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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605 + (원(元)이 얼승(孼僧)을 보내왔을 적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놀랐는데 우리 … 원(元)이 얼승(孼僧)을 보내왔을 적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놀랐는데 우리 태조(太祖)가 작은 군사로 그들을 덕흥(德興)에서 크게 격파하여 쫓아버렸다. 태조가 개선하자 공민왕은 그 공을 포상하여 문정공과 태조에게 명하여 함께 대정(大政)에 참여케 하였다. 교지(敎旨)를 선포하는 날 공민왕은 기뻐하며 좌우에게 이르기를</br>“문관으로는 이색(李穡)을 쓰고 무신으로는 이모(李某 이성계를 말함)를 쓰니 나의 사람 씀이 어떻소.”</br>하였다. 태조는 문정공과 사귐이 매우 두터웠기에 자기의 당호(堂號)를 지어 달라고 청하니, 문정은 송헌(松軒)이라 이름하고 설(說)을 지어 이를 권면하였으며, 또한 환조(桓祖)의 비문을 짓기도 했다. 후에 문정공이 외지(外地)에 유배되면서 아들 종학(種學)ㆍ종선(種善)도 모두 먼 곳에 귀양 가게 되자 문인 정총(鄭摠)ㆍ정도전(鄭道傳)이 문정을 여지없이 공격하였다. 그러자 공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br>송헌이 나라 맡자 나는 귀양 가게 되니 / 松軒當國我流離</br>꿈속엔들 이런 생각 어찌 한 번 해봤으리 / 夢裏何曾有此思</br>두 정(鄭)이 게다가 대의에 참여한다니 / 二鄭況聞參大議</br>한 집안이 모일 날 언제 다시 있으리 / 一家完聚更何時</br>라 하였다. 첫구[首句]는 비록 가긍하나 뜻은 심히 오만하다.一家完聚更何時 라 하였다. 첫구[首句]는 비록 가긍하나 뜻은 심히 오만하다.)
- E600 + (원외(員外) 김극기(金克己)는 시상(詩想)이 극히 교묘하다. 겨울날에 핀 이 … 원외(員外) 김극기(金克己)는 시상(詩想)이 극히 교묘하다. 겨울날에 핀 이화(李花)를 읊으면서 끝 구에</br>기이한 향내가 굴 속에 모여들어 / 無乃異香來聚窟</br>한궁에서 이 부인을 다시 보네 / 漢宮重見李夫人</br>라고 하였으니, 이는 옛 시인이 아직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의주(義州)에 있으면서 지은 시에는</br>문장이란 늘그막에 서로 즐길 만하니 / 文章向老可相娛</br>일검 짚고 변새(邊塞) 돌며 오거서(五車書)를 우러르네 / 一劍游邊尙五車</br>공무(公務)를 파하니 새리된 줄 내 몰라라 / 衙罷不知爲塞吏</br>종이 창문 밝은 곳에 누워 책을 보누나 / 紙窓明處臥看書</br>라 하였으니 그 세속 근심을 물리쳐 보내는 심사를 후련하게 떠올릴 수 있다.라 하였으니 그 세속 근심을 물리쳐 보내는 심사를 후련하게 떠올릴 수 있다.)
- E502 + (월사 이정귀가 회남루의 현판에 제한 시는 이러하다. "" 을사년(1605)에 대홍수로 일대가 침몰하였다. 시를 쓴 현판도 떠내려와 강화도에 이르렀는데 어부가 이를 얻어서 다시 벽에 붙여 두었다. 내가 이에 차운해 시를 지었다. "" 연성은 곧 회양의 옛 이름이다. 한때에 널리 전송되어 기이한 일로 여겨졌다.)
- C048 + (월암장로 산립은 시를 짓는데, 옛사람의 말을 많이 점화하였다.)
- M002 + (위대한 당 나라 큰 업을 열었으니<br> 높고 높은 제왕의 모책이 … 위대한 당 나라 큰 업을 열었으니<br></br>높고 높은 제왕의 모책이 창성하도다<br></br>무(武)는 한번 융의 입어 천하를 평정했고<br></br>문(文)을 닦아 백왕을 이었네<br></br>하늘을 대신하여 은택을 비처럼 뿌리고<br></br>만물을 다스림엔 땅의 도를 법받았네<br></br>인(仁)을 깊이 펴기를 일월과 같이하고<br></br>천운을 따라서 치세(治世)를 힘쓰네<br></br>번기(幡旗)는 뚜렷이 빛나는데<br></br>정고(鉦鼓)는 어찌 그리도 찬란한가<br></br>외방 오랑캐로서 명을 어긴 자는<br></br>하늘의 재앙을 받아 멸망하리라<br></br>화평한 풍기가 우주에 어리어<br></br>원근에서 다투어 상서를 바치네<br></br>사시는 옥촉(玉燭)처럼 고르고<br></br>칠요는 만방을 순행한다<br></br>산악의 정기가 재보(宰輔)를 탄생시키고<br></br>임금은 그 충량(忠良)을 쓰도다<br></br>오삼(五三)의 덕을 겸했으니<br></br>황가(皇家)인 당 나라가 밝도다<br>시는 옥촉(玉燭)처럼 고르고<br> 칠요는 만방을 순행한다<br> 산악의 정기가 재보(宰輔)를 탄생시키고<br> 임금은 그 충량(忠良)을 쓰도다<br> 오삼(五三)의 덕을 겸했으니<br> 황가(皇家)인 당 나라가 밝도다<br>)
- M056 + (위로 북두에 닿을 듯 삼각형 지붕, 허공에 높이 솟은 한 칸의 누대.)
