네 / 綠橘陰邊几席香</br>퇴근하고 문 닫히자 인적도 끊어지고 / 衙罷閉門人跡少</br>창 너머 새 소리에 또 기우는 저녁 햇살 / 隔窓啼鳥又斜陽</br></br>이라 하였고, 또</br></br>난간 밖 연못의 빛 푸른 이끼 물들이고 / 檻外池光梁綠苔</br>주렴(珠簾)에 비낀 가랑비 노란 매실 익히누나 / 一簾微雨欲黃梅</br>출근해도 문 닫힌 채 적막하기 그지없고 / 衙居寂寞門長掩</br>퇴근해도 어제처럼 인 꺼낼 일 하나 없네 / 公退尋常印不開</br>밀감 향내 맡으면서 산 사슴 잠이 들고 / 盧橘香邊山鹿睡</br>석류 꽃 그늘 아래 새들 모여 앉아 있네 / 石榴花下怪禽來</br>창문 밖엔 하루 종일 찾아오는 인적 없어 / 軒窓盡日淸如水</br>오늘도 시상(詩想)에 젖다 낮잠에 빠져드네 / 輸與騷翁晝夢回</br></br>라고 하였는데, 격운(格韻)이 청려(淸麗)하여 스스로 미칠 수가 없다.回 라고 하였는데, 격운(格韻)이 청려(淸麗)하여 스스로 미칠 수가 없다.)
  • E084  + (이광성(李廣城)은 문장(文章)과 다스림의 재주가 모두 넉넉해서 항상 스스로 이광성(李廣城)은 문장(文章)과 다스림의 재주가 모두 넉넉해서 항상 스스로 국사(國士)라 하고, 인물을 평할 때는 좋게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특별히 백씨(伯氏)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이광성이 도승지이고 백씨가 우승지였는데, 이광성이 어느 기생을 사랑하여 자취를 감추자 백씨가 간 곳을 알아내고 시를 지어 말하기를,</br>관아가 파하여 돌아옴에 날이 저물려 하는데 / 衙罷歸來日欲低</br>명화와 국사가 둘이 서로 만났구나 / 名花國士兩相擕</br>뉘 집 골목 속에 수레를 숨겼는가 / 誰家巷裏藏車駕</br>사온서의 동쪽이요, 예부의 서쪽일세 / 司醞東邊禮部西</br>하고는, 몰래 시를 그 벽에 붙여두었는데, 이광성이 보고 찢어서 소매 속에 넣어버렸다. 이로부터 더욱 뜻이 서로 맞았다. 이광성이 체질될 적에 세조(世祖)가, “군(君)에 대신할 자가 누구냐?”고 물으니, 이광성이 아뢰기를, “성(成) 아무개보다 나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여, 백씨가 도승지에 등급을 뛰어넘어 제배(除拜)되었다.람이 없습니다.” 하여, 백씨가 도승지에 등급을 뛰어넘어 제배(除拜)되었다.)
  • C018  + (이는 초사(楚辭)의「저녁에는 떨어진 가을의 국화 꽃을 먹는다[夕餐秋菊之落英]」라는 말을 알지 못함이니, 구양수의 배우지 못한 과실이다.)
  • E609  + (이도은(李陶隱 도은은 이숭인(李崇仁)의 호)의 오호도시(嗚呼島詩)를 목은(牧이도은(李陶隱 도은은 이숭인(李崇仁)의 호)의 오호도시(嗚呼島詩)를 목은(牧隱)은 추장하여 성당(盛唐)에 비길 만하다고 하였는데 이로 인해 삼봉(三峯)과 서로 사이가 좋지 않게 되고 기구한 화마저 당하게 되었다. 지난날 주 태사(朱太史)가 이 작품을 보고 또한 매우 감탄하였다. 그</br>산북과 산남으로 세로는 갈라지고 / 山北山南細路分</br>송화는 비 머금어 어지러이 떨어지네 / 松花含雨落紛紛</br>도인이 물을 길어 초가로 돌아오니 / 道人汲井歸茅舍</br>한 가닥 푸른 연기 흰 구름을 물들이네 / 一帶靑煙染白雲</br>라고 한 시는 유수주(劉隨州 당 나라 유장경(劉長卿))에게 무엇이 모자란다 하겠는가?시는 유수주(劉隨州 당 나라 유장경(劉長卿))에게 무엇이 모자란다 하겠는가?)
