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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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Inf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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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ins | C1259, C1260, C1261, C1262, C1263, M1324 |
Mentions Person | 성운, 이달, 임제, 두목 |
Mentions Place | 호서, 낙 |
Is Part Of | Cheho’s Remarks on Poetry, Autumn |
Original Tex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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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正郞白湖。悌。爲詩學樊川。名重於世。蓀谷嘗論人詩品。及於白湖。目之能手。聞者皆以爲善喩。白湖年少時。自湖西向洛。政當窮冬。風雪滿天。道上成一律曰。大風大雪高唐路。一劍一琴千里人。鳥啼喬木暮煙冷。犬吠孤村民戶貧。僮寒馬病若無賴。嘯志歌懷如有神。悠悠忽起故園思。錦水梅花南國春。高唐。所過地名也。成大谷先生見此詩。願見其面。白湖遂造拜。甚驩。癸未甲申年間。成先生牛溪爲銓曹亞判。憐其抱才沈滯。欲遂吹噓。邀而與之語。問其姓氏所由來。仍曰。必累世奕閥矣。對曰。數三代忝得科名。人以爲貴姓。而實則起於寒微。世葉未久矣。牛溪大加奬歎。謂其有拔俗氣像。將置淸班。遂與於弘文錄。未幾病逝。其所爲詩絶無窮態。竟不振。何哉。 |
Korean Transl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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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랑(正郞) 백호 임제는 시를 지음에 번천(樊川)을 배웠는데, 명성이 세상에 높았다. 손곡(蓀谷)이 일찍이 사람들의 시품(詩品)을 논하다 백호에 이르자 그를 ‘능수(能手)’라고 지목했고 듣는 사람들은 모두 잘된 비유라고 하였다.
백호가 젊었을 적 호서(湖西)에서 서울로 향할 때, 바로 한겨울〔窮冬〕을 당해 눈보라가 몰아쳤다. 길에서 한편의 율시를 지어 이르기를, 고당으로 가는 길 눈보라 세찬데 / 大風大雪高唐路 검과 거문고 하나로 천릿길 가네 / 一劍一琴千里人 새 우는 교목에 저녁연기 차갑고 / 鳥啼喬木暮煙冷 개 짖는 쓸쓸한 마을 민가는 가난하네 / 犬吠孤村民戶貧 동자 춥고 말 병들어 의뢰할 길 없지만 / 僮寒馬病若無賴 휘파람 불고 노래하니 신들린 듯하네 / 嘯志歌懷如有神 문득 아득한 고향 생각 일어나는데 / 悠悠忽起故園思 금수에 매화 피니 남국은 봄이겠지 / 錦水梅花南國春 하였다. 고당(高唐)은 지난 곳의 지명이다. 대곡(大谷) 성운(成運) 선생이 이 시를 보고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 백호가 드디어 가서 인사드리니 매우 기뻐하였다. 계미년(1583, 선조16)과 갑신년(1584, 선조17) 사이에 우계(牛溪) 성혼(成渾) 선생이 전조(銓曹 이조)의 아판(亞判 참판)이었는데, 백호가 재주를 갖고도 침체되어 있는 것을 가련히 여겼다. 추천〔吹噓〕을 하고자 하여 그를 맞아들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씨(姓氏)의 유래를 물으며, “필시 여러 대에 혁혁(奕奕)했던 문벌이었을 것이오.” 라고 말하였다. 백호가 대답하기를, “몇 대 동안 외람되이 과명(科名)을 얻어 사람들이 귀성(貴姓)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한미(寒微)한 데서 일어나 세대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우계는 크게 찬탄하며, 그에게 세속을 초월한 기상이 있다고 여기고는, 장차 청반(淸班)에 두고자 하여 《홍문록(弘文錄)》에 이름을 끼워 넣었는데 얼마 있지 않아 병으로 죽었다. 그가 지은 시에서는 전혀 곤궁한 모습이 없는데 끝내 떨치지 못했으니 무슨 까닭인가. |
English Transl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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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Chief (chŏngnang) Im Che (sobriquet Paekho [White Lake]) imitated Du Mu’s poetry and earned a great fame during his life. Once in his discussion of people’s poetic characters, Yi Tal described Im as an expert (nŭngsu), and those who heard it thought it was an apt evaluation. When Im was young, he once traveled from Ch’ungch’ŏng province to Naju in Chŏlla province in the depth of the winter. Seeing a blizzard covering the sky, he composed the following regulated verse, 大風大雪高唐路一劍一琴千里人鳥啼喬木暮煙冷犬吠孤村民戶貧僮寒馬病若無賴嘯志歌懷如有神悠悠忽起故園思錦水梅花南國春 Heavy winds and heavy snows on the road to Kodang.A sword and a zither, a traveler of a thousand li.A bird cries atop a tall tree. Evening smoke is cold.A dog barks from a lonely village. People’s homes are destitute.With a freezing attendant boy and an ailing horse, I have no one to rely on. But a whistling resolve and a singing heart lift up my spirit. Suddenly, from a distance, rises a longing for the old garden.Plum blossoms along the Brocade River. The southern land must be in spring. He was passing a place called Kodang. Sŏng Un read the poem and wished to meet with Im. When Im paid him a visit, Sŏng was overjoyed. Between the kyemi and kapsin years (1583–1584), Sŏng Hon served as Second Minister of Personnel (Ijo ch’amp’an). Pitying Im for living in seclusion despite his talent, Sŏng wished to promote him. Sŏng invited Im for a conversation and commented that Im had an extraordinary disposition. Sŏng appointed Im as a Pure Official (ch’ŏngban), but before long died from an illness. His poems certainly do not reflect a destitute personal aura (kisang), yet in the end he could not make himself known. Why is th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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