- E217 + (유몽와(柳夢窩)의 《대동시림》에 있는 그의 선친 수재의 〈숙낙생역(宿樂生驛) … 유몽와(柳夢窩)의 《대동시림》에 있는 그의 선친 수재의 〈숙낙생역(宿樂生驛)〉 시에,</br>날이 저물어 온 산이 어두운데 / 日夕衆山暗</br>멀리 낙생에 와 머물도다 / 遠來投樂生</br>나귀는 남은 풀을 씹고 / 征驢吃殘草</br>늙은 종은 좋은 밥을 먹네 / 老僕飯香粳</br>베개를 찾아 등잔을 등지고 자며 / 索枕背燈睡</br>잔을 잡고 술을 따라 마시네 / 把杯斟酒傾</br>때때로 장로를 불러 / 時時呼長老</br>손꼽아 앞길을 묻노라 / 屈指問前程</br>하였는데, 나귀가 남은 풀을 씹는다는 것은 이미 여행길이 고달픈데, 어찌 늙은 종이 좋은 밥을 먹겠으며, 이미 등잔을 등지고 자는데, 또 무슨 잔을 잡는 일이 있겠는가. 그리고 파(把)ㆍ짐(斟)ㆍ경(傾) 자는 모두 비슷한 뜻이다. 더욱 우스운 것은 낙생역에서 단 하루만 묵었는데, ‘때때로 장로를 부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역(驛)의 하인들이 불도를 닦는 중과 비길 바가 아닌데, 그들을 가리켜 장로라 함은 또한 무슨 뜻인가. 굴지(屈指)라는 말은 본래 《한서(漢書)》 진탕전(陳湯傳)에, “손꼽아 그날을 세면서 말하기를, 며칠 가지 않아서 응당 길한 말이 들릴 것이다.” 하였는데, 지금 앞길을 물으면서 굴지라는 글자를 쓴 것은 역시 그것이 온당한 말인가 모르겠다.길을 물으면서 굴지라는 글자를 쓴 것은 역시 그것이 온당한 말인가 모르겠다.)
- E346 + (유생에 홍한인(洪漢仁)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는 시재가 있고 산수에 놀기를 좋아하였다. 일찍이 천마산(天磨山)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아침엔 백운봉 정상에 올라 놀다가 / 朝上白雲峯頂觀 석양엔 봉우리 아래 외딴 암자에 투숙하네 / 暮投峯下孤菴宿 밤 깊어 중은 말없고 손은 잠 못이루는데 / 夜深僧定客無眠 두견새 소리 속에 산달이 지네 / 杜宇一聲山月落 그는 뒤에 강산에 유람하러 가서 깊은 못을 탐내 구경하다가 실족하여 빠져 죽었다고 한다.)
- E309 + (유응부(兪應孚)의 시에 이런 것이 있다. 장군의 인의가 오랑캐를 진압하니 / 將軍仁義鎭夷蠻 국경 밖에 전생 사라져 사졸이 조네 / 塞外塵淸士卒眠 긴 낮 빈 뜰에 볼 것이 무엇인고 / 晝永空庭何所玩 날랜 매 삼백 마리 다락 앞에 앉았네 / 良鷹三百坐樓前 남추강(南秋江 효온(孝溫))은 그 말구를 들어, 족히 그 기상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전편이 세상에 많이 나타나서 않았기 때문에 기록한다.)
- E270 + (유촌(柳村)이 일찍이 나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난번에 서울에 들어와 신기재(申企齋)에게, ‘근래에 누구의 가작(佳作)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답하기를, ‘임공 형수(林公亨秀)가 탐라(耽羅)에 목사로 나가, 산은 왕자국에 서려 있고 / 山蟠王子國 물결은 노인성을 차도다 / 波蹴老人星 라는 글귀를 얻었는데, 이것이 가장 아름답다.’ 하였소.” 하였다. 내가 호음에게 질문하였더니, 곧 말하기를, “나는 그것이 좋은 줄 모르겠다.” 하였다.)
- E672 + (유희경(劉希慶)이란 자는 천례(賤隷)이다. 사람됨이 청수하고 신중하며 충심으 … 유희경(劉希慶)이란 자는 천례(賤隷)이다. 사람됨이 청수하고 신중하며 충심으로 주인을 섬기고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니 사대부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가 많았으며 시에 능해 매우 순숙(純熟)했다. 젊었을 때 갈천(葛川) 임훈(林薰)을 따라 광주(光州)에 있으면서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의 호)의 별장에 올라 그 누각에 전인(前人)이 써 놓은 성(星)자 운에 차하여</br>댓잎은 아침에 이슬 따르고 / 竹葉朝傾露</br>솔가지엔 새벽에 별이 걸렸네 / 松梢曉掛星</br>라 하니 양송천(梁松川 송천은 양응정(梁應鼎)의 호)이 이를 보고 극찬하였다. 하니 양송천(梁松川 송천은 양응정(梁應鼎)의 호)이 이를 보고 극찬하였다.)