  • M074  + (이른 새벽 말을 달려 외로운 성에 들어가니, 울타리가엔 사람 없고 살구만 익었구나. 뻐꾸기는 나라일 급한 줄도 모르고서, 수풀가에서 밭 갈라고 하루 종일 권하고 있네.)
  • E621  + (이망헌(李忘軒 망헌은 이주(李冑)의 호)의 시는 가장 침착하여 성당(盛唐)의이망헌(李忘軒 망헌은 이주(李冑)의 호)의 시는 가장 침착하여 성당(盛唐)의 풍격이 있다.</br>아침해는 붉게 뿜어 발해에 솟구치고 / 朝日噴紅跳渤澥</br>갠 구름 희게 펴져 무려산(巫閭山)을 나오네 / 晴雲挹白出巫閭</br>와 같은 시구는 매우 힘이 있으며</br>언 비는 천 산 마루 눈으로 비껴 닿고 / 凍雨斜連千嶂雪</br>주린 까마귀 한 수풀 바람에 놀라 우네 / 飢烏驚叫一林風</br>라 한 시구는 노창(老蒼)하고 기걸(奇杰)하다. 통주(通州)에서 지은 시는</br>통주는 천하의 승경(勝景)인지라 / 通州天下勝</br>누각들이 구름 하늘에 솟았구려 / 樓觀出雲霄</br>저자에는 금릉의 물화(物貨) 쌓이고 / 市積金陵貨</br>강 줄기는 양자의 물결로 가네 / 江通揚子潮</br>가을이라 찬 연기 물가에 내리고 / 寒煙秋落渚</br>저녁 되니 외론 학은 요동으로 돌아가네 / 獨鶴暮歸遼</br>말에 탄 신세는 천리 나그네 / 鞍馬身千里</br>정자에 오르니 고국은 멀고멀어라 / 登臨故國遙</br>라 했는데, 이 역시 기막히게도 왕유(王維)ㆍ맹호연(孟浩然)의 수준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역시 기막히게도 왕유(王維)ㆍ맹호연(孟浩然)의 수준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 E060  + (이맹균(李孟畇) 공은 목은(牧隱)의 장손으로서 벼슬이 이상(貳相)에 이르러 이맹균(李孟畇) 공은 목은(牧隱)의 장손으로서 벼슬이 이상(貳相)에 이르러 세업을 계승하였으며 문명(文名)이 있고, 더욱이 시에 능하였다. 일찍이 〈비송도(悲松都)〉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br>5백년 내려온 왕기가 끊어지니 / 五百年來王氣終</br>닭을 잡고 오리를 잡았으나 마침내 무슨 공을 이루었냐 / 操鷄摶鴨竟何功</br>영웅은 이미 가고 산하만 의구한데 / 英雄已逝山河在</br>인물은 남쪽으로 옮겨갔으니 시정은 비었구나 / 人物南遷市井空</br>비원의 앵화는 이슬비 뒤에 피었고 / 上苑鶯花微雨後</br>여러 능의 풀과 나무가 저녁 놀에 비치는구나 / 諸陵草樹夕陽中</br>내가 이날 와서 보고 자못 느낌이 많으니 / 我來此日偏多感</br>지난 일은 유유한데 물은 스스로 동쪽으로 흘러가누나 / 往事悠悠水自東</br>하였다. 또 자식 없음을 근심하여 시를 지었는데,</br>인도가 인에서 일어남으로부터 / 自從人道起於寅</br>아비와 자식이 서로 이어져 이 몸에 이르렀도다 / 父子相傳到此身</br>내 죄 어떠하기에 하늘이 불쌍이 여기지 않아 / 我罪伊何天不弔</br>아직도 남의 아비가 되지 못하고 살쩍만 새롭도다 / 未爲人父鬢絲新</br>하였다. 그 뒤에 질투심이 많고 독살스러운 부인 때문에 집 안에 우환이 있었는데 공도 이 일로 인하여 죄를 얻어 마침내 귀양살이를 하다가 죽었다. 있었는데 공도 이 일로 인하여 죄를 얻어 마침내 귀양살이를 하다가 죽었다.)
