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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008 + (복양(濮陽) 오세재 덕전(吳世才德全)은 시를 힘차고 준수하게 지었다. 그 시 … 복양(濮陽) 오세재 덕전(吳世才德全)은 시를 힘차고 준수하게 지었다. 그 시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이 퍽 많지만, 강운(强韻)을 달아서 지은 것은 못 봤다.</br>그가 북산(北山)에 올라 극암(戟巖)을 시제(詩題)로 해서 시를 지으려고 할 때 사람을 시켜서 운자를 내게 하자, 그 사람은 일부러 험한 운자를 냈는데, 오 선생은 다음과 같이 썼다.</br></br>북령의 돌이 우뚝한 것을 / 北嶺石巉巉</br>사람들이 극암이라 부르네 / 邦人號戟巖</br>학을 탄 왕자 진(王子晉)을 칠 듯이 솟았고 / 逈摏乘鶴晉</br>하늘에 오르는 무함(巫咸)을 찌를 듯이 높다 / 高刺上天咸</br>휘어진 자루는 번갯불처럼 번쩍이고 / 揉柄電爲火</br>씻은 칼날은 서릿발처럼 희다 / 洗鋒霜是監</br>하필 병기를 만들어서 / 何當作兵器</br>초 나라를 망치고 범 나라를 존재시킬 것인가 / 亡楚却存凡</br></br>그 뒤에 몽고(蒙古) 사신이 왔는데 그는 시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이 시를 보고 재삼 찬탄하며,</br><u>“이 사람이 살아 있는가? 지금 무슨 벼슬을 하고 있는가? 혹시 만나 볼 수 있겠는가?”</br>하고 물었는데,</u> 우리나라 사람은 멍하니 대답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br>“지금 제고학사(制誥學士)의 직위에 있다고 왜 말하지 않았는가?”</br>하였다. 그가 권변(權變)에 어두움이 이와 같았으니 한탄스럽다.에 있다고 왜 말하지 않았는가?” 하였다. 그가 권변(權變)에 어두움이 이와 같았으니 한탄스럽다.)
- M1156 + (비 갠 긴 뚝에 풀빛은 더욱 짙고<br>님 보내는 남포에 구슬픈 노래<br>대동강 물 언제나 다할 날이 있으리<br>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하네)
- M050 + (비 갠 뒤 긴 둑에 풀빛 푸른데,<br>임 보내는 남포 나루에서 슬픈 노래 부른다.<br>대동강물 어느때나 마를꼬?<br>해마다 이별의 눈물 푸른 파도에 더해만 가니.)
- M813 + (비 갠 뒤의 긴 둑길 풀빛 더욱 푸르른데<br>그대 보내는 남포에 구슬픈 노래 울리누나<br>어느 때나 대동강 물 마를 날이 있을까<br>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하네)
- M1314 + (비 그친 긴 둑에 풀빛이 푸른데 <br>임 보내는 남포엔 슬픈 노랫소리 <br>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 마르겠나 <br>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네)
- E032 + (사간 정지상은 이런 시를 지었다. 비 갠 뒤 긴 둑에 풀빛 푸른데, 임 보내 … 사간 정지상은 이런 시를 지었다.</br>비 갠 뒤 긴 둑에 풀빛 푸른데,</br>임 보내는 남포 나루에서 슬픈 노래 부른다.</br>대동강물 어느때나 마를꼬?</br>해마다 이별의 눈물 푸른 파도에 더해만 가니.</br>연남 사람 양재가 일찍이 이 시를 베끼기를, “별루년년창록파”라고 하였다. </br>내 생각에 작과 창 두 자는 모두 그 뜻이 원만하지 않다. </br>마땅히 이것은 “첨록파”라고 해야 할 것이다. </br>정지상은 또 이런 시를 지었다.</br>땅이 푸른 하늘과 닿은 곳 멀지 않은데,</br>사람과 흰 구름이 한가롭게 마주 대하네.</br>뜬구름 흐르는 물 같은 나그네 절에 이르니,</br>빨간 잎 푸른 이끼낀 절의 중은 문을 닫는다.</br>푸른 버들 아래 문닫은 집 여덟 아홉 채,</br>밝은 달 가운데 발을 걷은 서너 사람.</br>위로 북두에 닿을 듯 삼각형 지붕,</br>허공에 높이 솟은 한 칸의 누대.</br>돌 위의 늙은 소나무에 한조각 달이 걸렸고,</br>하늘 끝 낮은 구름 밑에 천점 산이 있네.</br>이 시인은 이 같은 시를 즐겨 썼다. 끝 낮은 구름 밑에 천점 산이 있네. 이 시인은 이 같은 시를 즐겨 썼다.)