- E664 + (윤 사문 면(尹斯文勉)이 사명을 받들고 호남으로 떠나 어느 산을 지나가는데 … 윤 사문 면(尹斯文勉)이 사명을 받들고 호남으로 떠나 어느 산을 지나가는데 산 속에 초가집이 있었다. 거기서 한 늙은이가 나무 아래에서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고 책상 위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펴 보니 늙은이가 다가와서 빼앗으며,</br>“되지 않은 작품이라 남의 눈에 보여 줄 수가 없소.”</br>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겨우 첫머리에 쓴 빗을 읊은 시만을 보았는데 다음과 같았다.</br>얼레빗 빗질하고 참빗으로 빗질하니 / 木梳梳了竹梳梳</br>빗질 천 번 쓸어 내려 이는 벌써 없어졌네 / 梳却千回蝨已除</br>어찌하면 만장 길이 큰 빗을 얻어다가 / 安得大梳長萬丈</br>백성들의 물것을 남기잖고 쓸어낼꼬 / 盡梳黔首蝨無餘</br>그 이름을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盡梳黔首蝨無餘 그 이름을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 E377 + (윤결 선생이 선군의 처소로 오셔서 종일 말씀하셨는데, 윤공이 오언절구 한 구 … 윤결 선생이 선군의 처소로 오셔서 종일 말씀하셨는데, 윤공이 오언절구 한 구절을 부르시고, “이 시가 어떻습니까?” 하자, 선군이 말하기를, “이것은 귀신의 시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윤공이 대단히 놀라면서, “그대는 어떻게 귀신의 시인줄 아시오. 내가 어젯밤 꿈에 어떤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놀았는데, 흰 모래가 십여 리나 깔렸고, 달빛은 낮과 같았습니다. 어디서 꾀꼬리 소리가 들려 왔는데, 이 골짜기를 물어보니, 바로 ‘석문동(石門洞)’이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흥이 나서 오언시 한 수를 지었는데,</br>우연히 석문동(石門洞)에 들어와 / 偶入石門洞</br>시를 읊조리면서 홀로 밤길을 걷고 있구나 / 吟詩孤夜行</br>달은 대낮같이 밝고 시냇가 모래는 희기도 한데 / 月午澗沙白</br>텅빈 산골짜기 어디에선가 꾀꼬리 울음소리 한 차례 들리어 온다 / 空山啼一鶯</br>라고 지었습니다.” 하였다.리 울음소리 한 차례 들리어 온다 / 空山啼一鶯 라고 지었습니다.” 하였다.)
- E380 + (윤결(尹結) 공이 젊었을 때 어느날 작은 마루에 나와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 … 윤결(尹結) 공이 젊었을 때 어느날 작은 마루에 나와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고운 옷을 입은 종 하나가 나타나, 명함을 내어 놓기에 문으로 가서 맞이하니, 한 관인(官人)이 따라 들어오는데, 의관과 용모가 매우 바르고 깨끗하였다. 장원이 말하기를, “ 반드시 잘못 찾아오신 겁니다. 어찌 우리 집에 올 관인이 있겠습니까. 그만두시고 다른 데 가서 찾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하자, 그 관인은 말하기를, “꼭 윤 진사님을 뵙고자 합니다.” 하였다. 장원은 바로 갓과 옷을 가져오라 명하고 손님을 들어오시도록 하니, 그 관인은 자리를 옮겨 꿇어 앉아 말하기를, “제가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 어른을 번거롭게 하니, 말이 나오지 아니하여 감히 여쭙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명하신 어른께서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였다. 장원이 말하기를, “공의 모습을 뵈옵건대 현달한 관원 같으신데,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이렇게 오시어 이름도 없는 저를 찾으셨습니까.” 하였다. 그 관인은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말하기를, “장옥견(張玉見) 선생이 남양부백(南陽府伯)이 되었는데, 거문고 잘 타는 사람이 차례가 되어 서울에 왔었는데, 제가 우연히 그와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되어 그것을 계기로 정이 함빡 들어 떨어지려 하여도 차마 떨어질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장공에게 관대하게 용납하기를 청해 보았지만 허락해 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이름난 어른들의 글을 가져다가 청을 넣어 보았지만 그래도 허락하지 못하겠다 하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만일 윤 진사의 시를 얻게 된다면, 내가 1년 동안 빌려 주겠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감히 두려움을 무릅쓰고 와서 청하는게 올시다.” 