  • E200  + (이문순공(李文順公)이 여러 마리 닭이 벌레를 쪼는 것을 보고, 싫어서 쫓고는이문순공(李文順公)이 여러 마리 닭이 벌레를 쪼는 것을 보고, 싫어서 쫓고는 시를 짓기를,</br>주주공(닭)이 / 朱朱公</br>벌레 쪼기를 좋아하나 / 好啄虫</br>내가 차마 볼 수 없어 / 予不忍視</br>가까이 오지 못하게 쫓으니 / 斥勿使邇</br>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라 / 汝莫怨我爲</br>살기 위해서는 본래 스스로 지키는 법 / 好生本自期</br>나도 이제 늙어서 물러가니 / 我今退老疎散</br>아침 하늘이 일찍 밝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 不卜朝天早晏</br>어찌 네 소리 새벽 알림을 들을 필요가 있으랴 / 豈要聞渠聲報曙</br>잠을 탐하여 오히려 창이 밝기를 피하련다 / 貪眠尙欲避窓明</br>하고는, 스스로 주석을 내기를, “3언(言)에서 7언까지 된 시로, 이는 이태백(李太白)의 3ㆍ5ㆍ7언을 본뜬 시이다.” 하였다. 문정공 어세겸의 국화를 읊은 시에,</br>국화야, 국화야 / 菊菊</br>형은 솔이고 아우는 대나무로 / 兄松弟竹</br>저녁 이슬을 마시고 / 挹夕露</br>아침 햇빛을 받아 / 承朝旭</br>그 빛깔 눈부시고 / 粲粲英英</br>그 향기 아름답구나 / 芬芬郁郁</br>서리 맞은 봉오리는 저녁 금빛인양 빛나고 / 霜葩耀晩金</br>비에 젖은 잎사귀는 새벽 구슬 같구나 / 雨葉滋晨玉</br>삼경을 열고 남산을 바라보며 / 開三徑望南山</br>한 못을 거슬러 감곡을 따라가니 / 溯一潭追甘谷</br>달고 꽃다움은 스스로 늙어가는 나이를 막을 만하고 / 甜芳自可制頽齡</br>은일함은 도리어 경박한 풍속을 고칠 만하도다 / 隱逸還堪醫薄俗</br>향혼이 죽지 않아 옛 정신 완연하고 / 香魂不滅宛舊精神</br>색상은 여전히 본래의 면목을 지녔도다 / 色相猶存本來面目</br>오모가 떨어질 때 한 가지 다시 꽂으니 / 烏帽落時更看揷一枝</br>백의 오는 곳에 어찌 몇 말의 술인들 꺼리리오 / 白衣來處何嫌酌數斛</br>이 국화가 이미 그 지조를 깨끗이 함에 합당하니 저절로 참되고 / 物旣合潔其操自然而眞</br>사람이 다투어 시로 읊으니 누구의 사랑이 더욱 지극할까 / 人爭播咏於詩愛之誰酷</br>하고는, 스스로 주석을 내기를, “첫 자에서 열 자까지는 또 문순공(文順公)의 시를 본뜨고 그 체격(體格)을 첨가하였다.” 하였다. 또 문순공(文順公)의 시를 본뜨고 그 체격(體格)을 첨가하였다.” 하였다.)
  • M081  + (이야기 무르녹을 때 이지러진 달이 깊은 사립문에 들어오고, 늦도록 앉았노라니 산들바람이 높은 잣나무에서 읊조린다.)
  • E210  + (이용재(李容齋)가 주운(朱雲)을 읊은 시(詩)에, 허리 사이에 칼이 있으니 이용재(李容齋)가 주운(朱雲)을 읊은 시(詩)에,</br>허리 사이에 칼이 있으니 어찌 청할 필요가 있으랴 / 腰間有釰何須請</br>지하에 사람이 없더라도 또한 족히 놀 만하리라 / 地下無人亦足遊</br>애석하다. 한 나라 조정의 괴리령은 / 可惜漢庭槐里令</br>평생에 오직 아첨하는 신하의 머리만 알았도다 / 一生唯識佞臣頭</br>하였는데, 고금(古今)에 주운을 읊은 자가 이런 생각이 없었으니, 비록 당(唐)ㆍ송(宋)의 문집 속에 넣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정덕 신사년에 용재(容齋)가 멀리 당태사(唐太史) 고(皐)를 의주(義州)에서 영접하는데, 태사가 법도가 있어서 말도 경솔히 하지 않았다. 정주(定州)에 이르러 용재가 같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속필(速筆)로, 태사가 지은 음락(飮酪)에 대한 절구(絶句) 네 수(首)에 차운(次韻)하니, 태사가 이를 보고 “참으로 노련한 솜씨다.”라 하였다.에 차운(次韻)하니, 태사가 이를 보고 “참으로 노련한 솜씨다.”라 하였다.)