- E395 + (우리 나라 서경(西京 평양)은 풍광과 누각의 경치가 빼어난데다 미녀들과 풍류 … 우리 나라 서경(西京 평양)은 풍광과 누각의 경치가 빼어난데다 미녀들과 풍류를 즐길 수가 있어 끊임없이 중국에 가는 사신들이 이곳에 도착하게 되면 갈 길을 잊은 채 오래도록 여기에 머물며 즐기기 일쑤였고 거의 정신을 잃고서 완전히 빠져버리는 경우마저 있곤 하였다. 고려조(高麗朝)의 학사(學士) 정지상(鄭知常)의 시에</br>비 갠 뒤의 긴 둑길 풀빛 더욱 푸르른데 / 雨歇長堤草色多</br>그대 보내는 남포에 구슬픈 노래 울리누나 / 送君南浦動悲歌</br>어느 때나 대동강 물 마를 날이 있을까 / 大同江水何時盡</br>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하네 / 別淚年年添綠波</br>라고 하였는데, 온 세상이 다투어 전하면서 지금에 이르도록 절창(絶唱)으로 떠받들고 있다. 만력(萬曆 명 신종(明神宗)의 연호) 경진년(1580, 선조13) 년간에 가운(嘉運) 최경창(崔慶昌)이 대동 찰방(大同察訪)이 되고 군수(君受) 서익(徐益)이 평양서윤(平壤庶尹)이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가 시인이었다. 이에 그 운(韻)을 따서 채련곡(採蓮曲)을 지었는데, 최(崔)의 시에,</br>길고 긴 강 언덕에 수양버들 늘어지고 / 水岸悠悠楊柳多</br>조각배 저 멀리 들려오는 연 따는 노래소리 / 小船遙唱採菱歌</br>붉은 꽃잎 모두 지고 가을바람 살랑살랑 / 紅衣落盡西風起</br>해 저물녘 텅 빈 강에 일어나는 저녁 물결 / 日暮空江生夕波</br>이라 하였고, 서(徐)의 시에서는,</br>많이들 연밥 따는 남쪽 호수 아낙네들 / 南湖士女採蓮多</br>새벽부터 단장하고 서로 노래 부르누나 / 曉日靚粧相應歌</br>치마 가득 찰 때까지 배도 꼼짝하지 않고 / 不到盈裳不回棹</br>가끔가다 부서지는 먼 물가의 하얀 물결 / 有時遙渚阻風波</br>라 하였다. 그 뒤에 이순(而順) 고경명(高敬命)과 익지(益之) 이달(李達)이 뒤미처 화운(和韻)하였는데, 고(高)의 시에,</br>뱃전에 부딪치는 맑은 물결 복숭아꽃 / 桃花晴浪席邊多</br>연꽃 속에 일렁이며 뱃노래 울려 퍼지누나 / 搖蕩蓮舟送棹歌</br>취해 기댄 미인 생각 아마 잊지 못할텐데 / 醉倚紅粧應不忘</br>산들바람 펄럭펄럭 휘장에 물결 이네 / 小風輕颺幙生波</br>라 하였고, 이(李)의 시에는,</br>들쭉날쭉 연잎 속에 연밥도 하 많은데 / 蓮葉參差蓮子多</br>연꽃 잎새 사이로 여인들 노래 소리 / 蓮花相間女郞歌</br>돌아올 땐 물목에서 짝과 약속 지키려고 / 來時約伴橫塘浦</br>고생고생 배 저으며 물 거슬러 올라가네 / 辛苦移舟逆上波</br>라 하였다. 이들 모두가 일대(一代)의 가작들인데 논하는 자들은 그 중에서도 이(李)의 작품의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한다.인데 논하는 자들은 그 중에서도 이(李)의 작품의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 E593 + (정 대간의 서경시에 비 갠 긴 뚝에 풀빛은 더욱 짙고 / 雨歇長堤草色多 님 … 정 대간의 서경시에</br>비 갠 긴 뚝에 풀빛은 더욱 짙고 / 雨歇長堤草色多</br>님 보내는 남포에 구슬픈 노래 / 送君南浦動悲歌</br>대동강 물 언제나 다할 날이 있으리 / 大洞江水何時盡</br>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하네 / 別淚年年添綠波</br>라는 것은 지금까지 절창이라고 일컫는다. 부벽루 현판에 새겨진 시들은 중국 사신이 오게 되자 모두 철거한 일이 있었는데 이 시만은 남겨 두었었다. 그 뒤에 최고죽(崔孤竹 최경창(崔慶昌)의 호)이 이 시에 화운(和韻)하기를,</br>강 언덕 길고 긴데 휘늘어진 능수버들 / 水岸悠悠楊柳多</br>연 따는 노랫가락 조각배에 요란터니 / 小船爭唱采菱歌</br>붉은 꽃도 다 져서 서풍은 차가웁고 / 紅衣落盡西風冷</br>해 저문 물가엔 흰 물결만 일어나네 / 日暮芳洲生白波</br>라 했고, 이익지(李益之 이달(李達)의 자)는,</br>연잎은 들쭉날쭉 연밥은 주렁주렁 / 蓮葉參差蓮子多</br>연꽃 서로 사이해서 아가씨가 노래하네 / 蓮花相間女郞歌</br>돌아 올 땐 물목에서 벗 만나자 기약했기에 / 歸時約伴橫塘口</br>고되이 배 저어 거슬러 올라가네 / 辛苦移船逆上波</br>라 했다. 두 시가 매우 훌륭하여 왕소백(王少伯 소백은 당 나라 왕창령(王昌齡)의 자)ㆍ이군우(李君虞)의 여운이 있으나 이는 채련곡(採蓮曲)이라 서경 송별시의 본뜻과는 다르다.)의 여운이 있으나 이는 채련곡(採蓮曲)이라 서경 송별시의 본뜻과는 다르다.)