하고, 이어서 술과 돈과 홍화전(紅花牋 글 쓰는 종이)한 폭을 꺼내서 무릎을 꺼내서 무릎을 꿇고 바치면서, “원하옵건대 명공(明公)께서 한 번 글 지으시는 노고를 아끼지 마시고 베푸시어 이 목마르고 주린 사람의 소망을 풀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장원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왜 다른 시를 구해다가 내가 지은 양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아니합니까.” 하니, 그는 또 말하기를, “고명한 선생의 시명(詩名)이 당대에 제일인 까닭으로 장공께서 꼭 얻고자 하옵니다. 다른 분의 시야 어디 이를 나위가 있습니까.” 하였다. 장원이 마침내 율시(律詩) 한 수를 내리쓰니,</br>보압좋은 향로(옛날의 향로는 오리 모양이었다)에 향불 잦아지고 / 寶鴨香銷罷</br>난당(아름다운 방 또는 여자가 쓰는 그윽한 방)에는 연기 흩어지네 / 蘭堂烟散初</br>등잔불 식어가니 작은 병풍은 어슴푸레하고 / 燈寒小屛暗</br>달 떠오르니 반쯤 드린 발에 빛 새어 들어 오누나 / 月上半簾疎</br>혀를 내밀면 모두 시샘을 이루고 / 吐舌皆成妬</br>맹약을 삼으면 또 헛될까 두렵구나 / 申盟更怕虛</br>낭군(郞君)의 정이 나와 같을 양이면 / 郞君情似妾</br>어찌 백년 된 옥이라도 아낄 것인가 / 何惜百年磲</br>하였다. 다 써서 주니, 그 관인이 고맙다 인사하고 돌아갔다. 얼마 후에 그 관인이 와서 사례하여 말하기를, “장 사또께서 선생의 시를 얻고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거문고 타는 아가씨를 돌려보내라고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관인은 옥천군수(沃川郡守) 왕손명(王孫名)이었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관인은 옥천군수(沃川郡守) 왕손명(王孫名)이었다.)
- E378 + (윤결(尹結) 공이 젊었을 때 지은 명구 하나가 있다. 벼슬아치 백년에 좋은 솜씨가 없고 / 簪笏百年無好手 강호 천리에 기재(奇才)가 있구나 / 江湖千里有奇才 라고 했다. 내 선군(先君)께서 서화담(徐花潭) 선생에게 이 시를 읊어 주시자, 선생께서 말하기를, “이 시는 재주가 있는 듯하지만, 뜻이 원대하지 못하다.” 하였다.)
- E557 + (윤결이 오언절구 한 수를 얻었다. "" 차식에게 말했다. "이 시가 어떠한가?" 차식이 낭랑하게 재삼 읊조리고 말했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필경 귀신의 시이다." 윤결이 말했다. "내가 과연 어젯밤 꿈속에서 얻었으니, 필시 신의 도움이 있었다.")
- E079 + (윤무송(尹茂松)은 곧 신고령(申高靈)의 처형이니 한때 재상을 제수받은 일이 있다. 동년(同年) 모임에서 신고령이 한 구를 지었는데, 청안의 옛 친구들이 모두 백발이로다 / 靑眼故人俱白髮 하니, 윤무송이 급히 대구하기를, 검은 머리의 현상이 다만 단심이로다 / 黑頭賢相只丹心 하였다. 신고령이 탄복하여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나는 형만큼 정밀하지 못하다.” 하였다. 신고령이 고부(古阜) 기생 지단심(只丹心)을 사랑한 까닭에 이렇에 말한 것이다.)
- E337 + (윤장원(尹長源)은 아이 때에 그 아버지가 관등(觀燈)하는 날 저녁에 관장하다가 인하여 연구(聯句)를 지어보라고 하였더니, 장성과 화성이 번쩍번쩍이고 / 長星火星爛爛然 한 층 두 층 서네 층이러라 / 一層二層三四層 하므로, 그가 시재가 있는 것을 알고 학업을 독려하기를 더욱 급하게 하였었다.)
- E543 + (율곡 이이가 대사간으로 있다가 시골로 물러났다. 시에, ""라 하였다. 말의 어조에 화평한 뜻이 있다. 송강 정철이 직제학으로 있다가 남쪽으로 돌아갈 때 이이에게 시를 주었다. "" 대개 그 당시에 이이와 논의하는 바가 같지 않았으나 이처럼 말하였으니 바로 이것으로써 두 사람의 기상을 볼 수 있는 것이 이와 같았다.)
- E242 + (융경 무진년(1568)에 행인 구희직이 사제시래사으로 와서 오조천에 이르러 '회란석'시를 지었다. 원접사 판서 박순이 차운하여 말했다."" 대개 구희직이 초나라 사람이므로 '瀨'자와 '潭' 자를 사용한 것이다. 반산 왕안석의 시에 ""라고 하였으니, 박순의 시도 이에 근본한 것이다. 구희직이 보고 말했다. "시가 극히 맑고 절묘하다. '湘潭水已生' 구절이 실로 내 마음을 감동시킨다")
- E483 + (융경 연간(1568-1572)에, 어떤 사람이 제천정에 시를 썼다. "" 호사가들이 실로 신선의 시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후에 임진년(1592)에 왜적이 선릉과 정릉 두 왕릉을 파헤쳤는데, 사람들이 "청산의 한 줌 흙"이라는 말이 징험하였다고 여겼다.)