  • E629  + (이익지(李益之)는 어릴 적에 두시(杜詩)를 호음(湖陰)에게 배웠는데 하루는 이익지(李益之)는 어릴 적에 두시(杜詩)를 호음(湖陰)에게 배웠는데 하루는 익지더러 서가 위의 여러 책을 가져오도록 명했다. 그리하여 호음이 그것을 보다가 《춘정집(春亭集)》이 나오니 땅에 던져버렸고, 《매계집(梅溪集)》은 펴보고 웃으며 덮었는데 대개 가볍게 여긴 것이었다. 오직 《점필재집(佔畢齋集)》만은 집어들고 익히 보기를 마지않았다. 익지가 엿보니 모두 뽑아서 줄을 그으니 대개 그들을 좋아하여 소재로 취해 시의 자료로 하려는 것이었다. 언젠가 평생에 가장 마음에 만족하게 여기는 시구를 물었더니</br>산 나무 함께 우니 바람 언뜻 일어나고 / 山木俱鳴風乍起</br>강물 소리 문득 높자 달이 홀로 걸렸네 / 江聲忽厲月孤懸</br>라는 구절을 사람들이 깎은 듯 아름답다고들 하고,</br>산꼭대기에 깜빡이는 별은 조각달과 빛 다투고 / 峯頂星搖爭缺月</br>나무 위에 움직이는 새는 깊은 떨기 숨는고야 / 樹顚禽動竄深蕞</br>라는 시구 역시 시상(詩想)은 교묘하지만 마침내</br>빗기운 노을 눌러 산은 문득 어두워지고 / 雨氣壓霞山忽暝</br>냇빛은 달을 받아 밤에도 밝구나 / 川華受月夜猶明</br>라 한 구절보다는 못하니, 이는 마치 신이 도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明 라 한 구절보다는 못하니, 이는 마치 신이 도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 E618  + (이전 사람들은 점필재가 여강(驪江)에서 읊은, 십년간의 세상사는 홀로 읊는 이전 사람들은 점필재가 여강(驪江)에서 읊은,</br>십년간의 세상사는 홀로 읊는 시 속에 / 十年世事孤吟裏</br>팔월의 가을빛은 어지러운 숲 사이에 / 八月秋容亂樹間</br>라는 구절을 칭송해 왔다. 그러나 신륵사(神勒寺)에서 지은,</br>상방에서 종 울리니 여룡은 춤을 추고 / 上方鍾動驪龍舞</br>만 구멍에 바람 우니 철봉이 나래 치네 / 萬竅風生鐵鳳翔</br>라 한 구절의 홍량(洪亮)ㆍ엄중(嚴重)함만 같지 못하니 이는 참으로 우주를 버팀직한 시구이다. 그 보천탄즉사(寶泉灘卽事)에서는</br>복사꽃 띄운 물결이 몇 자나 높았는고 / 桃花浪高幾尺許</br>은석은 목까지 잠겨서 어딘지 모르겠네 / 銀石沒頂不知處</br>쌍쌍의 가마우지 여울돌을 잃고 / 兩兩鸕鶿失舊磯</br>물고기 물면 갈대숲으로 들어가네 / 銜魚却入菰蒲去</br>라 했는데 이는 가장 항고(伉高)하며, 《동경악부(東京樂府)》는 편편마다 모두 예스럽다.는 가장 항고(伉高)하며, 《동경악부(東京樂府)》는 편편마다 모두 예스럽다.)
  • E278  + (이증영(李增榮)이 합천 군수(陜川郡守)로 있으면서 가장 잘 다스렸다. 합천사람 사문 주이(周怡)가 그에게 송별시를 지어주기를, 만 사람의 입이 바로 비니 하필이면 돌을 쓸까 / 萬口是碑安用石 한 마디 말로 노자 쌈지 돈을 줄 것 무어랴 / 一言爲贐不須金 하였다. 옛 사람의 말에, “소인은 사람에게 돈을 준다.” 하였으니, 이 글과 뜻이 아울러 묘한 것이다.)