- E675 + (을미년(1595, 선조28)과 병신년(1596, 선조29) 사이에 명나라의 … 을미년(1595, 선조28)과 병신년(1596, 선조29) 사이에 명나라의 장군 제독(提督) 유정(劉綎)이 병사를 이끌고 호남과 영남 사이를 왕래하였는데, 막하에 한 서생을 데리고 다녔다. 가끔씩 시를 지었고, 사람들은 간혹 그의 가구(佳句)를 전하여 읊었으나, 그 얼굴은 본적도 없고 이름도 알지 못하였다. 그때 우리나라와 왜적은 서로 대치하여 승패를 결정하지 못했는데, 그 서생이 방휼(蚌鷸)의 비유를 써서 장률을 지어 이르기를,</br></br>늙은 조개 추위 피해 햇볕을 쬐는데 / 老蚌當陽爲怕寒</br>들새는 무슨 일로 애써 구하였는가 / 野禽何事苦相干</br>몸은 굴혈 떠나 진주 태는 손상되고 / 身離窟穴珠胎損</br>여울에서 힘 다해 푸른 깃은 쇠잔타 / 力盡沙灘翠羽殘</br>입 닫을 때에 열 때의 화를 어찌 알며 / 閉口豈知開口禍</br>머리 넣을 때에 빼기 어려움 누가 알았으랴 / 入頭誰料出頭難</br>어부 손에 함께 떨어질 줄 일찍 알았던들 / 早知俱落漁人手</br>구름과 물속 맘껏 날고 잠겨있을 텐데 / 雲水飛潛各自安</br></br>하였다. 서생은 대개 당시의 어지러운 사세(事勢)를 보고 어부지리(漁父之利)의 설을 그릇되게 거론한 것이다. 마침내 국가가 다시 회복되어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상국(上國 명나라)이 한결같이 우리나라를 구휼하고 선조(宣祖)께서 발리(跋履 여러 곳을 다니며 애씀)하시며 난을 극복한 노력이 아님이 없으니, 서생이 어찌 말을 할 줄 아는 자이겠는가.을 극복한 노력이 아님이 없으니, 서생이 어찌 말을 할 줄 아는 자이겠는가.)
- E388 + (을유년에 사암(思菴) 박순(朴淳)은 영의정이 되고, 소재(蘇齋) 노수신(盧守 … 을유년에 사암(思菴) 박순(朴淳)은 영의정이 되고,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과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은 좌의정과 우의정이 되고, 송강(松江) 정철(鄭澈)과 청천(聽天) 심수경(沈守慶)은 좌찬성과 좌참찬이 되었는데, 다섯 공은 모두 장원 급제를 한 분들이었다. 그때에 다섯 분이 장원 계(契) 축(軸)을 만들었는데, 이름을 ‘정부용두회축(政府龍頭會軸)’이라 했다. 심 상국(沈上國)이 시 짓기를,</br>깊고 넓은 상부(相府)의 용두회는 / 潭潭相府會龍頭</br>성하여 오늘날 비할 만한 짝이 없구나 / 盛事如今罕比侔</br>-제 3구는 기억하지 못한다. -</br>도리어 보통 물건이 명류에 섞인 것을 부끄러워하노라 / 却慙庸品厠名流</br>하였다. 정송강은 이에 화답하여,</br>다섯 학사가 다섯 장원이 되고 보니 / 五學士爲五狀頭</br>성명(聲名)이 내게 이르러 서로 짝이 못 되노라 / 聲名到我不相侔</br>다만 좋은 일에 분별이 없어서 / 祗應好事無分別</br>모두 당시에 제일류라 하는구나 / 等謂當時第一流</br>하였다. / 祗應好事無分別 모두 당시에 제일류라 하는구나 / 等謂當時第一流 하였다.)
- E396 + (의주(義州) 통군정(統軍亭)은 세 나라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경치가 장관이니 … 의주(義州) 통군정(統軍亭)은 세 나라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경치가 장관이니 온 세상에서 다 찾아보아도 그 짝을 구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시인들이 이곳을 주제로 읊은 시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그 형세와 기상을 제대로 표현한 경우는 있지 않았다. 그런데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연소한 나이에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절구 한 수를 짓기를,</br>내가 강을 건너가서는 / 我欲過江去</br>곧바로 송골산에 오르고 싶네 / 直登松鶻山</br>서쪽에서 화표주(華表柱)의 학 불러 내다가 / 西招華表鶴</br>구름 속에서 서로 한 번 놀아보려네 / 相與戲雲間</br>이라 하였는데, 이 시가 대작(大作)은 아니라 하더라도 스스로 기발하여 뒤에 전할 만하다 하겠다. 그 뒤에 시인 묵객들이 와서 읊은 것 가운데 이런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는 시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와서 읊은 것 가운데 이런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는 시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 C052 + (이 구절들은 모두 좋은 것이다. 다만 전편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 E595 + (이 대간이 승정원(承政院)에서 숙직하며 지은 시에 공작 병풍 깊은 곳에 촛불 … 이 대간이 승정원(承政院)에서 숙직하며 지은 시에</br>공작 병풍 깊은 곳에 촛불 그림자 희미한데 / 孔雀屛深燭影微</br>원앙새는 쌍쌍 자니 어찌 각각 날아가리 / 鴛鴦雙宿豈分飛</br>애닯구나 초췌한 청루 속의 여인이여 / 自憐憔悴靑樓女</br>길이 남을 위하여 시집갈 옷 짓다니 / 長爲他人作嫁衣</br>라 했으니, 대개 대간이 오래도록 하관(下官)으로 있어 상기 등용되지 못했는데 동료들은 모두 재상 길에 올랐으므로 재상의 사령장(辭令狀)을 초(草) 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이 시를 지은 것이었다. 사령장(辭令狀)을 초(草) 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이 시를 지은 것이었다.)
- E596 + (이 문순(李文順 이규보(李奎報)의 시호)의 시는 부려하고 방일하다. 그 칠석 … 이 문순(李文順 이규보(李奎報)의 시호)의 시는 부려하고 방일하다. 그 칠석우(七夕雨)란 시는 참으로 절창이다. 그 시에</br>얇은 적삼 삽자리로 바람 난간에 누웠다가 / 輕衫小簞臥風欞</br>꾀꼬리 울음 소리 두세 번에 꿈을 깼네 / 夢覺啼鸎三兩聲</br>짙은 잎에 가린 꽃은 봄 뒤까지 남아 있고 / 密葉翳花春後在</br>엷은 구름 헤친 햇살 빗속에 밝도다 / 薄雲漏日雨中明</br>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읽기만 해도 시원해진다. 또,</br>관인이 한가로이 젓대를 골라 부니 / 官人閑捻笛橫吹</br>부들자리 바람 타고 날아갈 듯하구나 / 蒲席凌風去似飛</br>천상에 걸린 달은 천하가 함께 누릴 텐데 / 天上月輪天下共</br>내 배에 혼자 싣고 돌아오나 여기네 / 自疑私載一船歸</br>라고 한 시 또한 지극히 고일(高逸)하다.돌아오나 여기네 / 自疑私載一船歸 라고 한 시 또한 지극히 고일(高逸)하다.)
- E603 + (이 문정(李文靖 문정은 이색(李穡)의 시호)의 ‘어제 영명사에 들르다[昨過永 … 이 문정(李文靖 문정은 이색(李穡)의 시호)의 ‘어제 영명사에 들르다[昨過永明寺]’라는 작품은 별로 수식하거나 탐색한 흔적 없이 저절로 음률에 맞아서 읊으면 신일(神逸)하다. 허영양(許穎陽)은 이를 보고 ‘당신네 나라에도 이와 같은 작품이 있소.’라고 했다. 그의 부벽루(浮碧樓) 시는 대편(大篇)인데 거기에</br>문 머리엔 고려 시가 상기도 걸렸으니 / 門端尙懸高麗詩</br>당시에도 하마 중화 문자 깨쳤다네 / 當時已解中華字</br>라고 했으니, 비록 우리나라 사람을 깔보기는 했으나 또한 문정공의 시에는 감복하고 있었던 것이다.리나라 사람을 깔보기는 했으나 또한 문정공의 시에는 감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 C039 + (이 시가 가장 전려한 것으로 뽑혔다.)
- C043 + (이 시가 오래도록 읊어졌다고 해서 어찌 더 남은 맛이 없겠는가.)
- C040 + (이 시는 왕기공의 시와 나란히 앞을 다툴 만하다.)
- C044 + (이 시는 정습명의 시에 비해 그다지 못할 것이 없다.)
- C056 + (이 시는 정치가 유렿다.)
- C042 + (이 시들은 말은 같지 않으나, 거기에 쓰인 뜻은 서로 같다.)
- C045 + (이 시들은 사람들이 즐겨 일컫는 것이다.)
- C049 + (이 시를 보면 양비경이 늙은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C036 + (이 시를 통해 당시의 일이 어찌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늙은이의 마음은 크고 구애됨이 없어 범상하지 않다.)
- C035 + (이 시인은 이 같은 시를 즐겨 썼다.)
- E254 + (이 정승(李政丞) 용재(容齋 행(荇)의 호) 선생의 ‘제갈 무후를 읊다[詠諸 … 이 정승(李政丞) 용재(容齋 행(荇)의 호) 선생의 ‘제갈 무후를 읊다[詠諸葛武侯]’라는 시에,</br>사생을 나라에 허하여 힘을 다했는데 / 死生許國無遺力</br>성패로 사람을 논하는 것은 어린애지 / 成敗論人是小兒</br>하였다. 의논이 공정하고 글도 또한 새롭다. 중국 사신[天使] 당고(唐皐)의 시에 차운(次韻)하기를,</br>아득한 삼산은 솥을 엎은 것으로 보이고 / 縹緲三山看覆鼎</br>굽이친 한 띠의 물은 투금강에 닿았어라 / 逶迤一帶接投金</br>하였다. 복정은 삼각산(三角山)의 별명이요, 양화(楊花) 나루를 투금강이라 하기도 한다. 대구가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이 일련(一聯)은 소퇴휴(蘇退休) 상공(相公)이 지은 것이다. 소퇴휴가 말하였다. 《황화집(皇華集)》을 얻어 본 것이 기억나는데, 대(帶) 자는 수(水) 자였다. 대(帶) 자는 아마 전하는 사람들이 잘못 전한 것일 게다. 용재(容齋)의 이름은 이행(李荇)이요, 퇴휴의 이름은 소세양(蘇世讓)이다. 용재(容齋)의 이름은 이행(李荇)이요, 퇴휴의 이름은 소세양(蘇世讓)이다.)