  • E269  + (이회재(李晦齋) 선생의 경산현(慶山縣) 동헌(東軒) 시에, 우는 뻐꾹새는 가지 위에 일곱이요 / 鳴鳩枝上七 나는 제비 비 속에 쌍쌍이라 / 飛燕雨中雙 하였는데, 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외에도 볼 만한 것이 매우 많다. 공은 시학(詩學)을 오로지 하지 않았으나 성정(性情)에서 자연히 우러나오는 것이 이러하였으니, 품성(稟性)이 고명하면 애쓰지 않아도 이런 시구를 얻을 수 있음을 알겠다.)
  • E389  + (이후백(李後白) 공이 영북(嶺北 함경도)의 안절사로 가서 그 전부터 내려오던이후백(李後白) 공이 영북(嶺北 함경도)의 안절사로 가서 그 전부터 내려오던 폐단을 모두 없애버렸다. 따라서, 군현의 부세 수입을 거의 삭제해 버렸기 때문에 웅부(雄富)한 고을이 드디어 쇠해지고 말았다. 그 뒤 수령들이 혹 허위로 조작하여 다른 세를 징수하니 백성들이 비로소 이것을 괴롭게 여겼다. 임제(林悌)가 시로써 이것을 풍자하고 슬피 여겨 말하기를,</br>혜초는 서릿바람에 지고 옥은 티끌에 버려졌는데 / 蕙折霜風玉委塵</br>한때 맑은 덕이 벼슬아치들을 고무시켰네 / 一時淸德動簪紳</br>가련하도다 맥도는 결국 이어가기가 어려워 / 可矜貊道終難繼</br>상국이 백성의 병을 고쳐 준 것이 바로 백성의 병이 되었도다 / 相國醫民是病民</br>하였다.의 병을 고쳐 준 것이 바로 백성의 병이 되었도다 / 相國醫民是病民 하였다.)
  • E602  + (익재의 장인은 곧 국재공(菊齋公 국재는 권보(權溥)의 호)인데 부부가 함께 익재의 장인은 곧 국재공(菊齋公 국재는 권보(權溥)의 호)인데 부부가 함께 94세까지 살았으나 부인이 공보다 먼저 죽었다. 익재공이 장인을 애도한 만시(挽詩) 한 연(聯)에</br>항아는 광한전에 님 오시길 기다리나 / 姮娥相待廣寒殿</br>거사는 다만 홀로 도솔천에 돌아가네 / 居士獨歸兜率天</br>라고 했다. 권공(權公)이 부처를 좋아했기에 낙천도솔(樂天兜率)에 비유한 것은 무방하겠으나, 항아가 약을 훔친 것은 자고로 시인들이 속세로부터 선계(仙界)로 올라간 것을 비유함이 상례였는데, 이를 장모에게 쓴 것은 온당치 못할 듯하다.라간 것을 비유함이 상례였는데, 이를 장모에게 쓴 것은 온당치 못할 듯하다.)
  • M048  + (인간의 일들은 고르지 못하여 / 人間細事亦參差 걸핏하면 마음과 틀린다 / 動인간의 일들은 고르지 못하여 / 人間細事亦參差</br>걸핏하면 마음과 틀린다 / 動輒違心莫適宜</br>젊을 땐 집이 가난하여 아내도 업신여기더니 / 盛歲家貧妻尙侮</br>늘그막엔 녹봉이 두둑하니 기생이 항시 따른다 / 殘年祿厚妓常隨</br>비 올 때 나가 노는 날이 많고 / 雨霪多是出遊日</br>갠 날은 모두 내가 한가히 앉아 있을 때라 / 天霽皆吾閑坐時</br>배 불러 숟가락 놓으니 아름다운 고기를 만나고 / 腹飽輟飡逢美肉</br>목구멍 아파 술 금하니 좋은 술을 만난다 / 喉瘡忌飮遇深巵</br>저장된 보배를 헐하게 팔고 나니 값이 오르고 / 儲珍賤售市高價</br>묵은 병이 막 낫고 나니 이웃에 의원이 있네 / 宿疾方痊隣有醫</br>세쇄한 일이 잘 아니됨도 이와 같은데 / 碎山不諧猶類此</br>양주에서 학 타는 일은 더구나 기대하겠나 / 揚州駕鶴況堪期/ 碎山不諧猶類此 양주에서 학 타는 일은 더구나 기대하겠나 / 揚州駕鶴況堪期)
  • E098  +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이 젊어서 재예(才藝)가 있었다. 만년에 양주(楊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이 젊어서 재예(才藝)가 있었다. 만년에 양주(楊州)의 누원(樓院)에 올라 짧은 시 3편을 남겼다. 그 첫 편에,</br>산이 있으면 어디나 여산이 아닐까 / 有山何處不爲廬</br>앉아 청산을 대하고 한번 탄식하노라 / 坐對靑山試一噓</br>벼슬살이 십 년에 늙은이 되었으니 / 簪笏十年成老大</br>노경에 〈귀거래사〉를 읊게 하지 말라 / 莫敎霜鬢賦歸歟</br>하였다. 영천군(永川君) 이정(李定)은 자가 안지(安之)인데, 이 시를 보고 절하고, 또 비평하기를 “이 시는 매우 핍진하니, 서(徐)의 시가 아니면 이(李)의 시일 것이다.” 하였다. 그 당시 서거정(徐居正)과 이승소(李承召)가 시명을 독차지하여 이정이 감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이정이 다시 누각 아래를 지나가다가 전날 썼던 비평을 다시 읽어 보니, 그 아래에 글이 쓰여 있기를 “이 시에는 강산의 아취(雅趣)가 있어 한 점의 티끌도 없으니, 이는 반드시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선비가 지은 것이 아니다. 또 천지가 크고 강산이 깊은데 어찌 인재가 없어서 반드시 서(徐)와 이(李)라고 추측하는가. 인재를 저버리고 사람을 멸시함이 어찌 이리도 심하단 말인가.” 하였다. 이정이 이 글을 보고 크게 뉘우쳐서 전날 비평했던 글을 지워 버렸다. 지금의 《진산세고》에는 3편이 모두 실려 있지 않으니, 경순(景醇)의 편집이 넓지 못함이 이와 같다.편이 모두 실려 있지 않으니, 경순(景醇)의 편집이 넓지 못함이 이와 같다.)
  • E191  + (일본 사신 붕중(弸中)이 우리 나라에 올 때 모재(暮齋) 김안국(金安國)이 선위사로 있었는데, 때마침 여름이라 붕중이 식탁에 얼음이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읊기를, 얼음이 한 점 녹아 도로 물이 되네 / 氷消一點還成水 하고, 모재에게 다음 구절을 청하니, 모재는 반나절을 끙끙거렸으나 결국 짓지 못하였다. 나무가 두 그루 짝지어 서니 곧 수풀이 되네 / 木立雙株便作林 라고 한 대구가 있는데, 누가 지은 것인지는 모른다.)
  • M091  + (일찍이 봄바람과 같이 춤자리를 휩쓸면서 개인 정원에서 즐겨 놀며 애를 태울 때 어찌 즐겨하랴! 가을이 되어 사양이 되었는데 매미까지 우는 것은.)
  • C011  + (일천 실인지, 일만 점인지 누가 세어보았는냐?)
  • E302  + (임 사문(林斯文 임형수(林亨秀)를 말함)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천하에임 사문(林斯文 임형수(林亨秀)를 말함)이 말하기를,</br>“내가 일찍이,</br>천하에 어찌 천리마가 없으리오 / 天下豈無千里馬</br>인간에 구방 고를 얻기 어렵도다 / 人間難得九方皐</br>하는 한 연구(聯句)를 얻었는데, 그뒤에 황산곡(黃山谷)의 시집을 보니 거기에,</br>세상에 어찌 천리마가 없겠는가 / 世上豈無千里馬</br>사람 가운데 구방 고를 얻기 어렵도다 / 人中難得九方皐</br>라는 글귀가 있었다. ‘세상’이라 한 것은 나의 ‘천하’보다 못하고, 그의 ‘사람 가운데[人中]’라 한 것은 나의 ‘인간(人間)’보다 낫다.”</br>하였다. 생각으로는 황산곡의 이 말은 고금에 뛰어났으며, 그후로 어찌 여기에 겨룰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고 우연히 합치되었다면 그는 천 년 뒤에 황산곡과 겨룬다 할 수 있다.지 않고 우연히 합치되었다면 그는 천 년 뒤에 황산곡과 겨룬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