- E599 + (이견간(李堅幹)의 시에 여관에는 호롱불 하나 남은 심지 돋우노니 / 旅館挑殘 … 이견간(李堅幹)의 시에</br>여관에는 호롱불 하나 남은 심지 돋우노니 / 旅館挑殘一盞燈</br>사신(使臣)의 풍미가 중보다 담박하네 / 使華風味淡於僧</br>창 너머 두견 소리 밤새도록 듣노니 / 隔窓杜宇終宵聽</br>산꽃의 몇째 층에 울음소리 나는고 / 啼在山花第幾層</br>라 했는데, 이 시를 두고 당시에는 절창이라고 일렀다. 나는 관동(關東) 지방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그 이른바 두견이란 곧 소쩍새의 무리였다. 절강(浙江) 사람 왕자작(王子爵), 사천(泗川) 사람 상방기(商邦奇)가 함께 강릉(江陵)에 왔으므로 그들에게 내가 물었더니, 모두 말하기를, 이는 두견이 아니라고 하였다. 대개 시인들은 흥을 붙여 말하는지라, 비록 그 물건이 아니더라도 시 가운데 그 말을 쓴 것이다. 이를테면</br>수풀 너머 흰 잔나비 울음 부질없이 듣노라 / 隔林空聽白猿啼</br>와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는 본시 잔나비가 없고,</br>집집마다 긴 대 숲에 비취새 울음 우네 / 脩竹家家翡翠啼</br>와 같은 경우는, 파랑새를 보고 염주취(炎洲翠)라 한 것이고,</br>자고새는 놀라서 해당화를 흔드네 / 鷓鴣驚簸海棠花</br>와 같은 경우는, 때까치가 깍깍 우는 것을 보고 행부득(行不得)이라 한 것이니, 모두 이와 같은 유이다.깍 우는 것을 보고 행부득(行不得)이라 한 것이니, 모두 이와 같은 유이다.)
- M029 + (이곳과 중화 사이 큰 바다 막혔는데 / 此去中華隔大瀛 두 공은 거울처럼 맑은 … 이곳과 중화 사이 큰 바다 막혔는데 / 此去中華隔大瀛</br>두 공은 거울처럼 맑은 마음 통했네 / 兩公相照鏡心淸</br>공공상인이 벌집만한 집을 막 지으니 / 空師方結蜂窠室</br>조파 선로(禪老)가 토각이란 이름 멀리서 전했네 / 播老遙傳兎角名</br>지팡이는 예스러워 반죽의 흔적 남았고 / 杖古尙餘斑竹暈</br>바리때는 신령스러워 벽련의 줄기가 빼어났네 / 鉢靈應秀碧蓮莖</br>하루에 이처럼 친절하게 사귀어서 / 誰敎一日親交錫</br>금모(金毛)가 땅을 진동하는 소리를 함께 짓게 하였는가 / 共作金毛震地聲錫 금모(金毛)가 땅을 진동하는 소리를 함께 짓게 하였는가 / 共作金毛震地聲)
- E425 + (이공 수광(李公睟光)의 자는 윤경(潤卿)이요 호는 지봉(芝峯)인데 단아한 풍 … 이공 수광(李公睟光)의 자는 윤경(潤卿)이요 호는 지봉(芝峯)인데 단아한 풍도가 진세(塵世)를 벗어나 세상의 변고를 차례로 다 맛보았으면서도 조금이라도 좌절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이와 함께 기미를 보고 일어나 함정에 떨어지는 화를 면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금옥군자(金玉君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밖으로 나가 순천부(順川府)를 맡고 있을 때 시권(詩卷)을 부쳐 보냈는데 그 가운데 칠언 근체시 2수가 들어 있었다. 그 시를 보건대,</br></br>늘그막에 남쪽 시골 수령으로 내려와서 / 暮年身世宰炎鄕</br>다스릴 능력 없어 탄식만 하고 앉아 있네 / 治郡無能坐嘯長</br>한가한 집 뜨락엔 봄 제비도 오지 않고 / 春燕不來閑院落</br>조그마한 연못가엔 맑은 물결 찰랑이네 / 晴波欲滿小池塘</br>붉은 매화 그림자 아래 문서 처리할 일도 없고 / 紅梅影下文書靜</br>귤나무 그늘 가에 자리가 향기롭네 / 綠橘陰邊几席香</br>퇴근하고 문 닫히자 인적도 끊어지고 / 衙罷閉門人跡少</br>창 너머 새 소리에 또 기우는 저녁 햇살 / 隔窓啼鳥又斜陽</br></br>이라 하였고, 또</br></br>난간 밖 연못의 빛 푸른 이끼 물들이고 / 檻外池光梁綠苔</br>주렴(珠簾)에 비낀 가랑비 노란 매실 익히누나 / 一簾微雨欲黃梅</br>출근해도 문 닫힌 채 적막하기 그지없고 / 衙居寂寞門長掩</br>퇴근해도 어제처럼 인 꺼낼 일 하나 없네 / 公退尋常印不開</br>밀감 향내 맡으면서 산 사슴 잠이 들고 / 盧橘香邊山鹿睡</br>석류 꽃 그늘 아래 새들 모여 앉아 있네 / 石榴花下怪禽來</br>창문 밖엔 하루 종일 찾아오는 인적 없어 / 軒窓盡日淸如水</br>오늘도 시상(詩想)에 젖다 낮잠에 빠져드네 / 輸與騷翁晝夢回</br></br>라고 하였는데, 격운(格韻)이 청려(淸麗)하여 스스로 미칠 수가 없다.回 라고 하였는데, 격운(格韻)이 청려(淸麗)하여 스스로 미칠 수가 없다.)
- E084 + (이광성(李廣城)은 문장(文章)과 다스림의 재주가 모두 넉넉해서 항상 스스로 … 이광성(李廣城)은 문장(文章)과 다스림의 재주가 모두 넉넉해서 항상 스스로 국사(國士)라 하고, 인물을 평할 때는 좋게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특별히 백씨(伯氏)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이광성이 도승지이고 백씨가 우승지였는데, 이광성이 어느 기생을 사랑하여 자취를 감추자 백씨가 간 곳을 알아내고 시를 지어 말하기를,</br>관아가 파하여 돌아옴에 날이 저물려 하는데 / 衙罷歸來日欲低</br>명화와 국사가 둘이 서로 만났구나 / 名花國士兩相擕</br>뉘 집 골목 속에 수레를 숨겼는가 / 誰家巷裏藏車駕</br>사온서의 동쪽이요, 예부의 서쪽일세 / 司醞東邊禮部西</br>하고는, 몰래 시를 그 벽에 붙여두었는데, 이광성이 보고 찢어서 소매 속에 넣어버렸다. 이로부터 더욱 뜻이 서로 맞았다. 이광성이 체질될 적에 세조(世祖)가, “군(君)에 대신할 자가 누구냐?”고 물으니, 이광성이 아뢰기를, “성(成) 아무개보다 나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여, 백씨가 도승지에 등급을 뛰어넘어 제배(除拜)되었다.람이 없습니다.” 하여, 백씨가 도승지에 등급을 뛰어넘어 제배(除拜)되었다.)
- E431 + (이규보의 '정자 안의 달을 읊다' 시는 아래와 같다. "" 간이 최립이 이 시에 차운하였다. "" 두 시에 하늘과 땅보다 더한 차이가 있다.)
- C018 + (이는 초사(楚辭)의「저녁에는 떨어진 가을의 국화 꽃을 먹는다[夕餐秋菊之落英]」라는 말을 알지 못함이니, 구양수의 배우지 못한 과실이다.)
- E547 + (이달은 홍주 사람으로, 부정 이수함이 데리고 살던 고을 기생의 소생이다. 그 시가 회자되는데, '전가'시에, ""라 하였고, '한식'시에 ""라 하였으니 당에 가까워 즐길 만하다.)
- E529 + (이달의 격암 남사고에 대한 만시에 ""라 하였다. 격암은 남사고의 호이다. 남사고는 일찍이 이인을 따라 진결을 받아서 마침내 비술에 통달하였다 한다. "약목진"이라 한 것은 아마 "절목진(折木津)"을 잘못 쓴 말로 보인다.)
- E493 + (이달의 시에, ""라 하였고, 최경창의 시에, ""라 하였다. 이 두 시는 모두 아름다우나, 최경창의 시 말구는 방운(旁韻)을 사용하였으니 운자를 쓴 것이 아쉽다.)
- E609 + (이도은(李陶隱 도은은 이숭인(李崇仁)의 호)의 오호도시(嗚呼島詩)를 목은(牧 … 이도은(李陶隱 도은은 이숭인(李崇仁)의 호)의 오호도시(嗚呼島詩)를 목은(牧隱)은 추장하여 성당(盛唐)에 비길 만하다고 하였는데 이로 인해 삼봉(三峯)과 서로 사이가 좋지 않게 되고 기구한 화마저 당하게 되었다. 지난날 주 태사(朱太史)가 이 작품을 보고 또한 매우 감탄하였다. 그</br>산북과 산남으로 세로는 갈라지고 / 山北山南細路分</br>송화는 비 머금어 어지러이 떨어지네 / 松花含雨落紛紛</br>도인이 물을 길어 초가로 돌아오니 / 道人汲井歸茅舍</br>한 가닥 푸른 연기 흰 구름을 물들이네 / 一帶靑煙染白雲</br>라고 한 시는 유수주(劉隨州 당 나라 유장경(劉長卿))에게 무엇이 모자란다 하겠는가?시는 유수주(劉隨州 당 나라 유장경(劉長卿))에게 무엇이 모자란다 하겠는가?)
- E452 + (이락정 신용개가 '강의 정자'에 제하여 지은 연구에 ""라 하였다. 홍유손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는 성당의 운이다." 그가 중하게 취급됨이 이와 같았는데 시문이 후세에 그다지 전하지 않으니 어찌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